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대구 팔공산 동봉을 오르다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대구 팔공산 동봉을 오르다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1.1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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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골'이란 지명은 계곡에서 백일 정성을 들린 결과 아기를 '수태'한데서 유래했다고 전한다.
역시 높은 산이라 다른가 보다. 눈이 안 와도 눈이 있는가 보다
사통팔달, 겨울이 온 종일 머무는 ‘동봉’이란 표지-석 인근은 여전히 하얀 세상이다
동봉을 오르는 바위와 나무 계단 위로 상고대가 하얗게 서렸다. 이원선 기자
동봉을 오르는 바위와 나무 계단 위로 상고대가 하얗게 서렸다. 이원선 기자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해를 맞아 팔공산 동봉(해발 1,167m)을 올랐다. 눈이라도 흠뻑 내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을 안고 올랐다. 수태골을 산행의 들머리로 오르는 등산로는 늦가을처럼 황량했다. 두꺼운 등산복만 아니라면 아닌 게 아이라 가을 등산해도 무방할 만치 등산로의 풍경은 늦가을의 정취를 끓어 안고 있었다.

팔공산 동봉을 오르는 등산로는 대구의 진산답게 여러 갈래다. 동화사 염불암을 통해서 오르는 방법, 치산계곡을 통한 진불암을 거쳐 오르는 방법, 케이블카를 타고 낙타봉을 통해서 오르는 방법, 한티재를 거쳐 갓바위로 종주를 하는 중에 거쳐서 가는 방법과 오늘처럼 수태골을 통해서 오르는 방법 등이 있다. 수태골이란 지명에는 두 가지의 유래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어떤 부인이 아기를 낳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노인이 인근에 있는 계곡(현재 부인사 부근)을 찾아 백일 정성을 드리면 아기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부인은 그 노인의 말을 쫓아 계곡에서 백일 정성을 들린 결과 아기를 수태했다고 한다. 이에 후세 사람들이 ‘수태골’이라 불렀다는 설과 계곡의 물이 유난히 맑고 깨끗하여 수태(水台)라고 하는 데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수태골 초입에 접어들자 연리목(連理木:두 나무의 줄기나 가지가 서로 맞닿아서 결이 서로 통한 나무.)을 알리는 안내판이 겨울 속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서로 부둥켜안은 모습이다. 아직 연리목이라 이르기에는 그 연륜이 짧아 보인다. 십 년은 족히 지나야 서로를 인정하여 재대로 부둥켜안을 성 싶다. 현재는 이 넓은 세상에 너와 나만은 왜 비좁게 여기서 숨 답답하게 이러나 서로 원망에 겨워 밀어내고 있는 듯 보인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사랑인 듯 미운 인 듯 두 나무가 엉킨 모습을 보다가 산길을 타박타박 죽여서 오른다. 왼쪽 계곡 아래로 흐르는 물 위로 그래도 겨울인데 하얗게 얼음이 덮여 있다.

동봉 주위로 눈이라 덮인 듯 상고대가 하얗다. 이원선 기자
동봉 주위로 눈이라 덮인 듯 상고대가 하얗다. 이원선 기자

팔공산은 해발 일천고지가 넘는 산 답게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팔공산은 최고 높이가 해발 1,192.3m이다. 대구광역시 북부를 둘러싼 대구의 진산으로 신라 때는 중악(中岳)·부악(父岳)·공산·동수산(桐藪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동악으로 토함산, 서악으로 계룡산, 남악으로 지리산, 북악으로 태백산이라 하였다. 또한 팔공산은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 되었다. 현재 국립공원으로 승격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러 가지 풀어야 할 난제 등으로 인해 쉽지는 않아 보인다.

낙타봉 삼거리에 이르러 일행 중 누군가 하산 길에 접어든 등산객에게

“정상에 눈이 있습니까?”묻자

“예 언뜻언뜻 보입니다”하며 어서 가보라고 한다. 의외의 대답이다. 현재까지 대구에는 눈 다운 눈이 없었었다. 그런데 눈이 있다고 한다. 역시 높은 산이라 다른가 보다. 눈이 안 와도 눈이 있는가 보다.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지쳐서 뒷걸음치는 다리를 다독여 오른다. 낙타봉 삼거리를 조금 지나면 동봉을 오르는 막바지 코스로 ‘할딱’고개다. 한때 이곳에서 발이 묵인 적이 있었다. 아이제도 없이 오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미끄러지면 졸도 또는 사망이다 싶어 온통 빙판인 등산로를 벌벌 기어서 내려왔다. 감히 엄두도 못 낼 길을 가진 용을 써서 내려서자 온통 맥이 풀렸던 기억이다. 현재는 돌계단 등으로 잘 정비된 길이다. 게다 오늘은 얼음은 고사하고 한 줌 눈도 없다.

겨울 나목이 연출하는 상고대 터널 속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겨울 나목이 연출하는 상고대 터널 속으로 산을 오르고 있다. 이원선 기자

그래도 산길은 여전히 산길이다. 힘이 들기는 피차일반 같다. 꾸역꾸역 올라 비로봉과 동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자 별세계가 눈앞에 있다. 그제야 하산 길의 등산객이 말한 눈이란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때 등산객은 나목 가지가지마다 하얗게 올라붙은 *상고대를 두고 눈이라 표현한 모양 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표현하면 어떠하랴 좌우간 생각지도 못한 선물 보따리 같다. 어렵게 산을 오른 보상 치고는 너무나도 아름답다. 좀 더 일찍 올랐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벌써 12시를 넘어가는 시간, 중천으로 솟은 태양이 상고대를 신기루 사라지듯 하나하나 지우고 있다. 물방울이 되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부스스 으스러져 바람에 날린다.

하지만 사통팔달, 겨울이 온 종일 머무는 ‘동봉’이란 표지-석 인근은 여전히 하얀 세상이다. 바위 위로, 나무계단 위로, 하늘 위로 겨울이 온통 하얗게 내려앉아 있다.

*상고대 : 과냉각된 미세한 물방울이 나뭇가지 등의 물체에 부딪히면서 만들어진 얼음 입자. 사전적 의미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라는 뜻이다. 주로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한겨울 고산지대나 호숫가의 나뭇가지 등에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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