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유감
유모차 유감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2.03.1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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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대신 유모차에 탄 반려동물들
유모차 관련산업 명맥 유지에나 위안 삼을까?

공원을 산책하는데 앞쪽에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간다. 승객은 누구일까? 가까이 다가가 유모차 안을 들여다 볼 때까지는 알 수 없다.

유모차라면 당연히 아기가 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은 아기를 태우기보다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첫째가 반려동물용이다. 귀여운 강아지가 호기심 가득한 커다란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버젓이 앉아 호사를 부린다.

허리가 부실한 할머니들은 안전한 지팡이 대용으로 끌고 나선다. 의자겸 컨솔로 개조하여 필요한 물건들을 싣고 다니다가 힘들 때는 앉는 의자가 된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다. 한 때는 100만 명을 휠씬 웃돌던 년간 신생아 수가 지난 해에는 30만 명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2028년이면 인구도 최정점을 찍고 하강 국면에 접어들어 2300년이면 5만 명대로 국가가 사라질 것이란 어두운 전망이다.

관련 산업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유아용품 산업보다 시니어용품 산업이 더 성장한다. 그 중에서 유모차 생산은 급격히 줄어들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기우였다.

유모차가 뭔가? 말 그대로 아기를 태우는 수레다. 출산률이 떨어지니 당연히 구매도 줄어야 마땅하다.
반려동물용으로 활용되면서 오히려 생산을 늘릴 만큼 수요가 늘어나는 건 아닐까 싶다. 자기취향이고 내가 사 주는 것도 아니니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렇지만 편한 마음으로 봐주기는 마뜩찮다. 

유모차 제조산업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음에나 위안을 삼을까?

저물녁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버스가 주춤거린다. 창밖으로 내다보며 원인을 찾다가 눈길이 멈추었다. 인도에 주차한 승용차에 길이 막히니 차도로 위험하게  유모차를 끌고가는 할머니 때문이다. 유모차에는 아기 대신 접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 종이 상자가 실려있다. 수레를 끌 만큼 근력은 안되고 하루치 생계를 위해 폐지를 주워야하는 할머니는 유모차를 생계에 활용한다. 유모차 관련 산업이 이래저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축일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본 유모차 안에 아기가 방긋 웃고 있으면 그렇게 반갑고 마음이 놓일 수가 없다. 귀여워서 볼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는 세태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