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졸 검정고시 만점 화제 일본인 '카와노 아키코 씨'
올해 초졸 검정고시 만점 화제 일본인 '카와노 아키코 씨'
  • 강문일 기자
  • 승인 2021.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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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5돌 한글날 기획 - 올해 초졸 검정고시 만점 "카와노 아키코씨 "

 

한글날
카와노 아키코씨와 딸 황보리사양

 

“펜팔로 한국이란 곳을 처음 접했는데,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살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죠.”

포항시 북구 환호동에 거주하는 카와노 아키코(47·여)씨는 지난 2005년 결혼 이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1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아키코씨는 고등학생 시절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다. 바로 ‘펜팔’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살던 아키코씨는 1990년대 초 평소 읽던 잡지의 펜팔 코너를 보고 별생각 없이 본인의 주소를 남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펜팔이 되길 원하는 이들로부터 보내진 편지가 한 통 한 통 도착했고, 100여통에 달하는 편지가 아키코씨의 방안에 쌓여 있었다.

편지들을 읽고 답장을 써내려가던 그녀는 문득 ‘100장 모두에 답장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먼저 읽게 된 몇몇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냈는데 답장을 받은 이들 중에는 한국에 살던 동갑내기 여고생 친구가 있었다.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진 않았지만 꾸준히 펜팔을 이어오던 아키코씨는 펜팔친구로부터 카세트 테이프를 선물 받았다. 테이프에는 가수 신해철씨와 윤 상씨의 노래가 들어있었다.

아키코씨는 “당시 노래 가사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지만, 한국어는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후 같은 펜팔 친구로부터 한국여행을 권유받은 그녀는 1994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첫 여행지는 친구가 살던 ‘포항’이다.

짧은 기간 동안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일본으로 돌아온 아키코씨에게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결국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1999년 고려대 한국어학당에 입학해 1년 동안 한국어를 배웠다.

아키코씨는 “한글을 배우는 건 비교적 쉬웠지만,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지금도 읽는 속도는 빠르지 않다”며 “서울에서 공부할 때 버스를 타고 다니며 유학생들과 간판을 읽으면서 생활 속에서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연습하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부산의 한 일본어 학원에서 2년가량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무렵 펜팔 친구로부터 현재 남편을 소개받아 연애를 시작하면서 점차 한국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2~3년가량의 연애 끝에 결혼을 마음먹고 일본을 떠나는 순간에도 큰 슬픔은 없었다.

휴가철마다 일본과 한국을 오고 가기도 했고, 든든한 남편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포항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녀는 지난 2010년께 포항에도 외국인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 교육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개인적인 호기심에 포항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 교육을 수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갖게 된 아키코 씨는 육아에 전념하면서 잠시 한국어 공부를 접었다가, 출산 후 아이가 커가면서 조금씩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녀는 아이가 10살이 된 올해 3월, 다문화 센터에서 진행하는 ‘다문화 엄마학교’에 입학해 또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다문화 엄마학교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다문화가정 엄마가 한국어를 읽고 쓰는 등의 일반적인 교육이 아닌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 합격을 목표로 자녀의 학업을 지도하며 자녀 교육을 책임질 수 있도록 초등교과 7개 과목(국어·수학·과학·사회·역사·도덕·실과)을 배워 가정에서 직접 자녀의 학업을 지도하며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엄마 역할을 하는 엄마’로 양성하기 위해 운영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결국 같은 해 7월 모든 교육을 수료한 아키코씨는 초졸 검정고시에서 600점 만점으로 전국수석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대해 아키코씨는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도 기분 좋지만, 딸 아이가 공부하는 교재를 직접 읽고 가르쳐줄 수 있다는 점이 무척 행복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서의 삶을 행복하게 살고 있는 아키코씨의 새로운 목표는 어학·소통능력을 발휘해 무역업에 종사 중인 남편과 함께 사업체를 꾸려 무역업계에 진출하는 것이다.

그녀는 전국에 사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 “살면서 벽을 마주칠 경우, 꼭 넘을 필요는 없다. 돌아가도 된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면 다른 기회를 찾아보는 용기도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