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대구 계산동 뽕나무골
[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서] 대구 계산동 뽕나무골
  • 김병두 기자
  • 승인 2022.02.08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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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충이 이사를 와서 뽕나무를 심고 길쌈과 영잠을 한 장소이며, 소설가 현진건이 태어나 자라고 시인 이상화가 말년을 보낸 고택이 있는 뽕나무골
현재 뽕나무 여덟 그루가 서있는 뽕나무골
현재 뽕나무 여덟 그루가 서있는 뽕나무골  김병두 기자

뽕나무골은 계산동의 자연부락명이다. 계산동 뽕나무골의 가운데로 긴 골목을 뽕나무골목, 뽕나무골이라고도 했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 사람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원군으로 와서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 귀화하였다. 두사충은 풍수지리에 밝아서 ‘하루에 천 냥이 나오는 자리’인 지금의 경상공원 자리에 집을 짓고 두 아들과 살았으나, 경상감영이 안동에서 옮겨오자 지금의 계산성당 주변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 후 두사충이 양잠과 길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주변 3,000여 평에 뽕나무를 많이 심어 뽕나무골이라고 불렀다.

이상화 서상택 고택으로 가는 골목길  김병두 기자
이상화 서상택 고택으로 가는 골목길 김병두 기자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으로 가는 골목길
김원일의 '마당깊은 집'으로 가는 골목길   김병두 기자

이제 계산동 뽕나무골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겨우 계산성당 뒷마당에 뽕나무 여덟 그루만 남아있고, 주변은 계산성당과 한약방과 식당 등 상가건물이 자리잡고 있다. 계산성당 담벼락에는 뽕나무골의 유래와 두사충에 대한 중구청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계산동 뽕나무골은 한국의 근대문학을 이끈 소설가 현진건이 1900년에 태어나고 자란 곳으로 이상화와 현진건이 교류하면서 신문학의 토대를 마련한 곳이다.

또한 시인 이상화가 말년을 보낸 고택과 국채보상운동 발의자인 서상돈의 고택이 자리 잡고 있다.

시인 이상화 고택의 전경  김병두 기자
시인 이상화 고택의 전경 김병두 기자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 서상돈 고택의 전경  김병두 기자
국채보상운동의 발의자 서상돈 고택의 전경 김병두 기자

추억의 계산동 뽕나무골은 행정구역상 성내2동으로 주변의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 서상돈 고택, 김원일의 마당깊은집, 대구제일교회역사관, 약령시 한의학박물관과 연결되는 근대골목투어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길과 연결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뽕나무골 주변의 현재 모습  김병두 기자
뽕나무골 주변의 현재 모습 김병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