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큰꿩의비름
[시골 꽃 이야기] 큰꿩의비름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1.09.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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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로운 가을날의 꽃

하늘은 맑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선선한 가을의 초입이다. 나비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다가 연분홍 꽃다발에 사뿐사뿐 내려앉는다. 이 꽃은 작년 가을에 너무 예뻐서 청송에서 데리고 왔던 녀석이다. 꽃이 져가는 시기에 데리고 온 탓에 꽃구경을 제대로 못하고 겨울을 맞이하였다. 올봄과 여름철 수많은 꽃들 속에 소박한 잎으로만 묻혀 있다가 초가을부터 분홍빛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꽃에는 유독 나비들이 많이 찾아온다. 이름을 찾아보니 '큰꿩의비름'이라고 한다. 이름이 좀 웃기기는 한데, 꽃은 너무 예쁘다. 꿩이 사는 산속에서 핀다고 하여 '꿩'을 붙이고, 잎이 잘 떨어진다고 하여 비듬이란 단어를 붙였다고 하는데, 무언가 억지스러움이 있다. 경천이라는 생약명으로 불리며, 전초를 약용으로 쓴다고 하니 꽃만 예쁜 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로운 화초다.

큰꿩의비름에 앉은 나비와 벌. 장성희 기자
큰꿩의비름에 앉은 나비와 벌. 장성희 기자

큰꿩의비름이 꽃을 피우면 가을이 왔다는 신호다. 다른 이름으로는 불로초라고도 한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면 잎과 줄기,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죽은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뿌리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새싹을 피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같다. 다른 꽃들은 지고 씨앗 갈무리를 할 때쯤에 꽃을 피워주니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가을에는 꽃들이 대체로 보라색이 많은데, 붉은 빛이 도는 분홍색 꽃을 피우니 눈에 쉽게 들어온다. 이 화초는 여름에는 자잘한 꽃망울을 이루고 있다가 가을이 되면 한순간에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 작은 꽃들이 뭉쳐져 하나의 큰 꽃을 이루니 신기하기도 하다. 키가 너무 크지도 않고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아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비떼를 불러들인 큰꿩의비름. 장성희 기자
나비떼를 불러들인 큰꿩의비름. 장성희 기자

눈이 시리도록 파래지는 가을 하늘 아래서 분홍빛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나비들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춤을 춘다. 예쁜 건 지나치지 못하나 보다. 나비들이 찾아오는 이유가 꿀을 따기 위해서인지 꽃가루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녀석들은 다가가도 그저 꽃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살며시 귀를 대고 들어 보면 “친구야 고마워.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아니야 너희들 덕분에 씨앗을 맺는 걸. 나는 내년에도 다시 태어날 거야. 또 찾아와” 하고 대화하는 것 같다. 우리들 세상도 큰꿩의비름과 나비처럼 서로 감사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면 좋겠다. 나비는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달아오른 핑크빛 꽃향기에 취한 모양이다. 큰꿩의비름의 몸을 부둥켜안고 감미로운 꽃 등을 부드럽게 더듬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참 한가로운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