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㉜ 버려지고 있는 상주 감 홍시
[꽃 피어날 추억] ㉜ 버려지고 있는 상주 감 홍시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10.06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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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팠던 때는 컴컴한 새벽에 감 홍시를 주어다 먹었다.
먹을 것이 많아 쌀이 남아돌다 보니 감 홍시를 먹는 사람이 없어
버려지고 있는 것이 아깝다는 어르신들
상주 곶감을 만드는 상주 둥시감. 유병길 기자
상주 곶감을 만드는 상주 둥시감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1950~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 새마의 동쪽과 서쪽에는 수백 년 된 감나무가 군락을 이루었다. 봄엔 감 꽃향기, 여름엔 시원한 바람과 매미들의 협주곡, 가을엔 먹음직스러운 붉은 홍시, 겨울엔 차디찬 서풍을 막아 주는 방풍림이 되었고 가는 싸리나무에 10개씩 꼽힌 꼬지 10개를 목침같이 묶어서 만든 한 접의 상주곶감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노랗게 핀 감꽃. 유병길 기자
노랗게 핀 감꽃의 웃는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감꽃이 노랗게 핀 5월이면 달콤한 꿀 향기에 벌떼들이 몰려들었다. 아침 일찍부터 떨어진 감꽃을 많이 줍기 위하여 아이들이 모였다. 큰 것만 골라 후후 불어 입에 넣어 텁텁한 감꽃을 먹기도 하고, 바구니에 담아서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실에 꿰어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다니며 먹기도 하고 씻어서 밀가루에 묻혀 쪄서 먹기도 하였다.

감꽃이 바로 떨어진 애기 감. 유병길 기자
감꽃이 바로 떨어진 애기 감이 수줍은듯 고개를 숙인다. 유병길 기자

감꽃이 떨어지고 일 개월 지나, 감의 크기가 알밤만큼 되면 감나무 밑에는 떨어진 감을 주워 가려는 애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파란 감을 주워서 장독 뚜껑 위에 나란히 올려놓고 하루가 지나면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었다. 먹으려고 쪼개면 속도 파랗고 단맛도 없지만, 애들은 서로 먹으려고 다투었다. 먹을 시기가 늦어지면 물러서 초가 되고 그냥 두면 표면에 흰 거품과 곰팡이가 피어올랐다.

감이 어느 정도 크면 감꼭지 벌레 피해를 받은 감이 붉은색으로 변하여 홍시가 되어 떨어졌다. 컴컴한 새벽부터 떨어진 감과 홍시를 많이 줍기 위하여 초롱불을 들고 감나무 밑으로 모여들었다. 감나무밭 주인은 감나무 밑에 심어놓은 들깨와 콩을 밟는다고 못 들어가게도 하지만, 배가 고파 모여드는 애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루는 뒷들 정 노인 밭에 홍시를 주우려고 콩 포기를 헤치며 들어가는데, 두 번째 감나무에서 ‘투 둑’ 홍시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어어 엉~”하는 소리가 났다. 콩 골에 앉아서 살폈다. 떨어진 홍시에 얼굴을 맞은 정 노인이 일어서며 앞이 안 보여 눈을 비비는 것이 보였다. 콩 골을 기어서 도망 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감나무 밑에 가마니를 깔고 누워서 아이들 못오게 지키다가 떨어지는 홍시를 맞았단다.

백여 년 이상 된 둥시(둥근감) 나무와 돌감(아주 작은감) 나무가 집 안에 있었고, 마을 앞 밭에도 오십 년 된 둥시나무 두 그루가 있어서, 집 안에 있는 홍시만 주워도 먹을 수 있었지만, 아침에 일찍 잠이 깨면 감나무밭에 홍시를 줍기 위하여 갔단다.

잘 익은 홍시는 땅에 떨어지면 터져 버리지만, 조금 덜 익은 것은 찌그러지고 껍질만 터졌다. 그릇에 주워 와서 물에 씻거나, 터져 흙 묻은 부분을 숟가락으로 떠내고 홍시를 먹었다.

비 오는 날 가면 다리가 젖고 서글퍼 다른 애들이 안 오기 때문에 많이 주어 왔다.

“할매, 홍시 마이 주었다”

“아이구야 마이 주어구마, 고뿔 들겠다. 퍼떡 옷 갈아입거라”

“할매, 알았구마”

동생들과 같이 달콤한 홍시를 맛있게 먹었단다.

철선을 둥글게 만들고 굵은 실로 홍시가 들어가도록 엮어서 만든 망을 긴 장대 끝에 묶어서 홍시를 따러 다녔다. 장대를 들고 감나무 높이 달린 홍시를 따려면 팔도 아프고 위를 쳐다보기 때문에 고개도 아팠다. 잘 익은 홍시를 타래끼 가득 따오면, 온 식구들의 새참으로 배고픔을 달래 주었다.

큰 대봉감은 홍시와 곶감을 만들었다. 유병길 기자
큰 대봉감은 홍시나 곶감을 만들면 인기가 많았다. 유병길 기자

상주에는 곶감용 둥시 감나무가 대부분이지만, 납작한 반시와 큰 대봉감도 재배를 하고있다. 

추석 때는 잘 익은 홍시도 따고, 붉은색이 나는 생감을 장대로 가지를 꺾어 땄다. 작은 항아리에 감을 넣고 따끈한 물을 붓고 생풀로 위를 덮고, 입구를 헌 이불을 덮어 감을 삭혔(탈삽)다. 붓는 물이 너무 뜨거우면 감이 화상을 입어 껍질이 터지고, 물이 뜨겁지 않으면 잘 삭지 않아 떫은맛이 많아 먹기 곤란하였다.

추석이 지나 초등학교 운동회 때 집집마다 감을 삭히고, 햇고구마를 삶아 가서 맛있게 먹었다.

감나무 밑에 떨어져 썩어가는 홍시. 유병길 기자
감나무 밑에는 둥근무늬낙엽병으로 잎과 같이 떨어져 썩어가는 홍시의 모습이다. 유병길 기자

먹을 것이 많아 쌀이 남아돌고 있으니 요즘은 홍시를 먹는 아이들이 없고, 어르신들도 변비로 먹지 않으니 홍시가 떨어져도 주어 가지 않아 감나무 밑에서 그대로 썩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맹장 수술 후에 감, 홍시를 먹고 세번 장이 꼬워 병원신세를 진 김 씨(77) 어른 등 많은 어르신들은 배가 고팠던 옛날을 기억하시며 버려지는 홍시가 아깝다는 말을 하신다.

올해는 긴 가을 장마로 감나무 둥근무늬낙엽병이 발생하여 농약 살포를 안한 감나무는 잎과 감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농약을 5~6회 살포한 포장도 감나무의 영양 상태와 토질에 따라 평년의 30~50% 정도 피해를 받았단다. 기존의 감타래를 확장 이전하여 준공한 유재호씨(64). 이달 18일부터 곶감을 깎을 감을 딸 예정인데 감타래에 곶감을 가득 채울수가 없을것 같다고 걱정을 하였다. 감 뿐만아니라 벼도 목도열병 피해로 이삭이 많이 죽었단다. 농사의 풍흉작의 결정은 하늘의 뜻이지 사람의 마음대로는 될 수가 없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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