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경영으로 강소기업으로 우뚝 선 인성금속 이성식 대표  
공동체 경영으로 강소기업으로 우뚝 선 인성금속 이성식 대표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11.24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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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 분야에서 40년 한 우물 판 뚝심 사업가
 IMF 위기를 기회로 삼아 창업에 투신한 남자
 불교의 윤회사상과 봉사 정신으로 회사 경영
직원들과 같은 작업복차림으로 집무실에서 파이팅 포즈로 답하고 있는 (주)인성금속 이성식 대표이사. 유무근 기자

모두가 힘들었고 부도 사태가 속출했던 IMF 때 사업체를 설립하여 성공한 뚝심 기업주가 있다. 칠곡군 왜관읍에서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인성금속 대표 이성식 사장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 많은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자가 속출하던 시기에 비상한 각오로 주물 기계 1대로 창업을 했다. 그 후 20년 만에 회사를 임직원 90여 명의 알짜배기 중소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한 사업가다.

이성식 사장은 회사의 성공 요인으로 복지와 신뢰를 꼽았다. 이 회사는 ’우리는 동반자다’라는 의식으로 똘똘 뭉쳐 직원들의 복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성원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부서장에게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효율적 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그는 1964년 경북 예천 출생으로 본관은 진성(眞城)이씨다. 고향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만 19살 겨울방학 때 대구로 나와 첫 번째 입사 한 직장이 영남금속이라는 회사였다. 그 뒤로 약 38년간 주조 계통에서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공동체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인성금속 이성식 대표이사에게 회사의 성장 과정과 인생의 희로애락을 들어봤다.

 

■ IMF를 기회로 삼아 창업

- 부도 사태로 망해가는 불안정한 시기에 회사를 설립하게 된 동기와 성장 과정을 말해 주십시오.

▶ “우리 회사는 주식회사 인성금속입니다. 1997년 IMF 때 설립을 했는데 그전에는 직장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과거에는 대부분 어음결제가 많았는데 IMF 금융 파동으로 그게 없어졌습니다. 제가 원래 주조 쪽에 일을 했는데, 주물은 쇳물을 녹여서 틀에 부어 형태를 뽑아내는 것이고 주조는 기계를 뽑아내는 것으로 주물보다 한 단계 위라고 보면 됩니다.

당시 이 대표는 직장생활도 한 십여 년을 했고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과거에는 90% 이상이 어음인데 IMF 터지고 나서는 99.99%가 현금이 유통되고 있던 시기였다.

인성금속이라는 회사 이름을 붙여 3공단에 30평 정도 되는 곳에 기계 한 대 놓고 시작을 했었다. 그렇게 시작해서 2년 정도 했다. 생산량이 많아 직원 수도 늘렸다

칠곡 동명에서 수주 물량이 많고 작업장이 협소하여, 200평 정도 매입하여 직접 공장을 지었다. 얼마 후 옆에 땅 300평 구매 증축해서 약 500평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가스레인지 부품을 생산하고 납품했다. 국내 가스레인지의 거의 80%를 공급하고 있다. 그때 가스레인지 사업이 참 잘 되었던 시기이다.

창업 때부터 같이 있었던 동생에게 가스레인지 공장을 넘기고, 저는 범위가 좀 큰 자동차 부품 쪽으로 2014년 9월에 왜관읍 아곡리로 이사를 했다. 지난달이 만 7주년이다.

▶ “여기서는 100% 자동차 부품만 생산하는데, 현대, 기아에 납품하고 폭스바겐에도 하다가 이제 자동차 배터리를 엘지로 납품합니다.

회사 인원이 90명 정도 됩니다. 영업. 개발. 품질. 경영기획 등의 부서가 있습니다. 지점은 없고 출. 퇴근하면서 납품도 하고 임직원들과 맡은바 열심히 합니다.

열심히 살면서 뒤에서 사람들을 도와가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큰 굴곡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 시작했을 때 사업이 좀 잘 됐어요.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어떤 좋은 일을 해본다고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요”.

■ 모든 직원은 각자 맡은 분야에서 대표이사다

- 짧은 시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디서 무엇인가요?

▶ 성공했다기보다는 사업이란 언제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며 하는 거니까 제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이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지금까지 이 계통에서 몸을 담았으니까 제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주)인성금속 분야별 6동 공장 전경.  유무근 기자

 

- 인성금속 공장 규모가 큽니다. 회사 자랑을 좀 해 주시죠.

▶ 제가 회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저희가 진짜 내세우고 싶은 것은 타사보다 기술력이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기계가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일은 사람이 하거든요.

사람이 하는 일에는 일단 조직이 잘 갖춰져야 하고 개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우리 직원들은 상당한 기술적 능력을 갖춘 분들이 많고 경영 능력도 저보다 뛰어난 직원들이기 때문에 저는 우리 직원들을 믿고 자기 스스로 하게끔 여건을 만들어 줍니다.

회사에 영업부도 있고 개발팀, 품질팀, 경영팀도 있지만 제가 항상 이야기하는 게 ‘개발팀의 팀장은 자네가 그 분야에 대표이사다’ 그리고 ‘품질팀의 팀장은 품질팀에서 자네가 대표이사다’라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아무 생각 없이 나는 여기에 녹을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애사심이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각 부서의 부서장이 그 분야에서 회사의 대표라는 마인드를 심어주는 데 애를 씁니다.

물론 총괄은 제가 하지만 자기 분야에 자긍심과 자부심을 품고 일을 해라. 어떤 이야기든 그렇게 해야 부서원도 신뢰감을 느끼고 따라오거든요.

판단이 안 서는 건 부서장들과 함께 앉아서 해결하든지 아니면 부서장 단독으로 앉아서 대화해서 성사를 시킵니다. 안 되는 부분은 뒤로 미룰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대표이사가 전체를 사사건건 간섭하는 것은 직원들이 할 일을 빼앗는 그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 부서에 직원을 채용했으면 간섭할 게 아니라 일을 하게끔 만들어줘야 하잖아요. 상사가 봐서 이게 아니다 싶든지 실수하는 것을 그냥 묻어버리면 앞으로 발전이 없거든요.

그래서 잘못된 거는 잘못된 대로 노출을 시키셔 비록 잘못됐지만,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만약 실수한 걸 묻어버리고 보고를 안 하고 그러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우리 직원들에게 자기가 책임자라는 생각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 회사를 경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 사업을 하면서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일에 쭉 매진해왔다는 게 가장 보람으로 느낍니다. 예천 골짜기에서 나와서 많이 배운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습니다.

중간에 물론 작은 시련도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4인 가족으로 친다면 약 100명으로 봤을 때 400명의 생활을 제가 책임지고 있다는 일을 상당한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본 공장과 연결된 주조 공장과 연구실 전경. 유무근 기자

          ■ 사회공헌은 기업인의 의무다

- 사회환원 사업 일환으로 봉사 활동도 하시나요?

▶ “좀 쑥스럽지만, 봉사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불우이웃 돕기도 했고 요양원 봉사도 했죠. 그리고 결손가정 네다섯 가족을 몇 년 동안 계속 지원했고 어린이 재단도 20년 가까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목욕 봉사도 하는데 경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제가 직접 노력 봉사도 합니다.

사업이 굴곡 없이 잘 되니까 필시 나에게 어떤 임무가 주어지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초록어린이재단이라든가 유사한 곳에 일부러 전화해서 도울 방법이 있느냐고 문의하니 방법을 말씀해 주시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계속 후원을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제가 좀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위에도 봉사 활동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이라고 하면 아마 아는 분도 많을 것입니다. 60대에 자기 사업은 후계자에게 다 맡기고 회사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봉사만 하시는 분도 주위에 많아요. 그래서 그 영향도 제가 많이 받았죠”.

“대구 서구에서 2층 건물을 자비로 지어서 독거노인 돌봄, 어른 음식 대접 같은 봉사를 하는 지인도 있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봉사하게 되고 그게 생활화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봉사 활동을 좀 하자고 제의를 하면 상당히 거부감을 일으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낀 점은 부유하다고 봉사하는 건 절대 아닌 것 같습니다.

주위에 지인들 몇 분한테 좀 도와주리라 생각하고 권유를 했는데 거절을 많이 당했어요. 그래서 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일회성 형식적인 이유로 하는 사람들 사진 찍고 생색내는 거 제일 싫어합니다”.

- 사모님의 역할과 가족 관계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 집사람은 가정에서 살림만 합니다. 저는 회사 규모가 작을 때도 집사람은 회사에 안 들렀어요. 왜냐하면 부인들이 회사에 나와서 업무를 보는 회사도 있는데 직원들이 사실 안 좋아하죠.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사업가로서 일했지 돈을 벌어서 부를 축적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는 것을 나 자신이 싫어했기 때문에 그냥 가정에서 애들 키우고 그러는 그것이 더 안심되고 내가 밖에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죠.

아들 둘이 있습니다. 4인 가족인데 큰아들은 스물여덟이고 작은 애는 스물두 살인데 군대에 가 있습니다. 딸 하나 놓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되더군요.

큰아이는 고시 준비 중이고 작은아들은 제대 후 복학하면 2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가서 공부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계십니다.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예천에 계시죠. 올해 90세입니다.

 

-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점도 많았겠지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지금도 힘듭니다.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이고요. 사업은 제가 숨을 거두는 그날까지 힘들다고 생각해요. 사업은 엄격히 따지자면 미래가 없잖아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고 모레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거든요. 잘 될 수도 있고 못 될 수도 있는데 잘 된다는 전제하에 계속 노력하는 겁니다.

그러나 시작한 그 날부터 힘들다고 예상하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 회사의 발전 방향과 비전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 희망이 보입니다. 자동차 부품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올해도 상당히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반도체가 내년 하반기쯤에는 완전히 풀린다니까 세계 경기도 좋아지면 회사가 잘 되고 직원들 주머니 사정도 좋아지겠죠.

그래서 직원들 복지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아이템 개발 부분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에 품목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완전히 반석 위에 올려놔야 합니다. 계속 노력을 하고 앞으로는 건설자재, 전자, 이런 쪽에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장기근속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복지가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장기 근속자들이 상당히 많죠. 이직률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회사가 좀 나아지면 복지 분야에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주려고 생각도 하고 있고 직원 생일이 되면 가족들하고 식사할 수 있게 금일봉도 지원하고 있는데 금액을 좀 올리도록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존경하는 인물이나 본보기로 삼고 싶은 기업가가 있는지요.

▶ 정주영 회장님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물론 이병철 회장님이나 다른 분도 우리나라를 위해서 노력했지만, 정주영 회장님은 자서전을 읽어보고 했는데 본인이 전부 창업을 한 분이에요. 그래서 이분이 존경스럽죠.

다른 회사를 보면 기존회사를 그냥 사들여서 문어발식으로 이어나갔는데 정주영 회장님은 모든 걸 창업을 해서 직접 공장을 세우고 제품을 생산해내고 특히 현대중공업 같은 경우에는 자서전을 보니까 58살에 창업했더라고요.

배 만드는 기술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현대중공업을 창업해서 세계 1등까지 올려놓은 그런 사례는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 회사 사훈과 생활신조를 말씀해 주십시오.

▶ ‘늘 처음처럼’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사람들이 가다 보면 변하는데 처음에는 낮추다가 돈을 좀 만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거만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는 ‘늘 처음처럼’이 글귀를 상당히 좋아하고 회사 사훈이라 할 것까지는 없지만 늘 강조합니다. 사람이 한결같아야 한다. 처음과 끝이 같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늘 처음처럼이라는 글귀를 좋아합니다.

 

■ 인과응보

- 살아오면서 어떤 생활신조를 가지시나요?

▶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 입니다. 혹시 나로 인해서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든가 이러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자. 생활신조랄지 모르겠지만 남에게 피해 입히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조금 손해 보면 다툼이 생길 일이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 진정한 봉사도 많이 하시고, 종교는 불교이신데 당대의 선행이 본인 또는 후손한테까지 미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 내가 다니는 절에 신도회장도 했죠. 어른들의 영향을 받아 저도 자연스럽게 불교를 믿게 되었죠.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3대 부자 없고 3대 가난 없다’라는 말도 있듯이 “제가 덕을 많이 쌓으면 그 밑에 자식들이 당장은 안되더라도 나중에는 분명히 좋은 덕을 쌓는 인재들이 나올 것이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불교에 윤회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덕을 쌓으면 덕을 쌓는 만큼 자손들은 그런 훌륭한 분이 분명히 나온다고 하는 거를 믿습니다. 악행을 저질러도 돈은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도 있어요. 결국은 아랫대로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위에서 보기도 했고 듣기도 했어요”.

“제 주위에 보면 부모가 잘살아서 돈은 많은데 지독할 정도로 몹쓸 행동을 하니 그 자식들이 별로 안 좋더군요. 그래서 불교에 몸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윤회설을 저는 믿습니다. 덕을 쌓으면 당대에 못 보더라도 분명히 아랫대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믿습니다”.

- 정치권이나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말씀을 좀 해 주십시오

▶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불합리한 부분이 많죠. 주 52시간 근무라든가 이런 게 너무 빨리 이루어집니다. 막 밀어붙이는 거 아닙니까. 시간을 두고 공감대가 형성된 뒤에 하면 좋은데, 중소기업은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밀어붙이니 정치인들이 너무 표만 의식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해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거울 앞에 서 있는 상대가 나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면 답이 나올 텐데 본인의 이득과 당리당략에 줄서기만 하니까 요즘 민생도 기업도 어렵습니다. 솔직히 본인들은 잘 먹고, 잘 살잖아요. 국회의원도 문제가 많죠. 4년 후를 내다봐서라도 지역민의 귀를 기울여주십시오.”

이 대표는 나훈아 노래를 좋아하고 신곡 ‘테스 형’이 애창곡이란다. 훤칠한 미남형에 겸손하고 부드러운 인상은 이성식 대표의 상징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임직원이 쉬고 있는 공휴일에도 인성금속 대표는 동반자 가족을 복지를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사훈과 지침이 부착된 집무실에서 희망의 하트를 보내는 이성식 대표이사.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