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호모
눈호모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2.03.18 09:31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이 호강하는 모임으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아

 

'눈호모' 하는 날이다. 오늘은 영화관람이 예약되어 있다. 눈호모란 '눈이 호강하는 모임'으로 다른 모임과는 달리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두 달에 한번 만나는 시간만큼은 먹지 않고 눈으로 즐기며 물만 마실 수 있다. 그러니 식당가에도 갈 일이 거의 없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이 모임에서는 무색 할 따름이다.

대체로 짧게 만나는 친목모임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여담을 나누는게 태반일 터이다. 눈호모는 만나서 보내는 길지 않은 시간을 좀 더 보람있게 즐기자는 처음의 의도와는 달리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다. 

가볍게 산행을 하던 날이다. 정상에서 발도장을 찍고 하산하는데 뒤따르던 일행 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너럭바위에 앉아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아 우리는 내려 왔던 길을 다시 올랐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이 일을 어쩌나. 그녀가 숲속에서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다. 회칙에 따르면 규율 위반에 해당되는 벌칙금이 발생하는 행위이다. 배고픔과 먹는 것을 못 참는 식탐쟁이가 눈호모에서 1년을 버틴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 곤욕을 겪으면서도 모임을 해야 하는 이유를 넌저시 물어보니 자신이 먹는 것을 참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눈호모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살아 남겠다던 그녀가 1년만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첫 모임을 하던 날, 그들은 체격이 제일 좋은 기자를 걱정했다. 고정관념이다. 큰 사람이 모두 잘 먹지도 않으며, 한 두끼 굶는다고 크게 탈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축적된 에너지 소모로 몸과 마음이 더욱 가벼워지니 이 보다 좋은 모임이 어디 있을까. 이제는 '밥 먹었느냐'로 안부를 묻던 예전과는 달리, 먹지 못해 탈나는 사람보다 과식하여 건강을 헤치는 사람이 허다 하지 않던가. 

영화관에 들어섰다. 코로나19로 객석이 조용하다. 우리들은 거리두기로 띄엄띄엄 떨어져 앉는다.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된다. 잠시 후, 어디선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급기야는 달콤한 팝콘 냄새가 코 끝을 간지럽힌다. 뒤를 돌아보아도 옆을 쳐다보아도 우리는 영화에 몰두할 뿐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나는 가방속의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킨다. 

아! 옛날이여, 팝콘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