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시니어] (129) 겸손(謙遜)과 교만(驕慢)
[원더풀 시니어] (129) 겸손(謙遜)과 교만(驕慢)
  • 김교환 기자
  • 승인 2021.09.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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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급제를 위해 작심하고 외딴섬에 들어가 공부하던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을 향해 길을 나섰다. 육지로 들어가기 위해 탄 돛단배는 뱃사공과 어린 아들이 함께 조종하고 있었다.

배를 탄 선비는 벌써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뱃사공에게 잘난 척한다. “이보게 사공 자네는 논어를 아는가?” “전어, 복어는 아는데 논어는 무슨 생선인지 모릅니다.” “어허 이런 무식한사람 그러면 자네 자식은 천자문은 마쳤는가?” “저희 같은 사람들은 천자문이 뭔지도 모릅니다.”

잠시 뒤 뱃사공 부자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선비에게 배를 다시 돌려 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선비는 크게 화를 낸다. “과거시험 준비로 한시라도 빨리 육지로 나가야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아무래도 육지에 도착하기 전에 폭풍을 만날 것 같습니다.” “논어도 모르는 자네가 뭘 안다고 당장 배를 돌리지 못하겠느냐?” 허지만 뱃사공은 선비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섬을 향해 노를 저어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큰 폭풍이 몰아쳤다. 배는 간신히 섬에 도착했다. 이어서 뱃사공은 단호한 어조로 아들에게 말한다. “너는 이 애비의 말을 잘 들어라. 일단 노를 잡은 뱃사공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 누구의 지시도 받아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들은 선비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사전에서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이고, 교만은 겸손함이 없는 건방짐으로 구별하고 있다. 그런데 겸손함에서는 교만이 있을 수 없고 반대로 교만함에서도 겸손을 찾을 수 없는, 둘 사이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상대적인 말이다. 우리는 일상을 통해 하루에도 수없이 겸손과 교만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겸손의 시작은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특히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자신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아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겸손은 자신을 끊임없이 배워야하는 존재로 인지하고 모든 경우에서도 배우는 사람이다. 유태인은 ‘탈무드’에서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배우는 사람이라고 했고, 공자의 가르침에서도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두 사람은 스승이라 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겐 좋은 점을 배우고, 못한 사람에겐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배우면 된다는 것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걸쳐 이름을 떨친 맹사성은 뛰어난 재주로 19세에 장원급제하여 20세에 파주 군수로 부임했다.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 평생 간직할 좌우명을 부탁한다. 오만함을 본 무명선사는 “착한 일 많이 하고 나쁜 일 하지 마시오”라고 한다. 맹사성이 자기를 무시하는듯한 너무 당연한 말에 화가 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오다, 문지방에 머리를 박는다. “고개를 좀 숙이시지요”...... 이왕 오셨으니 차라도 한 잔 권한다면서 찻잔에 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신다. “물이 넘치지 않소?” “네. 넘침은 모자람만 못하지요.” 이 스님과의 만남이 맹사성의 한평생의 좌우명이 되어 만인의 추앙을 받는 훌륭한 재상이 되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교만은 부족한 부분을 눈으로 가리지만 겸손은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내 아는 것 가진 것 자랑 말고, 다른 사람의 감춰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중하자. 사자성어에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지 않고 남에게 양보하고 사양하라는 겸양지덕(謙讓之德))은 우리가 모두 가슴에 새겨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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