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정몽주를 기리다 (중)
포은 정몽주를 기리다 (중)
  • 김정호 기자
  • 승인 2022.0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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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 정몽주 선생의 모든 것이 있는 곳 - 임고서원

오천서원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보고 두 번째 들린 곳은 영천 임고서원이다.

오천서원과 임고서원을 비교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으나, 오천서원이 재정 상태가 열악한 지방대학 수준이라면 임고서원은 중앙 국립대학교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마도 포은 선생을 기리는 유적지 정화사업으로 국가의 예산이 많이 투입된 듯하다.

동방이학지조 비석 - 김정호 기자
동방이학지조 비석.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임고서원은 사액서원으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어있다. 먼저 서원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자연석에 새긴 동방이학지조東方理學之祖라는 조형물이 찾는 이를 반긴다.

임고서원 은행나무 -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 은행나무. 김정호 기자

뒤이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서원 앞 넓은 마당에 서 있는 은행나무다. 안내판에 의하면 수령 500년이 되었다고 한다.

영광루 전경 - 김정호 기자
영광루 전경.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 역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조금 높은 계단 위 영광루永光樓을 지나 들어가면 서원이 자리하고 뒤에는 또 한층 높은 곳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잘 정돈되고 웅장한 서원 앞에서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임고서원 -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 김정호 기자

서원은 둘러볼 수 있으나 사당은 굳게 문을 걸어놓고 있다. 제사를 모시는 특별한 날이 아니면 사당을 열어 놓을 일은 없는 것 같다. 서원 앞에는 그 유명한 ‘단심가’와 ‘백로가’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단심가, 백로가 - 김정호 기자
단심가, 백로가.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의 백미는 역시 선죽교다. 포은 선생이 고려말 이방원의 일파에 의해 선죽교에 철퇴를 맞고 순국하셨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선죽교 - 김정호 기자
선죽교. 김정호 기자

북한의 국보 문화재 153호인 선죽교는 당연히 개성에 있으나, 서원 건립을 하면서 개성 선죽교를 실측하여 그대로 재현 건립해 놓았다. 선죽교는 당시 사람의 통행이 가능한 곳으로 돌난간이 없었으나, 우마차까지 지나다니게 되자 정조 4년(1780년) 선생의 후손 정호인鄭好仁이 개성 유수로 부임하여 돌난간을 설치하고 통행을 제한한 대신 행인을 위하여 바로 옆에 좁은 돌다리를 가설하였다. 그리고 서원에 선죽교를 가설 당시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 또한 탁본하여 붉은빛 글씨로 세우게 되었다. 고색창연한 선죽교 앞에서 선생의 우국충정을 잠시 되짚어 본다.

포은유물관 = 김정호 기자
포은유물관. 김정호 기자

임고서원에는 이외에도 포은유물관, 충효문화수련원, 조옹대 등 부속건물들이 있다. 특히 전망대인 조옹대에 오르면 서원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조옹대에서 본 임고서원 전경 - 김정호 기자
조옹대에서 본 임고서원 전경. 김정호 기자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성리학을 숭상하는 국가로서 유명한 서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 고장에 이렇게 잘 정비되고 훌륭한 서원이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다음 코스는 선생의 탄생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