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덕사의 추향제(秋享祭)
상덕사의 추향제(秋享祭)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10.14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상덕사(尙德祠)는 경상도 관찰사 이숙 공과 유적기 공의 추향제를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받드는 곳이다
상덕 비각이다. 안에는 상덕사비 이숙 공과 유척기 공의 영세불망비와 4기의 비가 있다. 유병길 기자
상덕 비각의 모습이다. 안에는 상덕사비, 이숙 공과 유척기 공의 영세불망비와 4기의 비가 있다. 유병길 기자

덕사는 경상도 관찰사 이숙(李䎘)공과 관찰사 유척기(俞拓基)공의 향사를 함께 받드는 곳이다.

상덕사의 향사는 해마다 대구 중구청에서 향사 비를 지원받아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문우관 관장 및 관원들, 기계유씨 대구․경북종친회장 및 회원들이 참석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추향제를 지냈다.

상덕사의 대문 진덕문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상덕사의 진덕문(대문)과 상덕사비각, 문우관 안내판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상덕사는 지금의 대구시청 부근에 있었다. 1910년 대구이사청 신축공사로 상덕사를 헐게 되자 지금의 위치인 남산동으로 상덕사비와 비각(尙德祠碑 碑閣)<문화유적 0901-20-016>을 옮겨 짓게 되었다.

조선 현종 신혜(1671년) 영남지방에 기근이 들었는데 이숙(李䎘 1626~1688)을 1672년(현종 13) 1월 경상도 관찰사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해와 주민들이 기아에 빠진 것을 구휼하는데 힘쓰고, 학교의 진흥에도 힘써 선비들이 모여 공부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가 떠난 뒤 공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선비들은 동문 밖(현재의 대구시청 부근) 상덕사란 사당을 세우고 살아있는 제사를 받들었다. 그 뒤에 여론에 따라 모든 의식을 서원과 같이 하였다.

그 후 50여 년 뒤인 영조 2년(1726년) 5월 경상도 관찰사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해온 유척기(俞拓基 1691~1767)가 이듬해 6월까지 1차 재임한 후 10년 뒤인 영조 13년(1737년) 7월에 경상도 관찰사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해와 이듬해 7월까지 있으면서 많은 선정을 베풀었다. 유림에서는 유척기의 공적이 이숙의 공적과 같다 하여 이숙과 함께 상덕사에 병향하였다.

이숙의 자는 중우, 호는 일휴당이고 본관은 우봉인으로 관이 우의정에 이르렀다. 유척기는 문신으로 자는 전포, 호는 지수재이고 본관은 기계인으로 관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비각안에 세워진 상덕사비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비각안에 세워진 상덕사비. 유병길 기자

상덕사비(尙德祠碑)

이 상덕사비는 그러한 내용을 새긴 것으로 순조 26년(1826년) 12월 유척기의 외외증손인 통훈대부수 경상도관찰사겸 병마수군절도사순찰사대구도호부사로 왔던 조인영(趙寅永)이 비문을 짓고, 유척기의 외현손 통훈대부행 개녕현감겸 상주진영병마절도제위 홍치규(洪穉圭)가 비문을 쓰고, 또 유공의 증손인 통훈대부행 안의 현감겸 진주진영 병마절제도위 장주(長柱)가 면전을 써서 상덕사 뜰에 세우고 비각을 지어 보존해 왔다. 오석으로 된 상덕사비의 크기는 비신의 높이가 143cm, 폭 58cm, 두께 29cm이며 팔각지붕형의 비개는 황백색 화강석으로 높이 50cm, 폭 109cm, 두께 77cm이다.

상덕 비각 안에는 「상덕사비」 「순찰사 이공숙 청덕선정비」. 「관찰사 유척기 영세불망비」. 「겸 순찰사 유상국휘척기 영세불망비」. 이숙의 후손 비석인 「도순찰사 친군남영사 이공호준 영세불망비」가 보존되어 있다.

순찰사 이숙 공
순찰사 이상공 숙 청덕선정비. 유병길 기자

 

유척기 공의 영세불망비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관찰사 유척기 공의 영세불망비. 유병길 기자

문우관(文友觀)

문우관(文友觀)은 1914년 뜻을 같이하는 선비들이 상덕각에 모여 강학할 장소를 삼고 각론 규례를 정하여 시행하고 학문을 진흥할 목적으로 1918년 7월에 상덕사 경내에 세워진 학당이다. 문우관에서 상덕사를 관리하여 왔다.

1987년 추향을 마치고 새로운 임원진 관장에는 박대용(朴大鎔)씨 총무에 김남기(金南基)씨가 선임되어 상덕사와 문우관의 환경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박배근(朴培根) 대구시장의 특별한 지원금 1,800만 원으로 전면적으로 고치고 수리하게 되었다. 특별히 정화사업이 끝난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추향을 기하여 준공기념식도 가졌다. 기존의 문우관원들은 물론이고 중구청장, 기계유씨 종친회장을 비롯하여 100여 명이 참석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상덕사의 새로운 면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선현(先賢)을 높이고 유도(儒道)를 보위하며 륜강(倫綱)을 밝히고 학문(學問)을 진흥시키려던 문우관의 근본정신도 인식되게 되었다.

※尙德祠碑陰記(領議政 趙寅永). 尙德祠와 文友觀(啓明大 大學院 金洪永). 대구의 金石文(향토문화유산1). 달구벌(1977) <참고>

.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상덕사 추향제를 지내지 못했다.

제사 상   유병길기자
진설된 제사 상의 모습니다.  유병길기자
초헌관 잔을 올리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초헌관이 술잔을 올리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초헌관이 절하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초헌관이 절하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세분이 같이 절하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제관이 같이 절하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올해는 거리두기로 문우관에서 초헌관 김남기 관장, 아헌관 석창순 님, 종헌관 박종우 님만이 참석하여 추향제를  지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