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양서원(雲陽書院) 추향제(秋享祭) 봉행
운양서원(雲陽書院) 추향제(秋享祭) 봉행
  • 석종출 기자
  • 승인 2021.09.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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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향약(鄕約)을 처음으로
실행한 인물인 여희림 선생을 기리다

 

운양서원에서 헌관 집례자 개좌모습.석종출기자
운양서원에서 헌관 집례자 개좌
모습. 석종출 기자

 

지난 26일(음력 8월 정축일) 성주군 벽진면 운정리 운양서원(雲陽書院)에서 원정(圓亭) 여희림(呂希臨)(1481–1553)을 기리는 추향제를 봉행했다. 후손과 후학 유생 삼십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코로나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도, 한 치의 소홀함이 없이 정성을 다해 엄숙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명덕사(明德祠) 앞 헌관 집사 취위.석종출 기자
명덕사(明德祠) 앞 헌관 집사 취위. 석종출 기자

 

원정(圓亭)은 조선 성종 12년에 태어나 연산군, 중종, 인종을 거쳐 명종 8년에 7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학자요 문신(文臣)이다. 원정은 중국의 남전여씨(籃田呂氏) 향약(鄕約)을 성주 월회당(경상북도 기념물 48호,성주군 벽진면 성주로 2495-수촌리)에서 향토의 자제들에게 향약 교육을 실행한 학자이다. 이후 조선 전국에 향약을 실시하는데 선도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향약'은 향촌 규약의 줄임말로 지방 고을의 향토인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약속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향촌규약, 일향약속, 향약계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향약은 조선시대 양반들의 향촌 자치와 이를 통한 하민층 통제 수단이었다. 하지만 유교적 예절과 풍속을 향촌사회에 보급하여 도덕적 질서를 확립하고 미풍양속을 진작시키고, 재난을 당했을 때 상부상조하자는 규약이라고 할 수 있다. 향약이라는 용어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면서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실체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 여씨향약이 전국적으로 시행 보급되면서부터이다”(제2차 성주 역사 인물 학술발표회 논문 중 발췌)

향사후 음복례. 석종출 기자
향사 후 음복례. 석종출 기자

행사에 초헌관으로 참례한 李玳㤠(前 星州향교典校)는 원정 선생의 아름다운 업적을 오래도록 빛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참석한 모두가 열심히 동참해 줄 것을 청하는 말을 맺음말로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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