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청년이었다
모두가 청년이었다
  • 김종기 기자
  • 승인 2021.12.10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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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18일은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일이었다. 시험 며칠 전 부터 거리의 풍경이 작년과는 사뭇 달랐다. 수능시험에 별 관심 없던 지역 정치인은 물론이고 중앙의 국회의원까지 경쟁하듯 수험생 응원 현수막을 내걸었다. 사람이 붐빈다고 생각하는 사거리에는 어김없이 고3 수험생을 응원하는 현수막으로 물결쳤다. 선거연령이 낮아져 고3학생들도 투표권이 있는 탓이다.

이보다 앞서 제1야당의 당 대표선거에서 0선의 30대 젊은 후보가 창당 아니 우리나라 정치사 최초로 당 대표가 되었다. 야당의 제20대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도 20대의 젊은이들이 축하공연을 했다. 고3 학생이 연설문을 낭독하고 대통령 후보는 다음날 든든한 대한민국의 미래라고 칭찬을 했다. 선대위 각 부서마다 청년보좌역을 두고 공동위원장에 청년 사업가를 임명하기도 했다.

여당에서도 육사 출신의 젊은 장교를 영입했다가 이런저런 일로 사퇴하는 일까지 있었다, 야당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설 한번 한 것이 전부인 젊은 사람을 영입했다가 사퇴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청년이나 젊은 세대를 찾기가 바쁘다. 선거 때만 되면 영입하는 외부 인사를 이번에는 대부분 젊은 2030세대로 채우고 있다.

잘못 한다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 국가의 미래인 것도 맞다. 청년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청년들이 취업 절벽에서 절망을 하는 것도 맞다. 표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 유권자의 33%를 차지하는 2030세대를 무시할 수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표가 급하다고 해도 어린 고3학생까지 정치무대의 전면에 세워야 하는가? 요즘은 우리 시절에는 이란 말을 하면 꼰대라고 한다. 그렇지만 꼰대가 되어도 할 말을 해야겠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일제 강점기 시대에 태어나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은 불행한 세대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켰으며 전후의 잿더미 속에 오직 먹고 살기 위해 한평생 일만 했다. 때로는 가족의 생활고 앞에서 도덕도 정의도 모른 채 하기도 했다. 일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나와 가족보다는 지역과 사회를, 나아가 국가의 발전이 우선이라 생각하며 밤낮으로 일만 하며 살아왔다.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항상 바쁘고 집에서는 잠만 자는 피곤한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런 부모님 세대가 있어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나는 몇 년 전 정년퇴직했다. 코로나19 부스트 샷(booster shot) 우선 접종대상자인 고령자다. 흔히들 말하는 베이비부머(baby boomer)세대다.

다행히 우리 세대는 전쟁과 가난에서 벗어나는 산업화 시대에 살아왔다. 모두가 부유하지는 못했지만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IMF 외환 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여 일자리를 잃었고, 자영업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기성세대를 원망하거나 소외시키지는 않았다. 금붙이를 내놓으며 함께 노력했다. 고리타분한 옛날사람이라고, 꼰대라고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일만하는 피곤한 부모님을 보면서 내 자식에게는 다정하게 대하고 싶었고, 나는 어려워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 해주고 싶었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만하고 사신 덕택에 본인의 노후 준비는 변변한 게 없는 부모님을 봉양하면서 나는 내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온 기성세대가 무슨 잘못이 있어 소외 받아야 하는가? 지난 시절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는가? ‘예전에’ 라는 말만 하면 꼰대가 되는가? 기성세대가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해 온 경험은 필요 없는가? 생활에 찌들어 정치인의 술수와 비리에 무관심했던 일, 자식을 강하게 키우지 못하고 응석받이로 키운 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것 때문인가?

대통령 선거에서 5% 내외로 당락이 결정 될 것이라며 오로지 2030세대의 표심 잡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청년 정책들이 쏟아내고 있다. 나라 빚이 1천조 원을 육박하는데도 50조, 100조를 쉽게 이야기한다. 외상이라고 경제 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달콤한 공약만 내세운다.

여야를 막론하고 벌써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현실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다. 노후 대책이 전혀 없는 고령자들의 은퇴 후 생활에는 관심도 없다. 오로지 2030세대만 찾고 있다. 기성세대는 조건없이 자기들을 지지할까?

우리는 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만 온갖 감언이설로 표를 구걸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코빼기도 볼 수 없다는 것을. 정치에 대한 불신을 이제 청년을 넘어 고등학생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일자리 없어 취직 못하는 젊은 세대가 안타깝다. 내 자식도 대학 졸업하고 서른이 넘도록 아르바이트로 살고 있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암담한 세월을 살아가는 자식에게 ‘아빠찬스’를 쓰지 못하는 자신이 씁쓸하고 자괴감도 든다.

온고지신 (溫故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기성세대 없는 청년은 있을 수 없다. 청년들도 곧 기성세대가 된다. 기성세대와 청년들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이상적인 정치다. 당선을 위해서, 표만을 얻기 위해서 헛된 공약 남발로 정치 불신을 초래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 30대 젊은 당대표를 선출했겠는가? 기존의 정치인을 불신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것이 2030세대의 표로만 이루어졌겠는가?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국민의 희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