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쌓인 거리를 걷고 싶다
낙엽 쌓인 거리를 걷고 싶다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1.11.28 1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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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단풍의 계절,
상록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무는 다가올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떨켜가 잎맥으로 가는 수맥을 차단한다. 잎은 엽록소가 없어지면서 단풍이 든다. 녹색 일색이던 잎들은 각자 저마다의 색상을 드러낸다. 나는 예쁘게 물든 단풍이 삼 계절 수고한 인간을 위무하는 신의 선물이라 여긴다. 이리도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다 나타내려먼 조물주의 물감 창고는 얼마나 클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아파트주변만 해도 넘치도록 눈이 즐겁다.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수령이 400년을 훌쩍 넘겼다.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 많은 이들이 찾는다. 사람들은 노랑게 물든 나무잎을 보며, 온통 노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나무 밑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한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낙엽의 계절
금방 떨어졌을 때는 수분이 남아 고운 색깔과 예쁜 형태를 갖추고 있지만 가을 햇살과 바람결이 수분마저 거둬가면 바싹 말라서 색깔도 형태도 빛을 잃는다. 그때부터는 소리가 낙엽의 존재를 알리는 구실을 한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낙엽 깔린 길을 걷는 일은 낭만 자체이다. 낙엽이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말을 듣는 일이다. 혼자 걸으면 호젓하고 쓸쓸하고 연인과 둘이 걸으면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친구들과 함께 걸으면 정겹고 즐겁다. 오죽하면 여고생들은 낙엽 구르는 소리에 까르르 웃음보가 터진다고 할까.
나는 일삼아 낙엽길을 찾아 걷기를 좋아한다. 산길을 찾아 들면 수북이 떨어진 낙엽이 길을 덮어 자칫 길을 잃을까 걱정도 된다. 수북히 쌓인 낙엽이 발등까지 덮기도 한다. 나는 바삭거리거나 서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는 가을을 떠나보낸다.

다양해진 가로수 수종
내가 어릴 적 시골길 신작로는 미루나무가 주종이었다. 도시 대로변에는 플라타너스가 많았다. 차츰 수종이 다양해져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로 바뀌었다. 이면도로는 벚나무와 당단풍도 많이 심어졌다.
예외없이 가을이면 단풍들었다가 낙엽되어 떨어진다. 느티나무는 다양한 색깔을 연출한다. 노란 은행잎은 눈이 호사한다. 커다란 플라타너스잎이 떨어져 바람에 어지러이 날리는 걸 보는 일은 을씨년스럽다.

공공 일자리가 된 낙엽 쓸기
상가가 있는 도로변은 아침마다 환경미화원이 쓸어낸다. 낙엽은 그들의 애물단지다. 쓸어도 쓸어도 끝이 없다. 중간에 녹지대가 있는 대로변은 미화원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다. 나는 차를 타고 지나가다 낙엽 쌓인 길을 언젠가 걸어봐야지 마음먹었다. 우물쭈물하는 새 놓치고 말았다. 연두색 조끼를 입은 십수 명의 사람들이 매일 오전에 나와 마대에 낙엽을 쓸어담는다. 공공 일자리로 적격인가 보다. 한때는 시민들에게 가을의 낭만을 느끼게하고 정서함양을 위해 일부러 낙엽거리를 조성한 적도 있었다. 일자리 창출이 급선무라 쌓일 새도 없이 쓸려가는 낙엽을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나는 트렌치 코트 깃을 새우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낙엽 쌓인 거리를 걷고 싶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