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4)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44)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12.27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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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의 구박도, 자자구구한 잔소리도 G선상의 아리아 선율처럼 들렸다
허물을 일일이 들추는 것도 모자라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소설을 쓰듯 부풀리고 있다
선함을 잡아먹은 죄악이 또 다른 죄악을 낳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9월 22일 한가위를 만 하루 지난 보름달이, 디아크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문제는 영원한 내 편이라 믿었던 서방조차 슬금슬금 자신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간혹 동네 사랑방에서 술판이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언뜻 언뜻 던지는 농담 중에 한 결 같이

“여자는 인물이지”하고 마누라인 감골댁을 빗대어 인물 타령을 하던 서방이 언제부턴가

“여자는 인물보다 맘이여”하며 마음이 착한 여자가 세상에 최고란다. 그 말은 즉 자신은 인물이 예쁜 아내보다 미모가 뭇 여인들에 비해 좀 빠지더라도 마음씨가 비단결 같은 아내가 좋다고, 최고라고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마누라의 인물값에 질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자궁처럼 남편이 사랑으로 내어주는 팔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어 아늑하게 잠자리에 들어 본지가 언제였던가 싶다. 시작점은 감골댁이 동네에서 치맛바람을 일으켜 독장을 치기 시작하면서 부터였고 손가락으로 꼽아 헤아려보니 기억에도 가물가물하다. 금슬이 좋을 때는 밤이 귀찮을 정도였다. 한 차례 운우지정이 지나 노곤하게 잠이 들까 하면 스르르 아랫배로 손이 밀려서 들어온다. 싫다고 몸을 비틀며 “아~이 또~!”하면 “왜~ 싫어~”하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서방님의 사랑을 먹고서 살아가는 여인네 감골댁이다. 귓전으로 뜨거운 입김이 훅 하고 덮쳐올 때는 마음과는 달리 자동화 기계처럼 몸도 후끈 달아올라 “아~이 싫다기 보단 당신 몸 축날까 그러지~”하며 밤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난다. 그렇게 긴 긴 밤을 반으로 접어 꼴깍 지난 새벽녘에 까무룩 든 잠결에 봉창이 희뿌옇다. 그렇게 몽롱한 오렌지 빛 아침을 맞을 때면 시어머니의 구박도, 자자구구한 잔소리도 G선상의 아리아 선율처럼 들렸다. 서럽지도 무섭지도 않은 날이다. 확실한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하단 마음의 안식처 때문이다. 시어머니조차 이내 눈치를 채곤

“새아가 너는 저리로 비켜라 보자! 만 피곤한 갑네! 좀 쉬 거라! 올 아적은 내가 어째해 볼란다. 녹슨 솜씨 좀 닦아보자!”하며 못이기는 척 부엌에 들지 않았던가? 또 그런 날이면 밥상을 마주한 서방은 입이 헤벌쭉 시어머니를 한껏 추켜올렸다. 나물무침이 감칠맛이 있다는 둥 뚝배기된장이 칼칼한 게 진짜 엄마냄새가 난다며 전에 없이 쩝쩝거려 먹는다. 알랑방귀의 립싱크지만 한껏 기분이 좋아진 시어머니는

“그만해라! 내 댁 안 뭐라 칼란다. 지레 겁먹기는 팔푼이 같이!”하며 새치름하게 눈을 흘기신다. 그런 모자의 행동을 보는데 여자는 참 요물인가 싶었다. 시어머니의 서슬 퍼런 예봉이 꺾여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은근한 질투심이 끓어 올라오는데 저녁을 맞아

“어머님이 끓인 툭사발이된장찌게가, 나물무침이 그렇게나 맛있었어! 미안하네요! 나는 음식 솜씨가 메주라서! 그동안 입에도 맞지 않는 음식나부랭이를 꾸역꾸역 먹는다고 고생했네요! 그캐 어머님 음식이 입에 착착 감기고 좋으면 앞으로 어머님이랑 같이 살아!”하며 이불 밑에서 손톱으로 허벅지를 꼬집는다. 그럴 때면 아픔보다는 기겁을 한 듯

“이거 왜~이래 나는 여보를 위한답시고...! 그냥 입에 발린 소리지 진짜로 그럴까? 혹시 엄마가 당신 나무랄까 싶어 그랬지! 알면서~”하고는 투박스러운 손으로 우격다짐 앙가슴을 헤집는다. 반항이라도 할 참에 비튼 몸이 노곤해지면 꽁하게 돌아섰던 마음도 일순간 봄 눈 녹듯 풀어진 밤은 농익은 홍시처럼 달달했다.

한데 이제는 팔베개는 고사하고 등을 돌려서 잠자리에 들기가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등판을 볼 때마다 거대한 암벽이 눈앞에 가로놓인 느낌이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겹겹이 누빈 솜이불을 덮고 누웠건만 가슴속으로 찬바람이 살을 에는 듯 차갑다. 뼈마디 마디사이로 얼음이 성기는 기분이다.

그렇게 날이 갈수로 싸늘해져만 가는 서방이다. 권태기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은 30대 초반으로 젊은 나이다. 이는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니다. 부부의 정이 식었다기 보다 한마디로 마냥 싫다는 것이다. 애정이 인물값에 질려 무정으로 발전해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가슴에 든 얼음장을 녹이고, 뒤틀어진 마음을 예전처럼 돌려보고자 목욕재개 후 갓 시집온 새댁을 찾아 생전에 없는 일진을 흉내하고 감언이설과 어르고 달래 지짐이 몇 장에 어렵게 빌려 온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으로 갈아입고는 은근슬쩍 허리를 감싸 안아

“자기야 으응~”하고 코맹맹이에 애교를 떨어도 소용이 없다.

“이게 시방 뭣 하는 짓거리여!”하고 징글맞은 찰거머리라도 달라붙는 듯 매정하게 떨쳐 낼 땐 서럽고 분한 마음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는 오기로 더 집착으로 달라붙어 보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겪이다. 이미 미움으로 돌아서버린 남정네의 마음이 동구 밖 길모퉁이선 바윗돌 같다. 여자란 자존심은 고사하고 눈앞이 캄캄하다. 이미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당하고보니 황당하고 당황스럽다. 흡사 냉동 창고에서 품어져 나오는 냉매가 얼굴로 확 달라붙는 기분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는 마음에 남자의 정신을 사정없이 홀린다는 사향인가 뭔가 하는 그 비싼 향수를 어렵게 한 방울 얻어 뿌려 봐도 목석이나 다름없다. 그저 소 닭 보듯, 통나무 보듯 한다. 이 모두가 감골댁 자신이 일으킨 치맛바람 때문이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느 날부턴가 아이들이 보건 말건 어미의 험담을 입에 담는다. 허물을 일일이 들추는 것도 모자라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소설을 쓰듯 부풀리고 있다.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은 비록 술기운을 빌었다지만

“이렇게 못돼먹고 막돼먹은 어미 밑에서 어째 효자효부가 나고 큰 인물이 날까?”하는데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자식들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 미상불 감골댁 본인 생각에도 동감이 간다. 이런 어미 밑에서 어째 효자효부가 나고 큰 인물이 날까 싶은 것이다. 지난날에 비추어 말 한마디가 자신의 영혼을 갉아 먹고 자신의 육신을 잡아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미로써 자식들의 앞날을 생각할 때 아닌 게 아니라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저 무섭고 두렵기만 하다. 공부해라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복 받는다는 말들이 자격지심으로 가슴속에서 칼로 저미는 듯 아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는 것이다.

역사에서 배울 것이 없다면 버리는 법이라도 배우라 했다. 이제 모든 것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감골댁이다. 그것만이 온전하게 살아남아 집안에 온전하게 발을 붙이는 첩경이란 생각에 이른 것이다. 과거의 사랑받는 아내로, 인자한 어머니로, 후덕한 효부의 며느리로 거듭나는 지름길이라 여겼다. 하지만 할머니가 그런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 감골댁의 속내를 까맣게 모르는 할머니는 감골댁의 흔들리는 어깨가 그저 애처로워

“아~ 이 사람아 이날 이적까지 온갖 험담으로 나를 그렇게 몰아붙이고도 아직 성에 차지 않아 이러는가? 아직도 그 가슴속에 또 뭔가가 남아서 이러는가? 이 몹쓸 사람하고는! 진정 내가 이대로 정지(‘부엌’의 방언)칼을 입에 물고 엎어져야 자네 속이 시원하겠는가?”하고 감골댁의 손길을 질색팔색으로 뿌리칠 때를 잊은 듯 감골댁의 파르르 떠는 어깨를 잡아가는데 감골댁이

“아니 아니어요! 그런 게 아니 예요! 성~님! 거짓말 같지만 모든 게 지 마음은 아니었어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린 듯 모든 게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참말이 예요! 미천한 이년이 미쳐서 나돌았나 봐요! 죄악이 선함을 잡아먹고, 선함을 잡아먹은 죄악이 또 다른 죄악을 낳는 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요! 구정물에 빠진 듯 허우적거렸을 뿐이에요...! 구층 지옥아래 유황불이 들끓은 진흙탕에 빠진 듯 뼈를 저미는 고통만 맛보았을 뿐이 예요!”하는데 할머니의 팔뚝으로 뜨끈한 무언가가 방울방울 떨어져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