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55) 전통 장례의 변천
[꽃 피어날 추억] (55) 전통 장례의 변천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2.03.08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통 장례시 삼년 탈상이 시대가 변하면서 당일 탈상을 하고있다.
1990년 삼포리에서 상여를 뒤따라가는 상제들과 친척들. 유병길 기자

 

1950년~7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와 상주지역에서는 조부모, 부모가 돌아가시면 집에서 삼일장을 치렀다. 방 윗목에 모시고 코 귀를 솜으로 막고 앞에 병풍을 쳤다. 장례 운이 맞지 않을 때는 오일장, 칠일장도 하였다. 초상이 나면 상여 계원은 상갓집에 모여 장례와 관련한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하였다. 상여계 책임자인 유사가 면사무소나 학교에서 부고를 등사하면 일부 계원은 가까운 지역의 일가친척 집에 직접 부고를 전달하였고, 먼 곳은 전보를 쳤다. 남은 계원은 짚으로 상여 줄을 꼬았고, 아낙들은 삼베로 수의와 상복을 만들고 계원과 조문객들이 먹을 밥, 전, 떡, 술 등 모든 음식을 만들었다.

안상제 머리에 두르는 수질,  허리에 두르는 요질, 대나무 지팡이. 유병길 기자

 

상주는 염을 하기 전에는 왼쪽 팔을 끼지 않은 채 두루마기를 입었다. 풍수와 함께 산에 올라 묘터를 잡았다. 상주가 내려오면 염을 시작하였다. 시신을 씻긴 뒤 얼굴에 화장하고 수의를 입혔다. 입안에 쌀 세 톨을 넣으며 “삼천 석”이라 외쳤다. 이어 노잣돈으로 동전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 염포로 몸 전체를 감싸고 일곱 곳을 묶어 염을 끝낸 후 소나무 관에 입관하고 뚜껑을 덮고, 윗목에 모시고 앞에 병풍을 쳤다. 상제는 상복(굴건제복)을 입고, 안상제는 머리에 수질을 두르고 허리에는 요질을 매었다. 남자 친척은 머리에 두건을 썼다. 빈소에서 상제들은 일곱 마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조문객을 맞이하였다.

명정은 붉은 천에 흰 글씨로 죽은 사람의 관직이나 성명을 썼다. 당시에는 흰 페인트가 없어 굵은 붓에 간장을 찍어 붉은 천에 글씨를 쓰면서 그 위에 바로 밀가루를 뿌려 흰 글씨를 만들었고, 미리 준비한 대나무 장대에 매었다. 저녁에 유사가 돌아가신 분의 윗옷을 지붕에 던지면서 고인의 이름을 세 번 불렀고, 대답이 없으면 돌아가신 것으로 인정하였다. 이때 상여 계원들이 빈 상여를 메고 선소리꾼의 선창에 따라 “어화 어화”를 외치며 발을 맞추었다.

산을 올라가는 상여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장례 날 아침 상여 위에 관을 올려 동여매고 위에 상여를 꾸몄다. 제사상을 차려놓고 발인제를 지냈다. 상여 계원들이 상여를 메고 선소리꾼의 선창에 맞추어 “어 화”, “어 화” 발을 맞추며 출발할 준비를 하면 상제들은 가시는 길에 돈 걱정 없이 잘 가시도록 노잣돈을 걸었다. 안상제들은 대성통곡을 하지만 대문 밖까지 따라 나가지 못하였다. 긴 장대에 달린 명정이 앞에 서고, 혼백이 뒤따르고 상여 뒤에는 상제, 그 뒤에는 친척들이 두건을 쓰고 따랐다. 상여의 힘과 위력은 대단하다. 좁은 논둑길 외나무다리도 건널 수 있고, 경사가 심한 산도 올라갈 수 있었다.

장지에 도착하면 상여를 내려놓고 풍수의 말을 들으며 곡괭이, 괭이, 삽 등으로 묘 터(광중)를 팠고, 하관을 하고 관 위에 명정을 덮었다. 상제가 상복 앞자락에 흙을 담아서 “취토”를 세 번 외치며 관 위에 흙을 세 번 뿌렸다. 취토가 끝나면 계원들이 이어 흙을 넣고 밟고 흙을 쌓으며 “어허 달구야”를 외치며 봉축을 빙글빙글 돌며 꼭꼭 밟았다. 이때도 상제들을 찾아 노잣돈을 걸도록 하였다. 잔디를 심고 상제들이 평토제를 지내면 모든 장례 절차는 끝이 났다. 70년대에는 상여줄을 꼬지않고 천을 사다가 하였고, 동군(상여는 메는 사람)에게 운동화, 추리닝, 수건 등을 상갓집에서 주었다. 90년대 이후에는 면 단위에도 굴착기가 있어 묘터를 파고 흙을 덮고 봉축을 다져 쉽게 산소를 쓸 수가 있었다.

상제가 혼백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빈소에 모시고 저녁에 초우제, 다음날 아침에 재우제를 지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삼우제를 지내고 안상제들과 같이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묘역을 둘러보았다. 삼우제가 끝나고 탈상 때까지 아침, 저녁 식사 때 안상제가 빈소 제사상에 상식을 올렸으나, 초하루 보름에는 전 가족이 참석하였다. 1년째 되는 날에 소상(小祥)을 지내고, 2년째 되는 날 대상(大祥)을 지냈다. 대상(大祥) 다음 날 빈소의 혼백을 태운 후 상복을 벗고 빈소를 철거하면서 3년 탈상을 하였다.

요즘은 집에서 돌아가셔도 일을 할 사람이 없어 병원 장례식장으로 모셔가서 장례를 모신다. 매장 대신 거의 화장하고 납골당, 자연장, 수목장에 모시다 보니 상여계도 해산되는 추세다. 상제의 굴건제복도 사라지고 양복 왼쪽 팔에 삼베로 만든 완장을 두른다. 삼 년 탈상 또한 90년대에는 이웃 눈치를 보며 일 년 탈상하다가 이후 백일 탈상, 삼우재 탈상으로 줄었고, 최근에는 장례 당일 탈상하고 있다. 시대에 맞게 장례 절차가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대 문중, 소 문중별로 산소를 한곳에 모시고 관리를 한다. 유병길 기자

개인별로 관리하던 조상님의 산소를 각 문중마다 한곳에 모시고 편리하게 관리를 하는 추세이다 .간소함과 편리함 속에서 잊혀가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전통 장례 모습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취재하였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