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왜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가?
문 대통령은 왜 종전선언에 목을 매는가?
  • 정재용 기자
  • 승인 2021.12.31 10: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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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휴전 반대 세 가지 이유와
휴전 수락 네 가지 조건 되새겨야
정재용 기자

1950년 6월 25일 04:00시 북한군(인민군)의 전면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10:0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停戰協定, ‘휴전협정’으로도 불린다) 규정을 영문, 한국문 및 중국문으로 작성하고 같은 날 22:00시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함으로써 휴전에 들어갔다.

정전협정의 서언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一方)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하기(下記)의 서명자들은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 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 하기 조항에 기재된 정전 조건과 규정을 접수하며 또 그 제약과 통제를 받는데 각자 공동 상호 동의한다. 이 조건과 규정들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며, 이는 오직 한국에서의 교전(交戰) 쌍방에만 적용 한다”로 했다.

서명자는 국제연합군 대표단 수석대표 해리슨(William Kelly Harrison Jr)과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국 대표단의 수석대표 남일(南日)이 서명하고 이어서 쌍방의 사령관인 클라크(Mark Wayne Clark), 김일성, 펑더화이(彭德懷)였다. 여기에 휴전 반대 입장이던 한국 대표는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휴전 제의는 전쟁 발발 1년 뒤인 1951년 6월 25일 야코브 말리크(Yacov Malik) 유엔 주재 소련 대표가 처음으로 했다. 그는 전쟁 전의 38도선 경계를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김일성의 남침으로 제거된 38도선을 다시 재생시키는 어떤 휴전에도 반대 한다”는 입장이었다.

1953년 가을 리처드 닉슨(Richard Milhous Nixon) 미국 부통령이 내한 했다. 그와 대담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노예 상태의 북한 동포들을 해방시키기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적 방법이 안 되면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 지도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 한다”고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에 반대하는 이유로 다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모든 한국 국민들이 민족 통일을 원하고 있고, 둘째 북한의 재침이 없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이 없으며, 셋째 한국정부가 실질적 대표권을 가지고 회담에 참여할 수 없는 점이었다.

휴전회담은 한국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1년 7월 10일부터 15일간 개성에서 개최됐다. 1952년 11월 미국은 휴전을 공약한 아이젠하워(Dwight David Eisenhower)가 당선됐다. 1953년 3월 30일부터 휴전회담이 재개되어 국사분계선 문제를 합의하고 포로에 관한 협의를 계속했다. 국민들의 열망인 민족 통일이 무산될 것을 우려한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8일 유엔군이 관리하던 포로수용소 문을 열고 전격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시켰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국무차관보 월터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을 특사로 한국으로 보내 이승만 대통령을 달랬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 수락의 대가로 네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둘째 장기 경제원조 및 첫 조치로 2억 달러 원조 공여, 셋째 한국군 20개 사단으로 증강, 넷째 한미고위급회담 정례화였다.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나서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는 “싸워서 이기기보다 평화를 얻는 게 어려웠고 적군보다 이승만 대통령이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정전협정 후 68년을 지나는 동안 이 대통령이 제시한 휴전 반대 사유는 어느 것 하나 달라진 게 없다. 특히 두 번째의 ‘북한의 재침이 없으리라는 확실한 보장’은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로 한층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종전(終戰) 선언’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한반도 종전선언에 관한 토론회에서 이인영 통일부장관은 “종전선언은 비핵화 대화의 촉진제이자 평화 체제로 진입하는 입구” “68년간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전쟁 중지 상태'를 끝내야만 할 때”라고 했다.

지난 25일, 2018년 11월부터 지난 7월까지 주한미군 지휘했던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국의 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의 근본적 위협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데 유엔사 해체의 빌미를 줄 수 있는 종전선언을 굳이 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뜻으로 말했다.

재임기간 동안 뚜렷한 공적 하나 없는 문 대통령으로서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떠올리며, 2019년 2월 말 결렬된 베트남 하노이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아쉬움이 많을 것이다. 그는 내년 2월 베이징에서 개최되는 동계 올림픽을 종전선언의 마지막 기회로 노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에 앞서 로버트 에이브럼스 장군의 질문에 답해야 할 것이며 이승만 대통령이 왜 휴전을 극구 반대했는지?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휴전을 수락할 때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는 민족의 분단을 막고자 온몸을 던졌고 자신의 공명심(功名心)을 위해 국가의 운명을 걸지는 않았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