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해를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
호랑이해를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2.01.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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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띠 해를 맞아 모든 사람에게 풍요와 희망과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원해 본다.
선조들은 호랑이는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고 믿어 왔다
'동심회' 정지순 시니어매일 기자의 작품.

호랑이해를 맞이하여 시니어매일신문사소속의 기자들로 이루어진 ‘동심회’회원들이 호랑이의 힘을 받아 자기들의 위치에서 시니어매일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주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호랑이에 대하여 전해 내려오는 설화나 우리 민족에 얽힌 이야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호랑이는 고양이 과에 속하는 포유동물로서 범이라고도 한다. 호랑이는 서울올림픽대회의 마스코트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동물이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도 등장하며 그 밖의 여러 설화를 비롯하여 그림과 조각 등 미술품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주역(周易)』에서 호랑이의 방위를 지칭하는 인방(寅方)도 만주와 우리나라를 지목하는 동북방인 것을 보면 우리 민족과 호랑이는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겠다.

호랑이의 근엄한 모습.

▶ 역학으로 본 2022년 범띠 해의 전망 : 호랑이는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고 믿어 민속놀이에서 그 어느 동물보다 많이 등장하고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해 일반 민가에서 호랑이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이고 나쁜 귀신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또 옛날이야기 속에는 호랑이가 신통력을 지닌 영물로 사람이나 짐승으로 변신도 하면서 미래를 내다볼 줄 알고, 의(義)를 지키고 약자와 효자, 의인(義人)을 도우며 부정함을 멀리하는 신비스러운 동물로 등장하는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다. 호랑이해를 맞아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르는 호랑이의 신통력으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기가 회복되기를 기대해 본다.

과거 범띠 해에 제1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 역사적인 사건이 많았다. 2022년에는 충돌 사고, 정치인과 관련된 사고 등 역사에 기록될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해 본다. 국가 간에는 전쟁이나 테러, 개인 간에는 다툼이나 소송을 조심해야 한다. 투자나 금전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해라고 할 수 있다.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적(社會的)으로 모든 부문이 다소 혼전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너무 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매사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임해야 한다. 실물경제 또한 코로나로 인하여 좋지 않아 개인파산도 염려된다. 어려운 시기를 겪으면서 철이 나듯이 물질주의의 허무함을 깨닫고 많은 이들이 종교, 철학, 진리추구, 명상 등 정신세계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건강은 특히 전염병, 독감, 기관지, 폐, 우울증, 심장질환, 신경성 위장, 심인성 질환에 조심해야 하는 해다. 2022년은 속설로 보아 여성보다 남성에게 유리한 해로 남성의 파워가 두드러질 것으로 보이며 남아가 많이 태어날 것으로도 생각이 된다. 장남, 장녀로 출생한 이들에겐 행운의 여신이 손짓할 것이다. 범띠 해를 맞아 모든 사람에게 풍요와 희망과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원해 본다.

호랑이는 고양이 속의 여러 가지 성질과 습관을 지니고 있으며 동작이 매우 빠르고 매사에 조심성 있게 행동한다. 소리를 내지 않고 먹이가 되는 다른 야생동물에 접근하며 자기 몸이 보이지 않게 걸어가는 동작과 모양은 마치 뱀이 땅 위를 기어가는 동작과 비슷하다. 먹이를 찾아서 하루 동안 보통 80∼100㎞를 달린다. 보폭은 80㎝에 달하며 항상 뒷발이 앞발자국을 되밟는 습성이 있다. 호랑이의 식성은 자기 자신이 잡은 신선한 야생동물의 고기만 먹는데, 시장기가 날 때에는 죽은 고기, 오래된 고기도 먹는다. 주식물(主食物)은 멧돼지이며 노루·산양·곰·사슴들이 살고 있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덤벼들어 잡아먹는다. 호랑이는 도망가는 야생동물을 쫓아가서 잡는 일은 거의 없다.

시니어매일 기자단의 '동심회'회원들. 정지순 기자 촬영.

▶ 민간신앙에서의 호랑이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국으로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라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호랑이가 인간에게 끼치는 민폐가 매우 심하여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환난을 일컬어 ‘호환’이라고까지 칭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도 885년(헌강왕 11) 2월에 호랑이가 궁궐 마당으로까지 뛰어 들어왔다고 하였으니 호랑이의 피해가 나라 전체에 걸쳐 매우 심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산중 혹은 인근 마을에서 마주치는 맹수 중 가장 두려워한 존재가 바로 호랑이였다.

호랑이를 야성의 맹수로 인식하는 것은 단군신화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곰과 호랑이는 모두 인간으로 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결국 호랑이는 그 야성을 순화시키지 못하고 동굴 속에서 뛰쳐나와 맹수로 머무르고 만다. 이렇게 인간에게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호랑이를 두려워하는 본능은 급기야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올려놓게 되어 살아 있는 호랑이를 신으로 받들고 제사까지 지내는 풍속이 오랜 옛날부터 행하여졌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전에 “그 풍속은 산천을 존중한다. 산천에는 각기 부계(部界)가 있어 서로 간섭할 수 없다.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호랑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풍속은 원시부족국가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호랑이를 산군(山君)이라 하여 무당이 진산(鎭山)에서 도당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호랑이숭배사상은 산악숭배사상과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즉, 산을 숭배하는 사상은 산속에 사는 숭배의 대상인 호랑이와 연계되어 산신이 호랑이로 표현되는 것이다. 호랑이를 별칭 하여 산군·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산신령(山神靈)·산중영웅(山中英雄)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러한 사상이 엿보이고 있다. 오늘날에도 심마니들은 호랑이를 산신령으로 깍듯이 대접하고 있다. 그러나 산신을 모셔놓는 산신당에는 호랑이가 산신의 사자로 묘사되기도 하고 호랑이 자체가 산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산신도에 묘사되고 있는 호랑이는 무섭고 사납기 보다는 점잖고 친근하게 표현되고 있다. 호랑이의 자세도 공격적이거나 서 있기보다는 산신의 옆 또는 앞에 다소곳이 엎드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도에서의 호랑이 의미를 잘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산의 군자 호랑이는 엎드려 있어도 모든 헤아림이 그 속에 있다”라는 말에서와 같이, 호랑이의 엎드린 자세는 산신의 신지(神知)를 받고 인간의 길흉화복을 어떻게 관장할 것인가를 헤아리고 있는 사려 깊은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소곳이 엎드려 길게 다물고 있는 입 양쪽으로는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인 토치(兎齒)를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있으며 호랑이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는 꼬리는 소나무 사이로 길게 뻗어 구름 속까지 닿게 하며 화면 전체에서 대각선을 이루고 있다. 눈은 왕방울 만하게 그려 전체적으로 아래로 내려뜨린 모습이며 파란색 금박으로 눈동자를 박아 어둠 속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호랑이의 모습은 위엄이 있으면서도 애교가 있고 신성한 영물로서의 분위기와 함께 친근한 시골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동시에 나타냄으로써 확실하게 선과 정의의 편에 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다.

▶ 풍수에서의 호랑이

호랑이는 일찍이 풍수설에서도 중요시되어 왔다. 동양의 음양오행사상에서는 우주를 진호(鎭護)하고 동서남북 사방을 수호하는 상징적 동물을 방위 신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동쪽에는 청룡(靑龍), 서쪽에는 백호(白虎), 남쪽에는 주작(朱雀), 북쪽에는 현무(玄武)라는 이름을 가진 방위신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들 4신은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 신으로 풍수지리에서는 좌청룡·우백호·전주작·후현무라 하여 매우 중시되었다. 즉, 좌청룡·우백호가 서로 어울려 여러 겹으로 주변을 감싸는 것을 최고의 명당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무덤을 쓸 때에는 좌청룡·우백호를 보아 자리를 정하고 무덤을 보호하는 능호석(陵護石)에는 12지신의 하나로 호랑이상을 새겼으며 무덤 앞의 석물에도 호랑이상을 조각하였다.

사방을 수호하는 방위 신으로서의 4신은 풍수에서뿐 아니라 부대의 깃발과 포진에도 응용되었다. 12지신은 땅을 지키는 12신장으로 열두 방위에 맞추어서, 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를 수호신으로 삼고 있다. 이 12지신 상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지녔으나 삼국통일 이후는 단순한 방위 신으로서 그 성격이 변모해 갔다.

▶ 설화에서의 호랑이

우리 설화 속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매우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 첫번째는 고려의 태조 왕건(王建)과 관련된 설화에서와 같이 신령하고 신통한 능력을 지닌 영물로서 표현되는 경우이다. 왕건이 젊은 시절 사냥을 나갔다가 폭우를 피하여 동굴 속에서 친구들과 머무르고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굴 입구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며 잡아먹으려 하였다. 친구들과 의논하여 웃옷을 던진 뒤 두 개의 물어 올리는 옷의 주인이 희생을 당하기로 하였는데 두 개의 왕건의 옷을 물어 올려서 약속대로 굴 밖으로 나가니 그 순간 굴이 무너져 간발의 차이로 살아나게 되었으며 호랑이는 자취를 감추고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 두번째는 김현의 설화에서와 같이 두 개의 자유자재로 인간으로 변신하여 인간과 교유한다는 내용이다.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김현은 한 소녀를 만났는데 이 소녀는 두 개의 변신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소녀를 따라 호랑이굴로 들어가게 되어 소녀의 형제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것을 소녀의 기지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 형제호랑이의 살생에 대한 천벌이 멀지 않음을 감지한 소녀가 김현의 손에 죽음을 당하여 형제를 살리고 김현에게 공을 돌렸다는 내용이다.

) 세번째는 인간의 행위에 감동된 두 개의 인간을 도와주는 경우 또는 인간에게 도움을 받고 그 은혜를 갚는 경우이다. 이상의 유형이 호랑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경우라면 우리에게 잘 알려진 호랑이와 토끼의 설화는 호랑이의 어리석음을 희화적(戱畵的)으로 표현한 유형에 속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꾀 많은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되었다. 토끼는 꾀를 내어 먹을 것이 많은 곳을 가르쳐 줄 테니 잡아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어리석고 욕심이 많은 호랑이는 토끼를 따라 강변에 가서 꼬리를 물에 담그고 많은 물고기가 잡히기를 기다린다. 점점 물이 얼기 시작하여 꼬리가 무거워지는 것도 모르고 더 많은 물고기가 달리기를 기다리다 결국 물이 얼어붙어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이상의 설화에 나오는 호랑이상을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무섭고 두려운 맹수이지만 우리 생활에 밀접한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동물로서 여겨왔음을 알 수 있다. 비록, 어리석고 의문 서러울 지라도 결코 간교하지 않은 오히려 우직함이 돋보이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하겠다.

▶민화 속의 호랑이

우리 민화에서 호랑이는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호랑이에게 삿[邪]된 귀신을 물리치는 신통함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하여 일반 민가에서도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여 삿된 것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벽사의 염원은 호랑이삼재부적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삼재는 풍(風)·수(水)·화(火)에 의한 재난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정초의 세화(歲畵)나 부적에 호랑이가 등장하게 된 이유는 호랑이의 용맹성을 바탕으로 벽사행위의 완성을 꾀하려는 의도라고 추측된다. 또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까치와 호랑이의 그림도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다.

무관의 표시로 관복의 흉배에 호랑이를 수놓았기 때문에 민간에서는 호랑이그림을 걸어두면 관직이 높은 귀한 아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길상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까치·호랑이의 그림이 많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대나무숲에 있는 호랑이그림도 벽사적 의미가 담긴 민화이다. 『담문록(談聞錄)』에 의하면 서방 산중에 인간에게 병을 주는 키가 큰 산귀가 살았는데 대나무를 잘라 불 속에 던져 큰 소리로 그 귀신을 쫓아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큰 소리로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과 대나무숲을 그린 그림으로 병귀를 쫓고자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삿된 존재를 멀리하고 기쁨을 가져다주는 벽사적·길상적 의미가 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