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김연자' 별칭이 붙은 재능 봉사자, 가수 이기자
'리틀 김연자' 별칭이 붙은 재능 봉사자, 가수 이기자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11.03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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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배운 웅변이 서울서 첫 직장 10년
남편이 달아준 예술단 재능봉사자로 행복 만끽
작은 김연자 별칭을 가진 팔공예술단 재능 봉사자, 가수 이기자. 유무근 기자

 

시골 학창 시절 배운 웅변이 인정받아 사회 첫발을 서울 웅변학원 강사로 발탁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연마한 특기가 업(業)이 되어 10년간 웅변학원 강사 생활을 했다.

부모님 성화로 고향에 내려와서 5년간 학원을 경영하면서 소상공인 사업가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학원 사업을 접었고, 한국 연예 예술인 연합회 가수로 데뷔한 사연 이 기자의 과정을 들어 본다.

◆ 천부적 소질

- 이기자님 본명은 어떻게 됩니까? 소개를 소상히 말씀해 주십시오.

▶ 본명도 이기자 입니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지요. 고모와 언니들이 이름을 그렇게 지어줬어요. 원래 돌림자는 귀할 귀(貴)자인데 나만 터 기(基)자로 해서 이기자로 지었죠.

제 고향은 경남 거창군 웅양면 동호리입니다. 2남 3녀 중 셋째입니다. 제가 웅변을 전문으로 했죠. 중학교 때부터 학교 대표로 대회를 많이 나갔었죠. 고등학교 때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웅변대회에서 우수상을 2회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노래를 시작한 지는 언제부터였나요.

▶ 선거운동 때 찬조 연설 많이 했어요. 어릴 때부터 동네 경연대회 이런 거 하잖아요. 다섯 살 때부터 노래했어요. 엄마와 동네 어른들이 귀엽다고 무대 올려놓으면 노래하고, 바가지도 상품으로 타고 소쿠리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합창부를 했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노래를 좋아하다 보니까 남편과 상의하여 2015년에 팔공 문화예술단 단체에 입단하면서 이렇게 시작한 것 같아요. 많이 늦은 것 같죠.

- 데뷔곡 3곡도 그때 녹음한 노래입니까?

▶ 작곡가 배원호 선생님과 노래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예술단 소속이 아니고 개인적으로 10년 전부터 1대 1 지도를 받았죠.

당시 배원호 씨는 작곡 작사 다 하셨습니다.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분에게 받은 곡이 ‘고향의 봄날아’, ‘즐거운 인생’, ‘그대는 내 사랑’인데 가사는 제가 다 썼고요. 선생님이 곡을 만들어 주셨죠. 선생님이 가사를 쓸 수 있으면 가사를 써오라고 하더라고요.

 

◆ 확고한 협력자

- 가족관계를 물어봅시다. 자녀가 몇 명입니까.

▶ 제 친정은 2남 4녀고 저희는 딸만 둘입니다. 큰딸은 28살 시인이고 작은딸은 25살인데 서울에서 패션의류 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사는 거죠. 남편이 많이 도와줍니다. 남편은 환경 관련 사업을 합니다. 큰 회사 폐수처리장에서 나오는 폐수에 약품을 처리해서 물고기들이 살 수 있을 만큼 깨끗한 물을 만들어서 내보내는 그런 일을 합니다.

제가 크게 협조할 건 없고 건강 관리하고 아침·저녁 잘 챙겨주고 내조를 그렇게 합니다. 남편은 학교에서 환경을 전공했고 지금까지 그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남편이 참 좋은 분이에요. 우리는 한 번도 싸워본 일이 없어요. 우리 아저씨를 사랑합니다.

- 가요계에 들어와서 대부(代父) 격인 배원호 작곡가, 고재봉 단장을 만났는데 접하고 난 소감을 말씀해 주십시오.

▶ 제가 선생님 곡을 좋아해서 찾아뵈었습니다. 배원호 선생님도 1년 넘게 지도해 주셨고 선생님께 많이 배웠습니다. 여기 고재봉 단장님은 가수협회 단원에 들어오면서 만났는데 섬세한 손동작 호흡법까지 참 많이 배웠습니다.

스튜디오에 와서 노래하면 포인트 탁탁 잡아주고 또 창법이나 노래를 잘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노래도 많이 늘었고 항상 옆에서 든든하게 도와주고 지켜주니까 감사할 따름입니다.

◆ 욕심 – 득인가 실인가?

- 여기에 들어와서 보람을 느낀 점이 있습니까

▶ 네, 어르신들 요양원 같은데 우리가 봉사하러 많이 갑니다. 가보면 몸이 불편하신 분이 많잖아요. 그런 곳에 가서 보면 마음 아플 때가 많고 눈물 날 때도 있고 그래서 우리가 손도 잡아드리고 하면 좋아서 눈물을 글썽글썽하는 분도 있고 그렇습니다.

가끔 선물을 포장해서 돌릴 때도 있죠. 양말 같은 거 사비로 10켤레씩 이렇게 사서 포장을 예쁘게 해서 어르신들에게 선물하고 하는 게 보람입니다.

그런 것도 남편이 도와주니까 하는 겁니다. 우리 아저씨도 팔공 예술공연단의 회장직으로 봉사합니다. 이동호 회장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까 참여하지 못합니다. 가끔 한 번씩 참여하기도 합니다.

- 힘들고 애로사항도 있었을 텐데요. 어떤 때가 제일 괴롭고 어려웠습니까.

▶ 없는 것 같아요. 굉장히 즐겁게 재미있게 살았어요. 또 아저씨가 뒷받침을 잘해 주고 화낼 줄을 몰라요. 우리 아저씨는 화를 내려고 그러면 웃음부터 나온다고 하니까 우리는 싸워 본 일이 없어요

또 단장님도 워낙 부드러우신 분이에요. 부드럽다 보니까 크게 뭐라 하거나 그런 것도 없어요. 항상 가르쳐주고 짚어주고 이렇게 하니 저는 인복이 많은가 봐요.

코로나19로 활동에 제약을 받을 때, 3평 남직한 녹음실에서 일상이 되었다고 한다.  유무근 기자

 

- 살아오면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을 텐데요.

▶ 특별히 어느 분을 대단히 존경한다 이런 느낌은 크게 없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외에는 보통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하잖아요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하면 부모님 이외는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밝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이 부모잖아요.

제가 셋째인데요. 언니가 나보다 10살이 많습니다. 오빠가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고 위에는 좀 나이들이 많아요. 활동도 많이 하고 학교에서 상도 좀 많이 받아오고 이러다 보니까 제가 셋째인데 터울도 있고 이쁜 짓을 많이 하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 이제 50대 중반인데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십시오.

▶ 제 나이 50대 중반이니까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이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입니다. 제가 노래할 수 있는 동안은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유 있으면 또 다른 봉사도 하고요.

- 가수 중에 닮고 싶은 가수가 있는지요.

▶ 중앙의 가수를 특별히 닮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내 나름대로 지방에서 이렇게 즐기면서 봉사하고 있으니까. 누구를 닮고 싶다 그런 욕심은 없습니다. 노래하는 게 좋으니까 하는 거지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해야지 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단장님은 나훈아 씨를 좋아하고 닮으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큰 어려움도 없고 부러움도 없습니다. 지금처럼 즐겁게 노래하고 봉사할 수 있는 게 좋습니다.

◆ 지금이 가장 행복

- 생활하면서 생활신조나 어떤 목표를 두고 있습니까.

▶ 생활신조는 남한테 폐가 되지 말고 외로운 이들을 찾아 즐겁게 도울 수 있는 게 생활신조이지 뭐 특별한 게 있겠습니까. 한 가지 더 있다면 근성이 나쁜 인간은 상종하지 않습니다. 저는 바른 소리를 좀 잘하는 편이에요. 성격이 그래서 마이너스가 될 때도 있어요. 마음에 없는 아부는 하지 못해요. 제가 알아서 관계를 유지하되 아닌 거는 아닌 거라고 바른말은 제때 하는 편이죠.

- 가수를 희망하는 세대들이 많은데 그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

▶ 저는 살아오면서 특별나게 욕심내지 않았습니다. 즐기며 도우며 살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 여기며 살아왔지요. 특히 가요계에서는 서두러고 욕심내고 보면 되는 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주위에 적이 생기고 손실도 따르는 것 같아요. 중앙무대 가수는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작은 영역이라도 최선을 다한다면 어떤 길이든 보일 것입니다.

지천명에서 이순을 바라보는 중년 이 시점에서 이 기자 씨는 행복을 만끽하는 것 같다. 부부 금실 좋고, 남편 건강하고 협조 잘해 주고, 자녀들 반듯하게 자리 잡았으니, 이제는 남편이 달아준 날개로 봉사단원이 되어 행복한 것 같다.

”배원호 선생 작곡 이기자 작사 ‘고향의 봄날아’. ‘즐거운 인생’ 내 노래와 흘러간 옛노래로 요양원 어르신들께 구성지게 불러 드리면 아기처럼 웃고 제 손을 잡고 즐거워하십니다. 이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밝게 웃는 모습은 흡사 김연자 중앙가수를 대하는 듯하다.

녹음실에서 일상으로 실력을 연마하는 가수 이기자.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