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일탈은 당위(當爲)다
은퇴 후, 일탈은 당위(當爲)다
  • 배소일 기자
  • 승인 2021.10.19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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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생이 친구에게 '실버'들 재미있게 멋지게 노는 법을 가르치다​

정년 앞둔 후배들이 간간이 묻는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은퇴 후 5년 세월을 어영부영 축내 온 너로서는 할 말이 없을거다. 왠지 쭈글스러워 노인 복지관 같은데 가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콜라택에도 기웃거렸지만 신선한 공기도 없고 분위기도 탁해 보여 너 취향은 전혀 아니더라 했지. 애인 같은 걸 두려도 도대체 돈 아까워 언감생심이라 했고.

나는 10년 전만 해도 에베레스트 등반해도 손색 없을 장비 갖춰, 앞산 뒷산 팔공산은 거의 매주, 툭하면 지리산 둘레길 걷기부터 설악산 공룡능선까지 죽고 살기로 오르고 올랐다. 최근 무릎 연골이 닳았다나 뭐라나? 의사소리에 '이러다 병신 되는구나!' 놀라서 심마니 흉내는 그만두기로 했었지. 대신 '일탈 또 일탈' 해보려고 결심했거든. 꿈이 아니길 바라면서.

​​- 손주에 미쳐 카톡 프로필까지 손자 손녀 사진으로 도배해 놓고 할아버지가 외계인으로 보이는 7세까지 보육원장 노릇하기

- 핸드폰에 미스 트롯 100곡 깔아 부루투스 맥스로 틀어 놓고 1만보 백수도보 걷기

- 두 다리 말짱할 때까지 선크림 떡칠하고 골프장 순회하며 나이샷~ 굿샷~ 룰루랄라 하다가 죽을 적에 호주머니에 티 넣고 화장터 가기​

- 앞집 뒷집 눈치보며 색소폰 주둥이에 뮤트 끼워 '자뻑예술' 하다가 비오는 밤 신천 뚝다리 밑에서 소원없이 빽빽거리며 삑사리 내기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친구, 애인 초대해 장작불에 삼겹살 구우며 삼시세끼 프로그램 흉내 내기 

- 큼직한 DSLR카메라에 묵직한 접시 렌즈로 뒷산 야생화 열심히 눌러 찍고 SNS에 올려 자랑하기

- 조선일보 매일신문 처음부터 사설까지 완독하며 대통령 앞으로 쌍씨옷 욕 날리기

- 그냥 낚시터에서 눈 벌게지도록 찌만 쳐다보며  며칠 죽이기

- 헐렁한 옛날 양복 걸치​고 ​친구 아들 예식장가서 뷔페로 배 두드리며 정치, 코로나 얘기로 입거품 내기

- 천당 가려고 아멘! 하느님,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모시고 십일조 내면서 착한 척하기

- 카톡방에 올라온 글 읽다가 공감이 가면 또 퍼 옮기면서 키득거리기

- 동네 노름방 점당 100원짜리 고스톱 치며 치매 극복하기​(점100이지만 3만원까지 잃더라)

- ​심오한 예술적 기품을 심겠다고 미술관의 의미 모를 추상화 앞에서 귀신 튀어 나올 때까지 멍때리며 서 있기

- 인문 소양 기른다고 룻소 '에밀'부터  칸트 '순수이성비판'까지 돋보기 끼고 수면제 먹기

- 심심하면 야구캡 눌러 쓰고 관문시장, 서문시장 돌아보며 칼국수로 떼우고 국산 생땅콩이랑 납작만두 몇 줄 사와 후라이판에 볶아 참소주 안주하기

- 삼식이로서의 당연한 의무인 분리수거 마치고 마누라 이마트, 코스트코 갈 때 짐꾼 겸 기사 노릇 만끽하기 

- 재난지원금 25만원 카드 긁어 썸탄 여인, 속옷세트 선물주고 폭탄주 러브샷도 마시고 노래방가서 닐니리야로 기분내기

이짓도 저짓도 못할 어느 쫌생이 친구에게 경고한다!

세상 불행한 인간은 오라는 데 없고 갈 데 없어 집구석에 박혀있는 성질 더럽고 병든, 하지만 돈다발에 파묻힌, 너 같은 수전노(守鋑奴) 밖에 없다더라.

그러다 돌연사 하지 말고! 훌훌 털고 나가 태양을 걸어라.(애인과 함께라면 더 좋고) 더우면 치맥 추우면 따끈한 사께 나눠 마시며 친구 대신 지갑 열고, 꿍쳐논 돈 기부도 좀 해가면서 살길 바란다. 이럭저럭 코로나 끝난 어느 날은 틀림없이, 건강한 발길이 엄청 바쁜 멋진 너를 발견할 거다.

너 이놈! 알아 들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