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5)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5)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2.01.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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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삐뚤어져 나쁜 쪽으로만 기울어져 치우치다보니 콩깍지가 덮어 씐 듯 고깝게 보였다
월나라의 중흥을 위해 목숨을 걸어 온갖 충성을 받친 문종과 범여도 포함되었다
똥 뀐 년이 성을 낸다고 언감생심 염두에 둘 수가 없었다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몹쓸 사람 같으니! 감골댁 자네 진짜로 우는 겐가? 참으로 못난 사람이네! 하긴 나도 영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네! 내가 언제 동네 사람들을 위해 발바닥의 때만큼이라도 인정은 낸 적이 있었던가? 말 한마디를 따뜻하게 받아 주길 했나! 늘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도망이나 다니기 바쁘고...! ‘고장난명’이라고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난다고...! 따지고 보면 자네 잘못 만은 아니네! 자네 말대로 마주쳐서 소리를 내야 했었는데...! 숨을 죽이고, 속으로 참는 것 많이 능사는 아닌데...! 잊어버리세! 지난날의 돌아앉아버린 모진 세월일랑은 물로 씻어 내듯이 깨끗이 잊어버리세! 나야 뭐~ 감골댁이 앞으로 그래만 준다면 무슨 원이 더 있겠나!”하고는 와락 치맛자락을 끌어당겨서는 감골댁의 눈물로 얼룩진 양 볼을 다정스럽게 쓰다듬어 훔친다. 그 바람에 어둠 속에서 밑 터진 속옷 고쟁이가 바소쿠리 벌어지듯 벌어져 할머니의 엉덩이도 벌겋게 들어 났을 것이다. 입 꼬리가 귀에 걸리 듯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옷매무새 따위야 어떻게 되든 아무래도 좋았다. 숨어서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흠도, 흉도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어느새 할머니의 눈에는 회환인지, 기쁨인지 모를 별 몇 개가 내려앉아 반짝거린다.

그런 와중에 할머니만 모르는 사실이 하나가 있었다. 딱히 숨기고 싶어 숨긴 건 아니었지만 그 사실은 여전히 동네 사람들과 척을 졌다 생각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옴짝달싹 않은 할머니 자신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밥상머리에서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슬며시 짓는 웃음을 오해한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언제 그 어렵다는 의술을 그만치 익히고...! 하여간 우리 엄니 대단해!”하고 엄지를 추켜세우듯 한다는 것이 할머니의 눈에는 비웃음으로 비쳤던 것이다. 이미 마음이 삐뚤어져 나쁜 쪽으로만 기울어져 치우치다보니 콩깍지가 덮어 씐 듯 고깝게 보였던 것이다.

할머니가 감골댁을 다녀온 다음날로 날이 밝자 일각이 여삼추로 시간을 죽여, 점심 무렵에 즈음하여 동네 사람들이 병문안을 핑계로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삽짝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물었다. 이구동성으로 감골댁을 향해 지금의 상태로는 씨알도 안 먹힐 건데 어떻게 할머니를 모셨냐? 물었다.

동네 아낙네들의 질문을 받은 감골댁은 할머니의 처방대로 식구수대로 약을 먹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웃는 모습이 세상만사 근심 걱정을 훌훌 털어낸 듯 더 없이 편안하고 맑게 보였다. 그리고는 지금 이 순간을 대비하여 마음속으로 이미 작정하여 준비를 한 듯 할머니를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의 현신처럼, 성모마리아의 아름다운 사랑처럼 한껏 포장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감골댁도 워낙 답답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찾긴 찾았지만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온몸을 바칠 각오를 했다는 말끝에 고대 중국의 고사를 하나 들었다. 감골댁이 옛 기억을 어렵게 되살려 끄집어낸 이야기에 따르면

고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때 오나라가 월나라를 침범하여 월왕 구천을 사로잡는 대목이 나온다고 했다. 그때 오나라로 돌아오는 과정으로 승자인 오왕 부차와 패자인 월왕 구천이 함께 탄 배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오월동주라 부른다. 마침내 고소성에 이르러 오왕 부차는 덩그렇게 높은 의자에 앉고 그 주위를 대소신료들이 시립한 가운데 월왕 구천이 행하는 항복의 예를 받는다.

그날 월왕 구천이 행한 항복의 예는 그의 생애 최고의 치욕으로 또 춘추전국시대를 들어서 최고의 치욕적인 장면으로 기록된다. 월왕 구천은 대전을 들어서기 무섭게 머리는 처녀귀신처럼 산발하고, 웃통은 홀랑 벗겨져 맨살을 드러내고, 아랫도리는 중요부분만 간신히 가려 네발로 대전바닥을 기어서 간다. 하룻강아지처럼 뒤뚱뒤뚱, 빌빌거려 긴다. 알몸으로 들어 난 어깨와 등짝으로는 장정들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채찍이 끊임없이 떨어져 생살을 파고드는 가운데 피를 흘리며 오왕 부차의 발아래로 향해 느릿느릿 긴다.

월왕 구천의 비루한 모습에 시립한 오나라의 대소신료들은 ‘꼬락서니 하고는...!’내남없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대전바닥을 네발로 꾸물꾸물 기어가는 왈왕 구천의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는 길들여진 한 마리 짐승 같았기 때문이다. 한때는 한 나라를 다스렸던 제왕이었다. 세상에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었다. 대소신료들은 말 한마디에 머리를 굽신굽신 조아렸다. 그들의 생사여탈권을 손아귀에 틀어쥐어 군림천하 했다. 마음에 드는 여인이 있으면 마음대로 취할 수 있었고 그녀들의 아낌없는 시중을 받았다. 끼니마다 온갖 진귀한 음식이 수랏상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기름지게 차려졌다. 그런 시절이 남가일몽처럼 스러지고 빌어먹을 똥개처럼 빌빌거려 기어가고 있다.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신세다. 처음부터 비천한 노비나 종의 신분이었다면 그런대로 견딜 만 했겠지만 한때 왕을 지낸 신분이라 더 비참하다. 마침내 오왕 부차의 탑전에 이른 월왕 구천은 제발 살려 달라고 손가락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싹싹 빈 끝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이날의 치욕을 가슴에 새긴 그는 와신상담 끝에 오나라을 멸망시킨다. 왈왕 구천이 구차하게 살아남은 데는 훗날의 영광을 위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왕 부차의 매화(변, 똥)까지 맛보는 굴욕을 참아 아부를 떤 것 역시 건곤일척의 기회를 노리고자 함이었다. 병석에 누운 오왕 부차의 매화를 맛본 그는 시큼한 것이 봄이 느껴진다고 했다. 새싹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간신배 흉내를 냈다. 그 말이 진실이었든가? 시난고난 앓아오던 병석을 턴 오왕 부차는 왈왕 구천을 일컬어 진실 된 신하라 칭하여 포로의 신분에서 석방한 것이다.

역지사지가 된 월왕 구천에게 항복의 예 따위는 없었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목숨만은 살려 달라는 오왕 부차를 단칼에 베어버린다. 나아가 지난날 월왕 구천이 항복의 예를 행할 때 치욕적인 장면을 지켜본 모든 사람들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그 가운데는 월나라의 중흥을 위해 목숨을 걸어 온갖 충성을 받친 문종과 범여도 포함되었다. 이를 눈치 챈 범여는 문종을 향해

“현재의 왕은 어려울 때의 왕이 아니다. 그는 고난은 같이 할 지언 정 영화는 같이 할 왕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취를 감춘 덕에 살았지만 문종은 끝내 월왕 구천의 신하로 남았다가 죽음을 당한다. 이는 초한지의 장량과 소하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감골댁은 정 안되면 월왕 구천의 흉내라도 낼 작정이었다고 했다. 죽어가는 자식 앞에 못할 것이 없다고 여겼다. 포락의 형을 흉내하여 숯불이나 불판 위를 걸으라면 걷고, 관노나 노비가 되라면 평생을 가도 지워지지 않은 문신을 이마 중앙으로 아로 새기고, 춤을 추라면 미친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출 수도 있다 여겼다. 또 옷을 벗으라면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벗으리라 작정을 했다.

부끄러움이 무엇이며 무서움은 또 무엇이란 말이냐? 저승길에 접어든 자식을 잡아서 살릴 수만 있다면 행동에 꺼릴 것도 없고,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다 다짐을 해온 터였다. 동서고금을 통 틀어 자식을 위해 이 한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어머니가 어디 한 둘이던가? 나도 자식을 둔 어머니다. 비록 참된 길을 벗어나 스스로 굴곡진 삶을 자청해서 살아왔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물론 할머니께 와신상담 같은 원한은 품지 않은 터였다. 애당초 생각 밖으로 두질 않았다. 똥 뀐 년이 성을 낸다고 언감생심 염두에 둘 수가 없었다. 한데 할머니는 아이가 아프다는 말에 선뜻

“아~ 이 사람아 아이가 아프면 진즉에 오질 않고, 이런 칠칠치 못하고 미련한 여편네를 보았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자네는 뭘 했나!”하면 허겁지겁 따라 나섰다고 했다. 보태어

“과거의 앙금이나 응어리는 꺼져 가는 생명부터 살려 놓고 따져 봅세! 머니~ 머니! 해도 사람 생명이 우선 인기라”하는데 관세음보살님의 자비나 성모마리아님의 사랑이 아니면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