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느끼다] 육탁 '배한봉'
[시를 느끼다] 육탁 '배한봉'
  • 권정숙 기자
  • 승인 2021.09.15 1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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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쳇말로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더니 바로 그런 모양이다

 

육탁 /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나도 한때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둔 바닥을 만난 적이 있다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바닥을 치면서 알았다

도다리 광어 우럭들도 바다가 다 제 세상이었던 때 있었을 것이다

내가 무덤 속 같은 검은 비닐봉지의 입을 열자

고기 눈 속으로 어판장 알전구 빛이 심해처럼 캄캄하게 스며들었다

아직도 바다 냄새 싱싱한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

늘 열려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으리라

고이지 못한 그 시간들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토록 짜게 만들었으리라

누군가를 오래 기다린 사람의 집 창문도 저렇게 늘 열려서 불빛을 흘릴 것이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칠 바닥도 없이 하얗게 소금에 절이는 악몽을 꾸다 잠깬

그의 작고 둥근 창문도 소금보다 눈부신 그 불빛 그리워할 것이다

집에 도착하면 캄캄한 방문을 열고

나보다 손에 들린 검은 비닐봉지부터 마중할 새끼들 같은 새끼들 눈빛 같은

 

소월시문학상 작품집 복사꽃 아래 천년 [문학사상 2011년]

 

담담하게 써 내려간 詩가 가슴에 북을 둥둥 두드린다. 처연한 삶의 끝자락을 어판장의 생선과 비유해 어쩜 이리도 절묘하게 표현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살다보면 절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때가있다. 시인에게도 그런 때가 있었나 아니면 바닥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쓴 詩일까.

生의 가장 큰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면서 바닥을 친 뒤 바닥보다 더 깊고 어두운 바닥을 만날 수 있음도 넌지시 암시해 주는 것 같다. 시쳇말로 바닥 밑에 지하실 있다더니 바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도 바닥이라고 느낀 그 순간에도 육탁을 치는 힘으로 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닥을 칠 때 가장 센 힘이 나온다는데 그러지 못했음은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누구나 바닥에 이르게 되면 자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건만 세상이 왜 이리 야속할까 세상만 원망하게 된다. 원망만 하고 좌절하고 있어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세상이 언제나 평온하고 원하는 대로 되어 간다면 얼마나 좋으랴마는 그렇지 않은 게 세상살이인 듯싶다. 공포 앞에서도 아니 죽어서도 닫을 수 없는 작고 둥근 창문은 생선의 눈알을 말하는 것이리라. 늘 열려 있어서 눈물 고일 시간도 없었고 고여 있지 못한 시간이 염분을 풀어 바닷물을 저렇게 짜게 했을 거란 착상이 너무나 기발하면서도 재미있다.

지하도에서 역 대합실에서 더 칠 바닥도 없는 노숙자들에게도 누군가는 집의 창문을 열어놓고 빛을 흘리며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그 빛을 그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얼른 용기를 내 일어나서 그 빛 따라 돌아가야 하리라.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 詩는 비록 바닥에 내동댕이친 삶일지라도 육탁을 치는 힘으로 용기를 내서 일어나라는 뜻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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