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㉚ 콩 서리는 '놀이 문화'
[꽃 피어날 추억] ㉚ 콩 서리는 '놀이 문화'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10.01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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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서리는 그 시절의 놀이 문화였다. 콩이 익어갈 때 아이들이나 어른들도 몰래 콩대를 꺾어 불을 피우거나 솥에 쪄는 콩 서리를 하여 맛있게 먹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콩잎과 콩꼬투리. 유병길 기자
누렇게 익어가는 콩잎과 콩꼬투리. 유병길 기자

1950~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는 콩 재배를 많이 하였다. 아주 먼 옛날부터 우리 민족은 콩으로 장을 담아 간장을 뜨고 남은 된장은 단지에 보관하며 매끼 된장을 끓여 즐겨 먹고 있었다. 밭보리 벤 후 소로 놀 골을 흑지(쟁기)로 골을 타고 콩 씨를 뿌려 묻거나, 보리 벤자리에 콩 씨를 뿌리고 놀 골을 흑지(쟁기)로 타면서 씨앗을 묻었다. 너무 베게 올라오자 밭 전체를 갈고 오른발 뒤꿈치로 구덩이를 파고 콩을 2~3알 넣고 왼발로 흙을 덮으며 점뿌림으로 파종 재배하였다. 그때 어르신들도 콩은 흙으로 북을 주면 땅에 묻힌 줄기에서 부정 근이 나와서 양분 흡수하고 쓰러짐을 방지한다는 원리를 알고 계셨다. 놀 골의 제초를 겸하여 흑지(쟁기)로 골을 타면 부인은 호미로 콩 옆의 큰 풀 뽑아내면서 북을 주었다.

그때는 논두렁에도 콩을 다 심었다. 논두렁을 바르고 3~4일 후 막대기로 논두렁을 찔러 구멍을 내고 콩2~3알을 넣고 나뭇재를 한줌씩 놓아 덮었다. 콩이 무성하면 논둑 주변 벼의 생육이 떨어지지만 공한지를 이용할 수있고 콩을 증산할 수 있었다. 

옛날에는 배도 고팠지만 장난삼아 콩 서리를 많이 하였다. 서늘한 가을바람은 붉게 물드는 나뭇잎을 바쁘게 한다. 콩잎이 누릇누릇 익어 갈 때면 소 풀 먹이러 간 산에서나, 소 풀을 베다가 콩서리를 하고 싶으면 콩대를 꺾어 오고,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 왔다.

마른나무에 불이 활활 탈때 콩대를 올렸다. 유병길 기자
마른나무에 불이 활활 탈때 콩대를 올렸다. 유병길 기자

물 마른 도랑이나 공터에서 모닥불을 피워 불이 활활 타오르다가 불기운이 약하여질 때, 콩잎을 따낸 꼬투리가 노릇노릇한 콩대를 불 위에 올려놓았다.

콩 꼬투리 털에 불이붙고 꼬투리가 떨어진다. 유병길 기자
콩 꼬투리 털에 불이붙고 꼬투리가 떨어진다. 유병길 기자

콩꼬투리 작은 털에 불이 붙어 까맣게 타면서 “펑펑”하며 익은 콩알이 터져 나왔다.

타는불을 헤쳐 불붙은 가지를 주어냈다. 유병길 기자
타는불을 헤쳐 불붙은 가지를 주어냈다. 유병길 기자

그때 불을 헤쳐 연기 나는 나뭇가지를 밖으로 버리고, 윗옷을 벗어 세게 흔들어 바람을 일으켜 불을 날리면 나뭇재는 날아가고 콩대, 콩꼬투리, 불이 꺼져 연기 나는 나뭇가지 토막만 남았다.

까만 꼬투리에서 파란 콩알을 까서 먹는다. 유병길 기자
까만 꼬투리에서 파란 콩알을 까서 먹는다. 유병길 기자

연기 나는 나뭇가지는 버리고, 여럿이 둘러앉아 까만 콩꼬투리 속의 파랗게 익은 콩알을 까먹는 구수한 그 맛! 먼저 불 속에 떨어져서 바닥에 흩어진 까맣게 타던 콩알은 볶은 콩같이 고소한 맛도 났다.

얼굴, 입, 손이 온통 까맣게 되었지만 하얀 치아를 드러내고 콩알을 주워 먹다가 서로 쳐다보고 손가락질하며 즐겁게 웃던 그 모습들이 생각난다.

콩밭 주인한테 들켜 야단도 맞고 도망도 다녔지만, 가만히 해 먹는 콩 서리는 짜릿한 맛과 쾌감도 있었다. 콩 서리는 콩을 먹는다는 것보다 일종의 놀이 문화였다.

저녁에 여인들이나 처녀들이 모여 놀다가 배가 고프고 콩서리 생각이 나면 친척 오라버니나 남동생에게 부탁하였다. 자기 밭 아니면 가까운 남의 콩대를 꺾어 오거나 꼬투리만 훑어 왔다. 큰솥에 채반을 넣고 삼베 보자기를 펴고 풋콩 꼬투리를 쪄서 꼬투리를 눌러서 한 알 한 알 까먹던 그 맛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족답식 탈곡기로 콩타작을 하였다. 유병길 기자
족답식 탈곡기로 콩타작을 하였다. 유병길 기자

콩이 다 익으면 콩을 뽑아 작은 단으로 묶어 한곳에 세워 말리면서 소로 골을 타고 보리를 갈고 난 후에 콩대를 마당에 펴고 도리깨로 두드려 콩 타작을 하였다. 족답식 탈곡기가 보급되면서 탈곡기 앞에 서까래 3개 끝을 묶고 삼각형으로 벌려 세우고 싸리나무 발을 씌워 콩이 멀리 튀어 나가지 못하게 하고 탈곡기로 콩 타작를 하였다. 

콩서리 하다가 도망가던 모습이 가끔 꿈에도 보이지만 눈뜨면 허무하고, 지금도 해 보고 싶은 가슴속에 묻힌 옛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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