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시를 느끼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2.01.14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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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님은 갔지만 결코 보내지는 않았다고 절규하면서 그 사랑 가슴에 고이 품고 다시 해후 할 날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가져본다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 2004년 민예원 ]

 

만해 한용운은 시인이며 스님이었고 독립 운동가였다. 3.1 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이었으며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민족시인 애국시인으로 불린다. 오늘 소개하고자하는 님의 침묵 역시 님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님이 조국이라는 사람도 있고 부처님, 연인 혹은 부모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님이 누구이든 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은 사무치고 절절하다. 나에게 이 詩는 나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중학교 때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 제목만 보고 많이 의아했다. 침묵이란 단어를 알았기에 님이 왜 침묵했는지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읽으면서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은 채 절절한 시어에 흠뻑 빠져 달콤한 사랑 시로 즐겼다. 고등학교 때 이 시를 다시 만났을 때는 님이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조국일 수도 있고 승려였기에 부처님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다는 다양성에 놀라면서 무한한 해석이 가능한 詩 세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시의 은유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하여 읽는 사람마다 자기화 시켜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나름대로 즐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소년, 소녀시절 이 시에 푹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나도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너무나 애틋하고 절절해서 그냥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첫 행부터 슬픔에 찬 탄식조라 왠지 어둡고 무거운 중압감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절망가운데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쩔 수없이 헤어진 이유나 구구절절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사랑과 신뢰만큼은 단단하였음을 느끼게 된다.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다니 한 사람의 변심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헤어진 것 같다. 어느 한쪽의 변심 때문이라면 아픔은 더할지라도 잊혀지기는 아마도 쉬웠으리라. 다만 그런 믿음과 사랑이 있음에도 꽃같이 빛나던 맹세는 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을까? 상황 따라 마음까지 변한 걸까 하는 의문은 남게 된다.

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향기로운 님의 목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을까.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젊은 날의 감성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만날 때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였지만 이별은 느닷없이 다가왔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이 터진다고 했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슬픔에 젖어 좌절 속에 무너져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삶이다. 그것이 사랑을 망가트리게 되고 사랑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 슬픔을 새 희망의 거름으로 삼아 다시 님을 만나 사랑을 곱게 가꾸어 가려는 의지가 확실하게 보여 읽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한다. 사랑이란 어떤 고난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희망이 되기에 우리는 사랑에 모든 걸 걸고 집중하게 되나보다. 비록 님은 갔지만 결코 보내지는 않았다고 절규하면서 그 사랑 가슴에 고이 품고 다시 해후할 날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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