[장서 산책] 데즈먼드 슘 '레드 룰렛'
[장서 산책] 데즈먼드 슘 '레드 룰렛'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2.04.03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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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의 부, 권력, 부패, 보복에 관한 내부자의 생생한 증언

저자 데즈먼드 슘(Desmond Shum, 沈棟)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자랐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교에서 재무 및 회계를 공부했다. 노스웨스턴대학교와 홍콩과학기술대학교의 공동 EMA 프로그램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홍콩 사모펀드 회사인 차이나베스트에서 일했다. 그때 전 부인 휘트니 단(Whitney Duan, 段偉紅)을 만나 결혼했으며 부인이자 사업 파트너로서 함께 베이징 수도국제공항에 세계에서 기장 큰 물류 거점을 건설했으며, 베이징의 중심부 근처에 호화로운 불가리 호텔과 비즈니스 센터를 구상하고 이를 완공시켰다. 중국에서 13년간 휘트니 단과 사업을 하며 권력과 부의 최고 정점에까지 올랐다. 이 책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중국의 화려한 경제 성장 뒤의 내막을 폭로한다.

역자 홍석윤은 성균관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후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했다. 현재 경제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번역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목차는 서문(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녀가 사라졌다)과 1장(나의 사랑, 나의 조국)에서 18장(이혼, 다시 중국을 떠나다)까지의 본문, 저자 후기(거꾸로 가는 중국)로 되어 있다.

2017년 9월 5일, 50세의 휘트니 단이 베이징 거리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25억 달러가 넘는 개발 프로젝트인 제네시스 베이징(Genesis Beijing)의 사무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 그녀 회사의 고위 간부 두 명과 가정부를 겸한 보조 직원 한 명도 함께 사라졌다.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휘트니는 공산당이 주창하는 ‘신중국(New China)’ 건설이라는 룰렛 도박판 같은 정치 환경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력으로 거물급 정치 가문과의 협력을 최대한 활용해 상상할 수 없는 성공을 이뤄냈다.(10~13쪽)

휘트니가 사업에서 성공한 열쇠는 유대 관계를 뜻하는 ‘꽌시(關係)’였다. 공산당 가족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그들에게 수익을 보장하며 인맥을 쌓고, 다시 권력자를 등에 업은 뒤 청탁을 통해 이권을 보장받는 능력을 말한다. 휘트니의 대표적인 꽌시는 휘트니가 ‘장 이모’라고 부르며 떠받드는 원자바오(溫家寶)의 아내 장페이리(張培莉)였다.

중국 권력의 중심에서 장 이모를 보좌하는 것이 휘트니의 삶이었다. 장 이모가 필요할 때마다 휘트니는 그 곁에 있었고, 그녀는 자신이 하던 모든 것을 버리고 장 이모의 세계에 몰두했다.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저자인 데즈먼드도 마찬가지였다. 휘트니와 데즈먼드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마치 악어의 이빨을 청소하는 물고기처럼.(129쪽)

장 이모의 가장 친한 여자 친구가 휘트니였다면, 가장 친한 남자 친구는 황쑤화이라는 이름의 건장한 전직 공장장이었다. 두 사람은 1992년에 만났다. 당시 황은 26세였고, 장 이모는 51세였다. 황은 장 이모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녔다. 비록 직접적인 증거는 없었지만, 휘트니는 황의 불룩한 배와 촌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장 이모의 정부(情夫)라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133~134쪽)

베이징 공항 도시 건설을 위한 우리(데즈먼드 슘과 휘트니 단)의 계획은 각기 다른 일곱 개 부처의 승인이 필요했다. 게다가 이 부처들 안에서도 승인 권한은 층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우리는 150개의 승인 도장이 필요했고, 하나하나 도장을 받을 때마다 사연이 없는 것이 없었다. 공사를 시작하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 이후에도 수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우리 직원들은 도장을 받기 위해 관리들의 비위를 맞추며 몇 달을 기다리기도 했다. 좋은 차를 갖다주거나, 그들의 심부름을 해 주거나, 사우나에 데려가거나, 부인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한 직원은 목욕탕을 너무 자주 가서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174쪽)

2008년 장 이모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중국 관료와의 식사 자리를 주선했다. 그의 이름은 시진핑(習近平)이었고, 이제 막 부주석 자리에 오른 인물이었다. 장 이모는 휘트니의 눈으로 이 떠오르는 스타를 관찰해 볼 심산이었다. 시진핑은 두 번째 부인 펑리위안(彭麗婉)과 함께 왔다. 시진핑은 공산주의 혁명가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중국의 홍색 귀족의 일원이었다. 시중쉰은 덩샤오핑과 각별한 동맹 관계였고, 1980년대 중국 수출 호황의 토대가 된 경제특구 조성을 지휘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휘트니는 시진핑과 식사하는 내내 시진핑이 아내가 말하도록 놔두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그는 그저 약간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이따금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휘트니는 고위 관리의 아내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신이 끼어들 적절한 타이밍을 잡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펑리위안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시진핑은 이미 지존의 길에 들어섰고, 그와 그의 아내는 지나칠 정도로 신중했다.(261~262쪽)

2011년 봄, 휘트니는 정치국 상무위원 자칭린(賈慶林)의 사위인 데이비드 리(David Li, 李伯潭)와 그의 아내 지아창(Jia Chang)을 유럽으로 데려가 와인 교육을 시키자고 제안했다. 데이비드는 그 생각에 동의했고, 와인 클럽의 또 다른 잠재적 투자자인 두 부부를 함께 데려가자고 말했다. 한 사람은 중국 최대의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의 CEO 쉬자인(許家印)이었다. 또 한 사람은 큰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유궈샹(Yu Guoxiang)이었다.

유럽 여행의 첫 번째 문제는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였다. 이 무렵 휘트니는 전용기를 타고 여행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는데, 우리는 이미 미국 항공기 제작회사 걸프스트림 에어로스페이스(Gulfstream Aerospace)에 4,300만 달러(520억 원)짜리 비행기 걸프스트림 G500을 주문한 상태였다. 그래서 우리는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데이비드는 동의했고, 편의상 제트기가 세 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침내 2011년 6월 우리 네 커플은 파리로 향했다.

애초 세 대의 제트기에 나눠 타고 여행할 계획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남자들이 여행 중 카드 게임을 하고 싶다며 제트기 두 대를 더 빌렸다. 제트기 두 대는 빈 채로 우리를 따라왔다. 여기서도 그 잘난 체면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신이 제트기 한 대를 더 빌리면, 우리도 한 대 더 빌려야죠. 혹시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겨서 먼저 돌아와야 할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273~274쪽)

2012년 10월 26일 <뉴욕타임스>는 원자바오 가족의 막대한 재산을 상세히 다룬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 폭로 기사는 기업 보고서에 입각해 원 총리 일가의 재산을 30억 달러(3조 6천 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기사의 스무 번째 단락은 휘트니의 이름으로 시작되었고, 우리 관계에 본질적으로 타격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302쪽)

장 이모는 휘트니에게 누군가 그녀의 가족을 무너뜨리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기사의 제보자를 찾으려고 했다. 장 이모는 정부 내부의 정보망을 인용하며 당 내부의 사활을 건 권력투쟁에서 원 총리가 파편을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그 투쟁은 시진핑과 보시라이 사이에 벌어진 것이었다.(307쪽)

시진핑이 부패척결 운동을 시작한 지 약 1년 후 그리고 <뉴욕 타임스>가 원 총리 일가의 재산에 대해 보도한 지 1년 후인 2013년에, 장 이모는 우리에게 자신과 자녀들이 기소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받는 대가로 국가에 전 재산을 헌납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른 홍색 귀족 가문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312쪽)

중국이 다른 나라와 다른 또 한 가지는, 이혼 같은 가정사에조차도 정치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휘트니는 이혼 소송을 우리가 결혼한 홍콩에서 하지 않고 베이징으로 옮겼는데, 그것 또한 꽌시 게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합의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판이 한창 진행되는 도중 판사는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는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또 휘트니가 사주한 누군가의 전화군.” 2015년 12월 15일, 우리는 최종적으로 이혼에 합의했다.(343~345쪽)

마오쩌둥 주석 시절부터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은 중국의 레닌주의 체제는 당이 모든 것을 장악해야 한다는 논리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당은 위기가 왔을 때만 장악력을 느슨하게 해 사람들과 기업에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는 척한다. 당은 마지못해 그렇게 하다가 항상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당은 2008년부터 경제, 언론, 인터넷, 교육 시스템 등 전 분야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행사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편집자, 출판인, 교수들은 해고되거나 체포되었고, 인터넷은 검열되었으며, 모든 민간 기업에 당위원회를 두어야 했다. 중국 경제가 성장 가도에 접어들면서 당은 다시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는 당이 휘트니나 나 같은 기업인들에게 유화 제스처를 보낸 것이 레닌주의 전술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이 기업과 손을 잡은 것은 완전한 사회 통제라는 목표의 일환으로 일시적으로 그렇게 했을 뿐이다. 경제를 발전시키거나, 해외에 투자하거나, 홍콩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지면 우리도 가차 없이 당의 적이 될 것이다.(356~357쪽)

내(저자) 지나온 삶을 통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재산이나 직업적 성공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과 인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그런 이상을 공유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중국 대신 서구 세계를 선택한 이유다.(358쪽)

이 책은 중국공산당과 억만장자들의 은밀한 ‘꽌시’와, 부패, 이해충돌, 탐욕에 따라 움직이는 중국 권력 핵심부의 추악한 민낯을 폭로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어떻게 사업을 계속해 나가는지, 사업가들이 도를 넘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부관계자들이 어떻게 규칙을 교묘하게 강요하는지, 그리고 지금까지 벌어진 탄압의 공포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중국의 속사정을 깊숙이 알고 싶은 이들은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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