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 산책] 이관호 '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장서 산책] 이관호 '좌파와 우파의 개소리들'
  • 김대영 기자
  • 승인 2021.12.06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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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도 싫고 우파도 싫다!"
뽑을 사람이 없는 국민이 읽어야 할 책

저자 이관호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회적기업 ‘인문학카페’를 설립하고 다수의 기업체, 관공서,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 문제 해결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공급했다. 미래전략 싱크탱크인 여시재의 솔루션디자이너를 거쳐 현재 삼육대 스미스학부대학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저자는 직업 정치꾼들과 언론, 시민단체가 연대해 좌우 진영을 나눈 후,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한쪽에 들어가 싸울 것을 강요하는 현실을 오랫동안 참아오다 이 책을 썼다. 목차는 ‘1장 대한민국 보수도 틀렸고 진보도 틀렸다, 2장 대한민국 정치, 개소리에서 벗어나는 법, 3장 정치적 개인주의 선언’으로 되어 있다.

1. 보수의 6가지 정신

저자는 ‘근대 보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 ~1797)의 저술을 통해 보수의 정신을 6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보수는 기존의 것을 활용하려 한다. 따라서 전통을 해체하는 데 신중하다. 버크는 ‘신중함이 100년에 걸쳐 세운 것을 분노와 광포함이 한 시간 안에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검증된 모델 없이 지금 쓰고 있는 것을 없애면 곤란하다고 이야기한다.

둘째, 불평등은 보완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서 외치는 평등은 헛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을 결집시키지만, 이러한 기대감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실제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하였다.

셋째, 보수는 가치보다 현실에서의 실용에 관심을 둔다. 이를테면 진보는 반전, 평화, 여성, 환경, 민족 등의 가치를 추구한다. 뒤에 ‘~주의(ism)’를 붙이면 자연스러운 용어들이다. 반면 통상 보수의 특징이라고 이야기되는 신중함, 사려깊음, 절제, 책임감, 준법, 자율 등은 가치가 아니라 일종의 성품이다. 굳이 말하면 이 성품은 보수가 진보적 논제에 어떤 자세로 접근하는지에 대한 용어들이다. 즉, 이념 지향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실현 가능성과 유용성에 관심을 둔다.

넷째, 인간은 늘 실수를 저지르는 불완전한 존재다. 인간은 기계와 달라서 이성이 옳다고 여기는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버크는 정치인은 무엇이 옳은지도 고민해야 하지만, 동시에 불완전한 국민이 어떤 정서를 가지고 있는지, 다시 말해 ‘국민 정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정치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첫 번째 연구 과제는 자국민의 성향이어야 한다’라고 했다.

다섯째,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정책은 실패하기 쉽다. 버크는 돈에 대한 욕망을 예로 들었다. 탐욕은 악으로 흐르기 쉽지만 번영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정치인은 그런 국민의 정서를 인정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여섯째, 현실 문제는 단순한 이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버크는 혁명가들의 주장이 이론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의 도덕과 정치에서까지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치인이 옳다고 믿는 것을 실행하기 전에 국민 정서와 집단 간 갈등 상황, 종교적 역사적 맥락 등이 복잡하게 얽힌 현실을 종합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우리가 보수의 덕목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여기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원리보다 경험에서 지혜를 얻는 것, 전통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는 것,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며 법치를 신뢰하는 것, 신중함과 사려 깊은 태도를 가지는 것,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고, 규제보다는 자율을 추구하는 것 등이다.(55~61쪽)

2. 진보의 5가지 목소리

저자는 영국 출신의 미국 작가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글에서 확인되는 진보의 특징을 5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적폐청산을 주장한다. 잘못된 토대 위에 세워진 정치조직과 사회는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토대를 해체하고 원점에서 다시 건설하는 것이다.

둘째,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페인은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은 덜하고 무너지더라도 더 쉽게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이성은 이론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사유의 경제성 원리’라고 부른다.

셋째, 오래되었다고 정당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진보가 추구하는 단순한 해법은 ‘인간의 경험과 역사를 제거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진보는 전통과의 결별이라는 단절적인 역사관을 갖고, 아무리 오랫동안 써왔어도 잘못된 걸 안 이상 버리려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원칙이 오래됐는지가 아니라 옳은지 아닌지 여부다.

넷째, 증세를 통해 복지를 확장하려 한다. 페인의 발상은 자유주의에서 출발한 근대 좌파가 어떻게 복지국가라는 형태를 추구했는지 보여준다. ‘연금 지급은 부자와 빈민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공평해야 한다. 차별이나 구분을 막으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다. 연금을 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받은 돈을 공동 기금에 투척하면 된다.’ 위 인용문은 최근 이슈인 ‘기본소득국민운동’의 초기모델이라 할 수 있다. 어떤 국민이 이러한 제도의 혜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많이 지급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 받는 건 자유다.

다섯째, 토지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페인은 ‘땅을 창조한 조물주는 토지 문서를 발행하는 관청을 설치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토지 소유자들로부터 ‘지대’를 걷고, 기금을 조성하여 그 땅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받은 이들에게 보상해야 한다고 하였다.(69~73쪽)

3. 중도는 없다

‘프레임(frame)’은 주로 상대방이 자신을 공격할 때 그 공격을 폄하하는 용도로 쓰인다. 다시 말해 프레임 씌우기는 나쁘다는 걸 전제로 한다. 넓게 보면 ‘진보 대 보수’도 근대 이후 형성된 하나의 프레임이다. 국민 대부분은 정치인도, 언론인도, 학자도,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다. 따라서 정신적 구조물에 불과한 진보 대 보수의 싸움에 말리는 것은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일이다.

진보 대 보수라는 좌우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어쩔 수 없이 중간 지대를 만나게 된다. 그럼 좌파와 우파의 정책들을 적절하게 배합한 중도가 우리에게 옳은 길일까.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좋은 정책을 만든다는 면에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도가 정치권에서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 입문 초기, 안철수는 자신의 정치 성향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을 했다. 한국 정치에서 중도를 설명할 때 진보, 보수를 전제로 한 용어에 기대어 말을 하면 할수록 진보와 보수 프레임이 강화될 뿐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는 입장만 가지고는 노선이 형성되지 않으며, 노선이 형성되지 않는 정당은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은 얘도, 쟤도 싫다는 것만으로는 유의미한 기간 동안 뭉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철수가 이른바 별의 순간을 실기한 이후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려운 이유다.(158~159쪽)

4. 정치적 개인주의

진보, 보수, 중도는 관념일 뿐 실체가 없다. 있는 것은 오직, 당신이라는 실존뿐이다. 아무리 좋은 뜻도 빠져들면, 매몰되면 악으로 흐를 수 있다. ‘나는 진보야’, ‘나는 보수야’라고 믿으면서 상대편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가둬놓는 경계선을 과감히 지울 때 세상은 넓어지고 사유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개소리는 잦아들고 세상의 짜증은 줄어들 것이다.

‘나는 중도야’라고 생각하던 이들도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선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나는 그냥 나’임을 더 명확히 인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투표장에서 홀로 설 수 있을 때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 한 표는 우리의 민의를 가장 정확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은 진영 논리를 벗어나자는 메시지를 전할 뿐 무당파를 권유하는 건 아니다. 혹시 어떤 정당의 지지자인가? 진영 논리를 벗어날 때 당신은 당의 발전과 선거의 승리를 위한 훌륭한 구성원, 또 건설적인 토론을 독려하는 촉매자가 될 것이다.(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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