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을 찾아서
리모컨을 찾아서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2.02.11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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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버킷리스트의 데스 클리닝

냉장고에서 TV 리모컨을 발견하고, “세상에…. 내가 여기에 리모컨을 뒀네” 하면 건망증이고, “누가 여기에 리모컨을 넣어놨어?” 하고 화를 내면 치매라는 이야기가 있다.

휴일에 별안간 TV 리모컨을 찾아야 할 사정이 생겼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그동안 미뤄왔던 유료 TV 채널을 해지했는데, 토요일 오전에 셋톱 박스를 수거하고 TV 수신 채널을 변경하러 방송사 직원이 왔다.

직원이 TV에 딸린 리모컨을 찾았다. 지금 쓰는 리모컨은 자기네 제품으로, 부속 리모컨으로 TV를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몇 년 전에 리모컨 두 개가 거실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생각이 났다.

직원을 돌려보내고,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구닥다리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온종일 리모컨을 찾았다. 구식 가전제품 부품들, 주방용품과 그릇들, 낡은 옷들과 같은 구닥다리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아내는 즐거워하면서 끈기 있게 리모컨을 찾았다. 덕분에 나도 오랜만에 TV로부터 해방되어 편안하게 휴일을 보내게 됐다.

스웨덴의 마르가레타 망누손(Margareta Magnusson) 여사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옷가지, 책 등에 어머니가 쓴 메모를 발견한다. 기부할 것, 반납할 것, 주인에게 돌려줄 것 등과 같은 유품의 처리를 당부하는 메모였다. 이에 감동한 망누손 여사는 자원해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물품 정리 봉사를 하면서 삶의 의미를 깨닫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축적된 경험과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에 관한 책을 집필했다.

데스 클리닝은 죽음을 대비하는 스웨덴식의 문화로서 생전에 자기가 쓰던 물건을 정리해서 버리고 나눠주는 일종의 유품 정리 행위다.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정지연 그림
데스 클리닝(Death Cleaning). 마운틴구구 그림

오래된 물건들을 꺼내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추억에 잠기고 아끼는 물건들을 나눠주고 기부할 대상을 생각하는 즐거움과 함께 현재 삶의 의미를 새삼 깨닫게 된다. 망누손 여사의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데스클리닝을 실행하는 연령이 갈수록 젊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내가 내일 죽는다면’이라는 제목의 번역판(황소연 역, 시공사 간, 2017년)으로 출간됐다.

인구의 고령화가 진전되고 고독사가 늘어나면서 고인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산업이 성행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일본의 '슈카쓰(終活)' 산업의 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약 20조 원에 달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유품정리사가 새로운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태어나서 먼지가 되어 돌아가는 인생이 아닌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을 남겨주고 싶지 않으면 청소하세요.”

데스 클리닝을 나의 버킷리스트 상단에 올려놓고 실천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