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민진기 국악원 원장, 한(恨) 서린 ‘비나리’
인간문화재 민진기 국악원 원장, 한(恨) 서린 ‘비나리’
  • 유무근 기자
  • 승인 2021.10.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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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령을 위로하고 천도하는 국악 진혼곡 ‘비나리’
유망한 제자 특별 지도교실 개설, 재능 기부하기도
비나리 공연 사진 배경으로 하트를 보내는 민진기 국악원장.  유무근 기자

초등학교 5학년때 고향 장터에서 우연히 들은 무을풍물(舞乙風物) 소리의 벅찬 감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넋을 잃고 관람한 소년. 이제 50년이 지나 그는,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예능 전수자로서 국악원 원장이 되어 지역 국악 계승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어릴 때는 본인 재능을 모르고 자라왔다는 그. 30대에 국악을 시작하여 풍물까지 이수한 민진기(61)원장. 금오산 정기를 이어받은 듯, 금오산 입구 ‘민진기 국악원’을 개원하여 원생을 지도하는 민 원장을 만나 고진감래 삶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장구채를 힘 있게 치겨든 민진기 원장의 눈빛에서 희망도 보인다.  유무근 기자

 

◆평생 스승을 만나다

-국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와 시기는?

▶선산 도개면 자산리에서 태어나 구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녔다. 육 남매 중 넷째로 음악을 특별히 좋아하는 형제는 없었으나, 할머니와 삼촌께서 소리를 무척 좋아하셨다. 당시에는 양반 가문 내력 운운하며 소리꾼 직업은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국악에는 장단이 있고 소리도 있고 풍물도 있는데, 풍물에는 리드가 있고 상쇠 꽹과리 소리가 너무 좋아 오직 국악에만 흠뻑 빠져있었다. 정말 제대로 배워 보고자, 이광수 선생님을 찾아 삼고초려했다.

선생님은 5살 때부터 남사당패에서 커오신 분인데 타고 난 구성에 매료되어 선생님의 한이 서린 듯한 ‘비나리’ 창(唱)이 너무 좋아서 수백 번을 듣고 다 외워서 찾아갔다.

당시 미성(微聲)의 소리였고 어떻게든 비나리 전수가 소망이었는데 소리가 따라가지 못하여 고민하던 중 민요를 병행하기 위해 입문했다. 인간문화재 이춘희 선생님께 전수를 받았다. 이춘희 선생님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0호 정도(正導) 교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광수 선생은 비나리였다고 하면, 지금 하는 소리는 경기민요이다. 깊이도 있고 전통문화를 아우르는 퓨전이라 할 수 있는데 민요를 병행하면서 한참 후에야 이광수 비나리를 전수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를 곧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지만, 국악은 30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60세 되도록 한 20년 배운 셈이다. 민요를 시작한 계기는 ‘비나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깊이 빠져들고 경지에 다다르고 뒤돌아보니 여러 자격증도 취득하게 되었다.

◆국악 스승이 되고자

▶민진기 원장은 2011년도에 구미 봉곡동 문화센터에서 대학부 학생들 지도하면서 국악원을 개원했다. 2019년 구미 금오산 자락 남통동으로 확장 이전하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국악원 수업 일정은 학생 수가 제한되어 있다.  2019년 남통동 공간으로 이전하여 10여 명을 지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키워낸 제자는 현재 학생과 합하면 100여 명 된다.

민 원장은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국악원에서 강의하는 수업 외에, 안동 가톨릭대학 평생교육원 수업을 4년째 받고 있다. 구미 효 노인센터에서 주간 보호 대상자 강의, 성주군에서 시행하는 경로당 강의, 선산 구미문화원 평생교육원에 초청 강의도 한다.

-민진기에게 국악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우리 민족의 소리 정서이면서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 삶의 역사라고 여겨진다. 노동요, 애정 요 다 들어가 있고 가사를 보게 되면 구전에서 전해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흥과 한이 들어가 있다. 국악은 한국인들과 불가분한 관계 문화라고 할 수가 있다.

6.25 격전지 망정리 추모 행사에서 비나리 진혼을 준비하는 민진기 국악원장.  유무근 기자

 

◆온몸에 한(恨)의 전율이 흐르다

어머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그리움에 싸여 한이 많이 쌓인 것 같다. 민요를 부르면 진한 한을 느끼며 섬세한 동작으로 토해낸다는 것에 위안과 힐링이 되는 것 같다.

-20여년 국악 발전에 몸담아 오면서 보람된 기억이 있다면? 

▶요양원과 경로당 봉사를 나가게 되면 보람을 느깐다. 어느 선생님이나 같겠지만 초보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기대 이상으로 기량이 향상되는 것을 보면 기쁘고, 대회에 출연하여 수상할 때 보람을 느낀다.

민 원장이 가르친 제자 중에는 일부 지역 대학이나, 구미 성주 칠곡 일원에 강의를 다니면서 기량을 쌓는 이도 있다. 장래가 보이고 능력 있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국악 발전의 하나로 재능 기부를 하는 것은 유망하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자함으로써 보람있다.

-일각에서 예술은 항상 배고픔을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을 가지고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살아온 이력이 있지만, 시작부터 예술세계는 예술이라는 자체에서 승화되어야 한다.

◆소리라는 것

소리를 해보면 금방 태어난 아기가 자라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소리는 느는 속도가 아주 느리게 계단 속도로 변한다. 주~욱 아주 길게 목을 쓰는 민요를 하는 사람들은 처음 소리를 시작하면 목이 쉬고 결절이 나고 잔기침하는 시기가 있다. 7~8년 공부할 때까지도 그런 증상이 나타나고 15년 정도 되어야 목 조절에 안정이 된다. 숨만 들이마시면 잔기침 때문에 소리를 못 내다가 대략 2년 정도면 나아진다. 소리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목 관리가 중요함으로 식생활이라든가 소금 양치질과 구강 관리 특히, 감기 조심은 필수이다.

- 평소 생활신조가 있나요?

▶불가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념염보리심(念念菩提心)'을 새긴다. 무언가 꿈을 가지고 이루려면, 시일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뤄지는 느낌이다. 머릿속에 집중적으로 화두를 틀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을까?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생활하면 어느새 이루어진다. 기도나 참선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 '념염보리심'은 내게 거는 주문이다.

칠곡군 망정 겔러리에서 비나리 공연에 입장하는 민진기 원장과 수석 연수생.  유무근 기자

 

- 존경하는 인물은?

▶존경하는 인물 국악인으로 볼 때는 중요무형문화재 이춘희 선생님을 존경한다.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양성하셨다. 사회적으로 존경하는 인물은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회장이다. 두 분은 경제를 일으켜 선진국 대열에 초석을 이루신 분들이다.

 -정부에 하고 건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악을 배운 사람들이 트로트 무대에서 주목을 받는다. 수입성이 좋은 트로트 쪽으로 빠지는 현상이다. TV 프로그램에서 국악 장르 프로그램을 더 넓혀 주면 좋겠다. 프로그램이 토요일 오후 KBS1 국악 한마당 이것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락 소리가 소멸하여 버릴까 걱정이된다. 돔 상설 무대가 시급하다.

공단지역인 구미는 젊은이들의 광장 그 특성은 있으나, 국악인 및 장르인들을 위한 공연무대가 없다고 할 정도로 빈약하다. 야외 돔 공연장에 비가림막이 설치된 무대가 칠곡에는 있으나 인구가 훨씬 더 많은 구미에는 없다. 예술인이면 건의하는 사안이기에 기관에 건의드린다.

-국악을 배우려는 예비자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국악은 한(韓) 민족의 한(恨)이 담긴 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기를 권한다. 젊은 분들이 국악을 하게 되면 ‘가요 오디션’에도, 발성 면에서도 유리하다. 국악은 자산도 될 수 있으며 튼튼한 목을 가질 수 있어 건강한 수명을 누릴 수 있어 좋다. 시. 군 복지관 문화센터의 문을 두드려 보면 저렴한 비용으로 습득하는 방법도 있다.

◆민진기 원장=국가중요 무형 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 전수자, 평안남도 무형 문화재 제2호 향두계 소리 전수자, 이광수 비나리 전수자, 구미대학교 평생교육원 민요 강사, 가톨릭 상지대 평생교육원 민요 강사 겸 도서 민요 & 장단 장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상주시 민요경창 대회 신인 부에서 입상을 계기로, 대회 참가할 때마다 대부분 입상하여 30여 회 수상한 바 있다. 2012년~2016년까지 많은 국악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민 원장은 인맥 부자이기도 하다. 국악원을 이수한 여러 수강생은 채를 놓지 않는 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대기업 출신답게 훤칠한 키에 부드러운 인상이 민 원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y 원생(50여)은 “선생님의 비나리 공연 때, 발등과 손끝 온몸에서 묻어나는 고개 동작 하나하나에 전율이 솟는다"고 한다.

문화의 도시 구미 지역 일대에 심혈을 기울이는 民心(민진기 마음)에 응원을 보낸다. 민진기 국악원은 구미시 남통동 70번지. 남화사 사찰을 찾아 들어오시면 ‘민진기 국악원’ 현판이 보인다. 인터넷에서  ‘민진기 국악원’ 으로 검색하면 자세하게 알수 있다. 

행사를 마치고 김경숙 낙동강예술단회장(우측)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유무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