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詩
비 오는 날의 詩
  • 문병채 기자
  • 승인 2021.10.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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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님 오시게 내려라

비가 오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 형제들이 많았던 집에는 우산도 사람의 숫자에 맞아야 했다. 형과 누나들은 10리를 걸어서 학교에 가야하기 때문에 먼저 성한 우산을 들고 가버리고 찢어진 비닐우산은 늘 막내인 내 차지였다. 어떨 때는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남은 비닐 조각을 어깨에 두른 후 책 보따리를 메고 학교에 다닌 적도 있다. 그래도 그런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을 왜일까? 지금도 창이 넓은 찻집보다 허름한 시골내음 풍기는 막걸리집이 좋은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의 환경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지 않았을까. 비는 우리에게 많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낙수를 보면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는 누군가에게 노래가 되는 것이다.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밤비따라 왔다가 밤비따라 돌아가는

내 님은 비의 나그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 주룩 끝없이 내려라

-송창식, <비의나그네> 전문-

 

비에 대한 노래가 수없이 많지만, 송창식이 부른 <비의 나그네>는 내가 애창하는 노래다. 이 노래에서 비는 나그네다. 나그네는 님이다. 그래서 비는 님이다. 님은 밤비와 함께 왔다가 밤비와 함께 사라진다. “님이 오시나보다 밤비 내리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내리는 소리/ 님이 가시나 보다 밤비 그치는 소리/ 님 발자욱 소리 밤비 그치는 소리” 그래서 님은 밤비따라 왔다가 밤비따라 돌아간다. 한때 이 노래를 온종일 흥얼거린 적이 있다. 그때는 누구나 비의 나그네였다. 비가 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그 무언가가 있었다. 이 노래의 작곡자인 이장희가 동아방송의 ‘0시의 다이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윤형주가 부른 <비의 나그네>를 틀었다고 한다. 그날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는데 이 노래가 라디오의 음파를 타고 전국에 뿌려졌다. 내려라 밤비야 주룩주룩 끝없이 내려라, 고 했으니 당시의 정권이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음날 담당 PD를 비롯한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모두 경위서를 썼고 다음부터는 비 오는 날에 이 노래를 틀지 않았다고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호우주의보도 좋다. 내려라 밤비야 내 님 오시게 내려라 주룩 주룩 내려라 끝없이 내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