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㉘ 설렘으로 기다렸던 추석
[꽃 피어날 추억] ㉘ 설렘으로 기다렸던 추석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9.14 17: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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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차례는 햅쌀 햇과일(대추 밤 감 배 호두)로 지냈으며, 벼가 익지 않은 해는 음력 9월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벼가 어느정도 익은 해는 초련으로 햅쌀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냈다.
벼이삭이 익어가면서 고개를 숙인다. 유병길 기자
벼이삭이 익어가면서 고개를 숙인다. 유병길 기자

1950년~60년대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의 추석(음력 8월 15일)은 설 다음으로 큰 명절이었다. 6.25 전쟁과 휴전 삶 자체가 어렵고 비참한 시기였으나 조상님을 섬기는 마음은 대단하였다. 설 추석 차례와 기제사 시향 때는 쌀밥으로 제삿밥을 올렸다. '조상덕에 이밥(쌀밥)이라'고 어린이들은 명절과 제사를 손꼽아 기다렸다. 전쟁 미망인도 많았지만, 집집마다 오 남매는 보통이고 많은 집은 열 남매도 자라고 있었다. 열촌 이내의 친척이 모여서 살았다.

추석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은 새 옷, 새 고무신 선물을 받을 생각에 들떠있고, 어른들은 음력 8월이되면 조상님 산소를 다니며 벌초를 하였다. 증조부 이하 큰집(지차 종손)에서 날짜를 잡아 알리면 한동네에 살아 모두가 참석하여 낫으로 산소의 풀을 깨끗하게 깎았다.

추석은 햅쌀로 밥을 짓고 술을 빚고 송편을 만들어, 익은 햇과일 대추 밤 감 배 호두를 준비하여 차례를 지내는 것이 상례였다. 추석(음력 8월 15일)은 양력으로 9월 중순에서 10월 상순으로 매년 달랐다. 9월 중순이 추석일 때는 햅쌀이 나오지 않아 추석 차례를 못 지냈다. 벼를 수확하고 음력 9월 9일(구구절<상주지역>,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또 부모 조부모상 등 부득이한 일이 있을 때도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들 익은 벼를 베어와서 수숫대 집게로 벼를 흝었다. 유병길 기자
들 익은 벼를 베어와서 수숫대 집게로 벼를 흝었다. 유병길 기자

올해같이 추석이 9월 21일 때는 올벼 외 다른 벼 품종은 다 익지 않아 초련으로 햅쌀을 마련하여 차례를 지냈다. 일찍 모내기하여 누른빛이 많이 나는 논둑 주변의 벼를 베고 단으로 묶어 지게에 지고 와서 멍석에 내려놓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30~40cm 수숫대를 반으로 접어 집게를 만들어 벼알을 훑었다.

홀치기(상주지역 명칭)가 판매되면서 초련하는 벼를 훑었다 유병길 기자
홀치기(상주지역 명칭)가 판매되면서 초련하는 벼를 훑었다. 유병길 기자

 

50년대 중반이후 조금 발전된 쇠로 빗같이 만든 것(훌치기, 홀태)을 세우고 벼를 끼워 당겨서 훑었는데, 추석에 햅쌀로 메를 올리기 위하여 벤 벼는 주로 이것으로 훑었다. 멍석에 늘어 말린 벼는 디딜방아에 찧어 햅쌀을 만들었고 미리 술을 담갔다.

훑은 벼를 말리지 않고 가마솥에 채반을 놓고 쪄서 멍석에 말려 디딜방아에 찧으면 찐쌀이 되었다. 찐쌀은 시장에서 비싸게 팔기도 하고 아이들은 간식으로 많이 먹었다.

햅쌀을 절구통이나 디딜방아에 빻아 고운 체로 쳐서 쌀가루를 만들어 송편을 만들었다. 추석 전날 여인들이 전을 부치며 송편을 빚으면 신명이 난 아이들은 아버지와 뒷산에 올라 소나무 가지의 새로 나온 솔잎을 뽑아 왔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펴고 송편 한층, 솔잎 한층, 송편 한층 놓고 찌면 송편에는 솔잎이 붙어 있다. 차례에 쓸 송편에 붙은 솔잎을 떼어내고 참기름을 발랐다. 솔잎이 붙은 송편은 잘 시지도 않았다.

서울 대구 부산 등에 사는 친척들이 올때는 기차를 타고 오면 백원역에 내리고, 버스를 타고 오면 세천에 내려서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한시간 정도  걸어서 고향 집에 왔다.

 

대추는 꽃은 늦게 피지만 대추는 일찍 익는다. 유병길 기자
대추꽃은 늦게 피지만 일찍 익는다. 유병길 기자

 

대추나무는 꽃은 늦게 피지만 일찍 익어 추석 제사상에 오른다.

밤송이가 익으면 벌어지면서 알밤을 떨어트린다. 유병길 기자
밤송이가 익으면 벌어지면서 알밤을 떨어트린다. 유병길 기자

 

밤나무는 긴 꼬리 같은 꽃이 떨어지면 작은 가시 뭉치가 보인다. 어른 주먹만큼 클 때는 가시에 힘을 주어 가까이 못 오게 한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간질이면 입을 크게 벌리고 웃다가 알밤을 떨어트린다.

삼백의 고장 상주 감이 익어 간다. 유병길 기자
삼백의 고장 상주 감이 익어 간다. 유병길 기자

상주는 삼백의 고장이라 집 집마다 20~100년 된 큰 감나무가 두세 그루가 있었다.

재래종 배가 없어 신고배를 올린다.
재래종배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신고배 사진이다. 유병길 기자

그때 재래종 배는 크기가 작았고 벌레가 많이 먹었으나 농약이 없었다.

호두나무는 한 그루 정도를 키웠다. 호두가 익으면 푸른 겉껍질이 벌어지면서 호두 알이 떨어졌다. 호두도 제사상에 올렸다. 과일나무 2~3종은 키웠으나, 없는 과일은 친척 집에서 서로 교환하였다.

새마에는 전주이씨, 기계유씨, 경주김씨, 동래정씨 등 성씨가 모여 살았다. 성씨별로 종손 집에서 먼저 차례를 모시고 항렬 따라 친척 집을 다니며 차례를 지냈다. 마지막 집 차례를 지내면 오후 4시가 넘었다.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기다려지는 행복한 한가위 였다.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풍요롭게 익어가는 계절이지만, 비가 오지않아 가뭄으로 벼를 못 심는 해는 흉년이 들었다.

농정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어  산소에 벌초할 때 모이는 것이 힘이 든다. 농협 등 대행업체에 맡기는 문중도 늘어 나고 있다.

요즘 어떤 문중에서는 추석 날  술, 과일, 명태포를 준비하여 전국에 흩어진 자손들이 산소에 모여 예취기로 벌초를 하고, 산소마다 술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추석 차례, 시향(시사)을 대신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서울 경기지역 종인들이 참석을 못하여 고향에 사는 한두 사람이 벌초를 하고 있다. 유병길 기자
코로나19 때문에고향에 사는 한두 사람이 벌초를 하고 있다. 유병길 기자

코로나19 방역대책을 준수한다고 확진자가 많은 서울 경기지역의 종친 참석이 어려워 고향에 사는 사람이 벌초를 하고있는 실증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숭조 사상이 희석되어 가고 있어 산소를 관리하는 벌초, 시향도 몇십 년 후에는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를 하는 어른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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