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59)함박눈은 보리 이불
[사라져 가는 것들] ‘소평마을’ 이야기 (59)함박눈은 보리 이불
  • 정재용 기자
  • 승인 2021.12.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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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눈앞에 은세계가 펼쳐지고
길에서 만나는 얼굴마다 싱글벙글

1968년의 겨울은 입동(立冬)이 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어래산의 찬바람을 몰고 소평마을로 들이닥쳤다. 찬바람은 나흘간이나 계속되어 첫눈을 뿌리고 첫얼음을 얼게 했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9)의 묘비명(墓碑銘)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한다. 월동준비는커녕 미쳐 가을걷이도 덜한 농부들의 심정이 그러했다.

밤새 시작된 비는 이튿날 아침에도 계속됐다. 바람이 얼마나 세게 불었던지 헛간의 지붕 한쪽이 뒤집혀 있었다. 농부는 ‘빨리 탈곡을 끝내고 지붕을 이어야 할 텐데’ 마음이 조급했다. 이엉 교체하는 것을 ‘지붕인다’라고 했다. 비는 오전에 그쳤다. 뉴스는 리차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94)이 미국 제37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입동 후 사흘째인 11월 9일은 토요일이었다. 2교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창문 밖으로 첫눈이 내렸다. 아이들이 탄성을 질렀다. 선생님은 지시봉으로 연신 칠판을 두드리며 조용히 하라고 고함쳤다. 그 다음날 아침 교회로 가는 길에 보니 앞도랑에 두껍지는 않지만 첫얼음이 얼어있었다.

학봉댁 며느리가 버스를 타기 위해서 안강-기계도로를 향해 걷고 있다. 멀리 마을 뒤로 양동산이 보인다. 정재용 기자
학봉댁 며느리가 버스를 타기 위해서 안강-기계도로를 향해 걷고 있다. 멀리 마을 뒤로 양동산이 보인다. 정재용 기자

12월에 접어들면서 추위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눈이 오려는 날은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몸을 잔뜩 움츠려 떨며 “아, 춥다” 인사를 나눴다. “날이 새조그리한 게 오늘 밤에 눈 올 거 같다” “글체, 저녁 굶은 시어마이 같이 해 가지고” 새치름한 것을 ‘새조그리하다’ 또는 ‘새초리하다’라고 했다. 구름이 잔뜩 끼고 쌀쌀맞게 추운 날이면 눈이 내렸다. 온몸이 뼈마디부터 떨렸다.

이런 날은 일찌감치 저녁을 짓고 소죽을 끓이는 게 수였다. 아궁이에 짚단을 던져 넣으면 소죽불은 붉은 혀를 널름거리며 맛있게 삼켰다. 활활 타오르는 열기에 추위가 녹아내렸다. 짚단 속에 들어있던 벼이삭이 튀밥이 되어 하얗게 튀어 나왔다. 남의 말에 톡톡 잘 튀어 나서는 사람을 두고 “짚불의 박상(튀밥)”이라고 했다.

마당 한쪽에 짚 볏가리가 있었다. 소죽을 쑤다가 짚단을 더 가지러 나가던 소년의 머리 위로 눈송이가 흩날렸다. 어두컴컴한 하늘에 눈발이 가득했다. 소년은 음악시간에 배운 현제명(1902-1960) 작곡의 ‘눈이 옵니다’를 콧노래로 불렀다. “눈이 옵니다. 눈이 옵니다./ 시퍼런 하늘 날씨 춥더니/ 하얀 눈꽃이 초저녁부터/ 펄펄 집니다. 펄펄 집니다./ 한 송이 두 송이/ 날이 새도록” 한 솥 끓이는 데는 무댕기 서너 단이 필요했다.

저녁은 콩나물 넣고 끓인 김치밥국으로 뜨끈뜨끈한 게 제격이었다. 후후 불어가면 모두가 두 그릇씩 먹었다. 갱죽(羹粥)을 가득 담았던 커다란 원통형 알루미늄 ‘밥통’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은근히 화이트크리스마스를 기다렸다. 2주 전부터 성탄절 연습을 시작했다. ‘징글벨’, ‘창밖을 보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유치부 아이들은 무용을 하면서 ‘산타클로스 노래’를 연습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관제(?)를 짊어지고 지팡이 짚고/ 착한 아이 있는 곳에 오신답니다// 착한 아이 있는 곳은 어디였던고?/ 옳아, 옳아 여기로구나/ 그렇다면 좋은 선물 여기에 두고/ 착한 아이 잘 자거라 날 샐 때까지” 뉴스는 성탄절 무렵에 눈이 올 것이라고 예보했다. 반사 선생님들은 새벽 송 돌 걱정을 했다.

12월 22일은 일요일이자 동지(冬至)였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지팥죽에 넣을 새알을 빚으라고 하늘에서 쌀가루를 뿌리는 것 같았다. 눈송이는 시커먼 두엄더미를 하얗게 덮고 짚 볏가리와 초가지붕 위에 쌓였다. 장독대의 된장 고추장독과 고추장 단지 뚜껑 위에도 소복소복 쌓였다.

곤실댁 마당 앞 동네 어귀는 어른과 아이 그리고 개들이 따라 나와 북적거렸다. 눈을 굴리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벌였다. 개들은 앞공굴 쪽으로 펼쳐진 보리논을 미친 듯이 달렸다. 예배당 종이 울렸다. 맞장구를 치듯 기차가 기적을 길게 울렸다. 먼 산과 들판이 눈을 뒤집어쓰고 천지가 은세계로 변했다. 노천명(1912-1957)의 시 ‘첫눈’ 그대로였다. “은빛 장옷을 길게 끌어/ 왼 마을을 희게 덮으며/ 나의 신부가/ 이 아침에 왔습니다.// 사뿐사뿐 걸어/ 내 비위에 맞게 조용히 들어왔습니다.// 오래 만에/ 내 마음은/ 오늘 노래를 부릅니다./ 잊어버렸던 노래를 부릅니다. (후략)” 모두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사내들은 군대 제설작업 이야기로 열을 올렸다.

석주가 마당에서 나와 눈을 굴리고 있다. 오른쪽 벽은 한때 정미소로 운영되던 경자네 창고다. 정재용 기자
석주가 마당에서 나와 눈을 굴리고 있다. 오른쪽 벽은 한때 정미소로 운영되던 경자네 창고다. 정재용 기자

함박눈이 내린 다음날은 푸근했다. 아낙들은 밀린 빨래를 하러 큰거랑 빨래터로 달려가고 빨래터 가는 비탈에는 애들이 몰려나와 저마다 비닐 요소비료 포대를 깔고 앉아 미끄럼 타기에 열중했다. 옷이 젖은 애들은 언덕에 불을 질러서 옷을 말렸다. 소년도 미끄럼을 타다말고 불놀이를 했다.

그들 중에 오줌싸개도 있었다. 그는 도중에 오줌이 마려워서 언덕에서 약간 떨어진 논으로 갔다. 혹시 여자애가 보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둘러보고는 오줌을 눴다. 오줌에 눈이 녹고 짙푸른 보리 싹이 드러났다. 그는 “눈은 보리의 이불”이라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축축한 느낌이 들어서 잠을 깼다. 더듬어보니 이불이 젖어있었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문풍지가 푸르릉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