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伐草)길 따라
벌초(伐草)길 따라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1.09.16 17:0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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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로와 내성천, 추억이 있는 길은 외롭지 않다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벌초 걱정이 앞선다. 대개 추석 명절 직전 휴일에 종방 간에 영주 선산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묘소의 벌초를 다녀오곤 했다. 갑작스레 몸이 불편해진 장형을 대신해서 벌초를 주관하게 되었는데, 올해는 일기가 불순해서 날 잡기도 쉽지 않다. 코로나 등으로 어려운 상황인 만큼, 집안끼리 상의해서 조부모님 묘소 벌초는 가을 시제(時祭) 때로 미뤘다.

부모님 산소의 벌초용 예초기도 알아보고, 벌초 대행도 연락해보니 여의치 않아서, 안동에서 인턴 근무하는 아들을 호출하고 낫 2자루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파랗게 개인 토요일 아침에 상쾌한 기분으로 칠곡 IC로 들어서니 상행선에 차량들이 벌써 밀리고 있다. 다부터널을 겨우 빠져나와 제속도를 내어 서안동 IC를 들락날락하면서 아들 녀석을 태우고 영주IC에서 시내를 거쳐 영봉로(榮奉路)로 접어들었다.

영봉로(935번 지방도)는 영주 휴천동에서 이산면 용상리, 내림리와 내성천, 두월리를 지나고 봉화군 상운면의 예봉로(915번 지방도)와 만나는 길이다. 이산면의 용상리가 외가, 내림리가 바로 선산이 있는 고향 마을로 유년 시절부터 줄곧 걸어서 왕래하던 길이다. 갈림길에 버티고 선 등굽은 노송이나 알아볼까, 해마다 찾아도 낯설게 느껴진다.

외가 마을을 지나면서 잠깐 생각에 젖는 사이, 차가 제멋대로 두월교 교차로에서 내림로로 들어선다. 영주댐이 건설되고 수몰 지구인 고향 마을 위로 이 길이 생겼다. 박봉산 아래 잠시 차를 세우고 조부모님 묫자리 방향으로 간단히 읍을 하고 길을 내려와서 두월교를 건넜다.

괴헌고택(槐軒古宅)을 지나서 오르막 한편에 주차하고 오른쪽 산간으로 접어드는데, 봉분을 없애고 표석만 차례대로 단정하게 놓아둔 일가 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수월하지 않은 결단과 처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부모님 산소를 찾아서 무성히 자란 풀들을 베고 봉분을 다듬은 후에 준비해온 포와 떡, 과일로 간단히 제례를 올렸다.

부모님께서는 동향의 동년생(乙卯年, 1915)으로 16세에 혼례를 하시고 슬하에 2남2녀를 두셨다. 선친께서는 대구농림에 수학하시고 공무원을 퇴직하신 다음, 대구 팔공산과 소백산 자락에서 묘목업을 하시고, 농민신문에도 잠시 관여하셨다. 두 분께서는 미수(米壽)를 하신 이듬해(癸未年, 2003)에 차례로 졸하셨다.

그늘에 아내가 차려놓은 떡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며 묘소를 돌아보니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하는 말이 불현듯 생각나서 송구스럽다.

하산하는 길에 두월교에서 잠시 내성천(乃城川)을 돌아보다. 윗쪽이 소백산, 부석사 방향이고, 아래가 평은면의 영주댐 방향이다.

여름 장마로 상류 쪽의 물은 비교적 맑아 보인다.

내성천의 상류와 하류(두월교에서). 정신교 기자
내성천의 상류와 하류(두월교에서). 정신교 기자

봉화(奉化)의 옛 이름이 내성(乃城)으로, 내성천은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해서 이산면과 평은면을 거쳐서, 소백산에서 내려오는 영주 서천(西川)과 무섬마을에서 합수하는 낙동강(洛東江) 상류다.

다목적 영주댐이 건설되고 담수를 하면서 수몰되는 이산면 두월리(斗月里)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다양한 유물과 유적들이 출토되었고, 청정 내성천의 백사장과 고유 식생대가 파괴되고 희귀 어종들이 멸종됐다.

영봉로를 나와서 시내에서 풍기인삼 한 뿌리를 다소곳이 품은 닭 한 마리로 제각기 원기를 보충하다. 막내의 제안으로 재즈가 흐르는 카페에서 과테말라 원두로 빚은 커피를 맛보다.

오래된 가옥의 방과 거실, 베란다와 후원 등을 그대로 활용하고 독립출판물을 전시해 놓은 동네 카페다.

동네 카페(영주)의 뒷뜰. 정신교 기자
동네 카페(영주)의 뒷뜰. 정신교 기자

영주는 부산에서 청량리행 중앙선과 문경, 김천행 경북선과 강원도 삼척, 묵호로 가는 영동선 철도의 요지로 발달했는데, 1973년도에 영주역이 안동 방향의 휴천동으로 이전하면서 시가지가 새로 조성됐다. 한동안 빈집과 공터가 즐비하던 구시가지가 도시재생사업으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초가을 햇살이 아직 따거운데, 남행길은 귀가 차량들로 몸살을 하고 있다.

추억이 있는 길은 외롭지 않다.

영주 시내 중앙로. 정신교 기자
영주 시내 중앙로. 정신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