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세월도 무색하게 하는 삶, 예재호 노인대학장
여든의 세월도 무색하게 하는 삶, 예재호 노인대학장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2.02.21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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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 달성군지회 예재호 노인대학장을 찾아서

현대의학의 힘으로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난 수명으로 경제활동 연령이 높아지고 다양한 문화생활을 향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거기에 반해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고 문화생활을 위한 강좌 또한 노인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장을 뛰어다니며 활동하는 분이 계신다. 대한노인회 달성군지회 노인대학장인 예재호(80)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노인대학 학장실을 찾았다.

대한노인회 달성군지회 예재호 노인대학장.   우남희 기자
대한노인회 달성군지회 예재호 노인대학장. 우남희 기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셨다는데 말씀해 주십시오.

-네 맞습니다. 달성중학교에서 퇴직했습니다. 고향은 청도 매전입니다. 2남 3녀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살림이 넉넉지 않았지만 부친이 농사를 지으면서 서당 훈장을 하셔 향학열이 높았습니다. 청도에서 모계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와 영남대학의 전신인 대구대학을 다녔습니다. 그 당시 어려운 여건에서 친척의 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면서 다소의 용돈을 마련할 수 있어서 자력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당숙의 간접적인 도움으로 학업을 마칠 수 있어서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제도는 없지만 그때는 중등학교 준교사 자격증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상학과를 졸업하였기 때문에 중등학교 상업과 준교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그 후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영해여상에 발령을 받아서 근무하였고, 4년 후에 대구제일여상, 대구상고(현 상원고등학교)에서 상업을 가르쳤습니다. 경북기계공고 내에 있는 대구산업학교에서 전산담당교사로 근무하다 교육전문직으로 대구교육연수원의 교육연구사로 발령을 받아서 근무 중 달성중학교 교장으로 발령받아서 이곳에서 정년퇴직을 하였습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270시간의 컴퓨터연수를 받고,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16대 밖에 없을 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대구상고에 근무하면서 최초로 성적처리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그때가 80년대였는데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런 열악한 조건에서 협력교사와 도우미 학생들과 6개월 동안 숙식하며 COBOL 언어를 사용하여 학사프로그램을 개발했는데 엄청난 호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일여상에 근무할 때 컴퓨터 시범학교로 전국의 컴퓨터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공개수업을 개최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또 기억에 남는 것은 달성중학교에 근무할 때 알게 된 ‘김현희’님이라는 학모님이 떠오릅니다. 그 분의 아들이 백혈병에 걸려 교내에서 모금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8백만 원이 모금되어 전달하려고 어머니인 김현희님을 학교로 오시게 했는데 마음만 받겠다며 더 어려운 학생에게 전달하라는 겁니다.

자식이 아프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고, 많은 치료비로 한 푼이 아쉬울 텐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갑부도 아닌데 그렇게 말씀하실 분이 몇 분이나 되겠습니까. 목적사업이라 전달하긴 했는데 아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사고방식도 일반 어머님들과 다른 대단한 어머님이셨습니다. 감사하게도 학생은 완쾌되었고 졸업식에서 학모님에게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하였습니다. 그분에게서 지금도 가끔씩 연락이 오는데 노인대학에 모셔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도록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대가 낳은 천사라는 이름을 붙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달성군 화원읍 명곡4리 경로당 인성예절교욱(2019. 9).           사진제공 예재호
달성군 화원읍 명곡4리 경로당 인성예절교육 (2019. 9). 사진제공 예재호

▶수년 전에 달성군 노인복지관에서 시화전을 개최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의 이름을 뵌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퇴직하고 탁구 배울 곳을 찾는데, 지인이 달성군노인복지관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해바라기봉사단장을 맡았습니다. 봉사단체 이름은 ‘해바라기’였는데, 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향해 봉사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작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바라기가 노란색으로 다른 꽃에 비해 커서 모두를 밝고 환하게 비추어주는 희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어 그 이름을 선정했습니다.

복지관내에서는 주차 봉사, 식당에서의 봉사를, 밖에서는 기세천에서 자연보호활동을 하고 벚꽃 행사 때는 바자회를 개최하여 그 수익금을 관내에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냈습니다. 봉사활동으로 주위를 환하게 밝히니 봉사단체의 이름으로 해바라기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시화전은 문학동아리 회장으로 있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치매예방의 일환으로 관장님에게 건의해 문학동아리를 만들어 전문 강사를 초청해 강의 듣는 문해 교육을 하였습니다. 문자를 해득한 할머니가 한 줄 글쓰기를 통해 버스번호를 읽을 수 있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좋아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동아리를 만들었으니 결과물이 있어야 회원들도 긍지를 가질 것이기에 문집을 만들게 되었고, 문해 교육을 받은 분들의 글도 실어『아름다운 울림』이라는 문집을 제4호까지 발간하는데 헌신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회원들의 작품을 퇴고하는데 힘이 들어 괜히 시작했다는 후회도 없지 않았지만 한권의 책으로 출간되니 힘들었던 것이 씻은 듯 사라지고 보람이 울림이 되어 다가왔습니다.

시화전은 복지관 축제기간에 개최하였습니다. 걸어온 삶의 단면을 글로 만나게 된 어떤 분은 시화에서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기도 하셨습니다. 시화뿐만 아니라 사진, 서예, 그림 등을 전시했었습니다. 제가 노인복지관을 나온 후 뒤를 이어 계속 작품집이 발간되지 않아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달성군 북부노인복지관 자서전 출판기념회(2022. 1)  사진제공. 예재호
달성군 북부노인복지관 자서전 출판기념회(2022. 1) 사진제공. 예재호

▶노인대학장으로서의 소임뿐만 아니라 하고 계시는 다른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달성군 관내에는 324개의 경로당이 있습니다. 그 중 관내에 40여개의 경로당을 선정하여 인성예절을 하였습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 각 읍면의 경로당을 찾아가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음악, 교양, 건강을 주제로 교육하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대한노인회 달성군지회에서는 인성예절교육을 교육하고 수료증을 수여하고 새로운 길을 열어보려고 했습니다.

달성군노인대학은 움직이는 노인대학이라고 하여 교육은 수요자를 찾아가는 교육을 추진하여 노인들의 불편을 덜어주면서 성과를 거두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1년에 보통 1,000여명이 교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뒷방 늙은이처럼 지내는 노인의 시대는 지난 지 오래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무엇이든 배우려고 하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운동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찾아서 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노인대학을 운영하면서 경로당의 역사, 노인들을 위한 교육과정 등, 경로당 연혁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달성군경로당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하는데 집필자로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책을 발간할 때에는 282개의 경로당이었습니다. 이 책은 800쪽 분량으로 달성군에 그치지 않고 대구경로당의 역사까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런 자료를 누군가가 담당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는데 지금도 그 결정은 잘한 것으로 긍지를 가졌습니다.

대구 유림신문 편집일을 하시는 예재호 학장.   사진제공 예재호
대구 유림신문 편집주간을 맡으신 예재호 학장. 사진제공 예재호

성균관유도회 대구광역시 본부가 주관해서 발간하는 유림신문의 편집주간을 오랫동안 담당하고 있으며, 달성군북부노인복지관에서 자서전 쓰기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0년에는 4분의 자서전이 출간되었고, 2021년도에는 5권의 자서전이 출간됩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도 3권의 칼럼집을 발간하였으며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면서 칼럼집도 몇 권 더 출간하려고 합니다.

여든의 연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뵈면서 건강하게 나이를 뛰어넘어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특이할만하다. 또한 사회적인 입장에서 보면 큰 자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외로운 사람에 다정하게 손을 잡아주고, 괴로운 사람에게는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실천하시는 노교육자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같이 선생님의 행적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다시 한 번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