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6)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6)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1.1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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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구실을 붙여 지켜내던 정체성이 사상누각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 같다
주처에게 무력 대신 진정으로 학문을 하라고 충고 했지!
감골댁은 틈만 나면 할머니를 찾아와 ‘성~님, 성~님!’하며 그림자처럼 따랐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계림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말을 마친 감골댁의 얼굴이 더 없이 평안해 보였다. 자신의 말이 참이고 진실이라 무조건 믿어야 한다며 전날처럼 사족을 달지도 않았고 주입식 강변도 없었다. 눈을 뒤룩거려가며 의심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여 표정을 살피지도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았다. 할머니를 위해 칭찬을 곁들인 작은 거짓말은 믿든 말든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투였다. 그런 사소한 왈가왈부는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는 표정이었다. 그 평안함이 주위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훈훈한 온기가 말 속에 녹아 나고 있었다. 인상을 찌푸릴 일이 없다 보니 ‘소문만복래’라고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샘물이 솟아나듯 입 언저리로 선물 보따리처럼 웃음이 찾아 들고 있었다.

반면 청산유수와 같은 감골댁 말을 조용하게 경청하던 동네 아낙네들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의 감골댁이 아니란 생각에 심하게 고개를 흔든다. 당연히 십 원짜리를 곁들인 쌍욕 같은 악담이나 험담이 흘려 나와야 함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 일색이다. 이는 감골댁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본래의 색은 결코 아니었다. 그동안 감골댁이 온갖 구실을 붙여 지켜내던 정체성이 사상누각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것 같다. ‘와르르’티끌을 휘날리며 내려앉은 형상이다. 게다가 내일 쯤 하여 저녁에는 삶은 감자와 옥수수를 들고 할머니 집을 찾을 예정이라는 말에는 동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 볼 뿐 할 말을 잊었다. 꿀 먹을 벙어리가 따로 없어 어안이 벙벙하여 당황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싶은 것이다.

그 미미한 기루는 감골댁이 할머니를 찾고 부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가면서 보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씩 할머니를 찾아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결자해지’라고 감골댁이 할머니를 지목하여 미워하던 마음을 훌훌 털어 내려놓자 동네 사람들 역시 그동안 사슬에 묶여 속박된 느낌을 벗어나고 있었다. 물론 감골댁은 당초 맹세대로 할머니를 깍듯이 섬겨 성~님! 성님하며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그 와중에도 감골댁 집안의 횟배앓이 소문이 동네를 휘감아 시시각각으로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횟배앓이 소문이 펴져나감에 따라 감골댁의 농간으로 그간 사이가 벌어졌던 동네 사람들과 할머니와의 간극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었다. 그런 미미한 기루가 하루하루 들 불이 번져나가듯 커지기를 감골댁은 속으로 은근히 바라면서도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아니 나설 수가 없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라 근질근질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반대도 찬성도 없었지만 할머니 대신하여 동네 사람들을 위한 뒤치다꺼리는 도맡아 놓고 있었다. 그동안 자신의 지은 죄 닦음을 벌충이라도 하려는 듯 나날이 음으로 양으로 복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장막을 만들고 있었다. 감골댁이 누구인가? 비록 개과천선을 했다고는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언제고 그 못된 버릇이 도질지 모르는 일이라 동네 사람들은 여겼다. 꿩을 노리는 매처럼 깊숙이 감춰 두었던 발톱을 미구에는 갈고리처럼 드러내고 지금껏 할머니께로 향했던 화살이 방향을 틀어 불특정으로 지목된 자신들을 향해 날아들지 모르는 일이기에 여겨 자라목처럼 잔뜩 움츠린 형상이었다. 이는 동네 사람들이 감골댁의 개과천선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개과천선(改過遷善)’

“그거이 말이야 쉽지! 개과천선 그거 이 보통 일이 아니야! 내가 아는 바로는 중국 남북조시대 때 주처라는 자로부터 유래 되었다는데! 아~ 이놈이 힘이 장사인기여! 게다가 그 아버지는 ‘주방’으로 관아에 다녔나봐! 그래서 그런지 주처 그놈은 아버지의 쥐꼬리만 한 벼슬을 등에 업고, 제 힘만 믿고서 동네 사람들을 무시로 괴롭혔다 이 말이여!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마을에 세 가지 골칫거리가 있는데 앞산의 대호(大虎), 장교(長橋)의 교룡(蛟龍) 그리고 주처를 꼽았다지! 헌데 주처도 머리가 점점 굵어지다 보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싶어 착하게 살기로 마음을 먹은 기라! 하지만 동네 사람들이 당체 그 말을 믿어야 줘야 말이지! 그래 어떻게 하면 믿겠소? 하고 동네 사람들에 묻자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기 앞산에 살고 있는 대호와 장교에 살고 있는 교룡을 죽여준다면 믿겠소! 했지! 그러자 이 미련한 작자가 그길로 달려가 대호와 교룡, 이 두 괴물을 단 매에 때려 죽여 버렸다는구만! 헌데 동네 사람들은 처음 약속과 달리 주처를 더 무서워하다는 거야! 그 힘에 완전히 기가 죽어버린 거지! 잘못 걸리면 한 주먹에 뼈도 못 추릴 거라 여긴 거지! 그러자 더 이상 여기서 살 수 없다 여긴 주처는 다른 지방으로 떠나버린 거야! 주처의 개과천선은 그렇게 막을 내린 듯 했지! 헌데 주처는 동오라는 지역에서 육기와 육운 형제를 운명처럼 만난다는 거야! 그때 주처는 지난날의 과오를 들려주면 어떻게 하면 개과천선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 그러자 그들 형제는 주처에게 무력 대신 진정으로 학문을 하라고 충고 했지! 이에 주처는 그날부터 학문에 몰두, 훗날 유명한 학자가 되었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은 그제야 그의 개과천선을 완전히 믿었다고 했을 걸! 하하하”

개과천선이란 세치 혀가 아무 생각 없이 뿜어내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라 이처럼 어려운데 감골댁이 할머니가 제 아들을 살려내자 잠시 잠깐 마음을 고쳐먹었을 뿐 곧 본 색을 드러내리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할머니 집을 찾는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고 말조차 스스럼없이 하 질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감골댁은 자신의 과오로 인한 일이라 마음의 동요가 적잖이 일고 있었다.

새삼 곱씹어 봐도 시어머니의 질타가 백 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을 때는 같은 식군데, 그래도 내 배 아파 손자를 낳아준 며느리인데 하는 생각에 야속한 마음이 없잖아 일었지만 그만한 게 천만 다행이란 생각이었다. 헌옷보따리를 마당으로 내던져 천정을 들먹거리지 않은 것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감골댁이다. 자신의 죄를 통감한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죄스러운 감골댁이다.

그런 까닭에 시어머니께는 언제든 머리를 조아리고 꿇어앉아 사죄를 들릴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동네 사람들을 죄다 불러 모아 ‘감골댁은 지난 과오를 진실로 반성하고 참회하여 착하게 살기로 했노라!’하는 일장연설은 너무 주제넘다 여겼다. 또 그렇게 하기 엔 암탉이 울면 집안 망한다고 지금껏 지은 죄조차 씻을 길이 없는데 뜬금없는 해괴한 짓거리라 여겼다. 궁리에 궁리를 해봐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그저 침묵이 약이다 싶었고 무심코 뿌린 죄업으로 인해 할머니가 당한 고통의 십 분의 일 정도는 가늠할 수가 있었다. 그 죄를 만회하려는 듯 감골댁은 틈만 나면 할머니를 찾아와 ‘성~님, 성~님!’하며 그림자처럼 따랐다. 감골댁과 할머니와 동네 사람들 간에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속에 해택을 입은 건 ‘어부지리’란 말처럼 병석에 누운 고모였다.

남자들은 대게가 무뚝뚝하다. 남자란 태생이 본래부터 그래서 그런지 가령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께

“집에 누운 여동생은 좀 어때! 차도는 좀 있는감?”물으면

“차도가 있기는 뭐! 늘 그 모양에 그렇지 뭐!”하는 대답에 동네 사람들의

“그럼 자당께서 여전히 고생이 많겠네!”하는 정도가 대화의 거의 전부다.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하이구~ 끝순네요! 끝순이는 좀 어때요? 아직도 차도가 없나요? 밥은 잘 먹지요?”호들갑을 곁들여 묻고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좀 들여다봐도 되나요?”하며 방문을 연다. 허락 따위는 그 다음 일이다. 또 방문을 열고 방으로 냉큼 들어앉아 이불 밑으로 손을 밀어 넣어 딱딱하나마 고모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고는

“끝순아 그간 잘 있었니? 나 누군지 잘 모르지! 나 있지! 요 밑에 사는 성주댁인데 반갑다. 진짜 반갑다 그치~ 근디 얼른 일어나야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날 찾아와! 한데 끝순이가 제일 먹고 싶은 게 뭐가 있을까? 계란 찜, 계란말이, 감자떡, 마구설기, 곶감, 홍시, 알밤, 수제비, 배추 지짐이, 쑥털털이(쑥버무리), 칼국수? 하여튼 이 아줌마가 맛있는 것 많아 많이 해줄게! 약속! 이래 봬도 음식 솜씨 하면 동네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 얘!”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말을 건네는 등 나름대로 정을 낸 다음 격려를 곁들인 말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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