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9)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9)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9.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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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 여장부로 불린 만큼 유언도 아주 특별했다
형수의 임종을 맞아 고복(皐復)절차를 행하려는 것이다
죽는 복도 타고나야 한다더니 죽는 복 중에 그런 복이 또 어디 있을 라고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2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범어동 아파트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그리움과 아쉬움이 한꺼번에 몰려드는지 “휴~”하는 땅이 꺼져라 긴 한숨 끝에 할머니는

“성~님! 서~엉~님은 저승길이 뭐에 그리도 급해 이 동생을 내몰라 내팽개치고 뒤도 안돌아보고 그리도 바삐 가셨던 가요! 성~님이라도 계셨다면 이렇게 동네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외롭고 쓸쓸하지는 않았겠지요?”하는 할머니는 동네에서 여장부이자 여걸인 골안댁을 떠올리고 있었다. 골안댁은 수제비를 끓어 먹던 그해 가을 저승길을 잡아 서둘러 떠났다. 골안댁은 동네서 여장부로 불린 만큼 유언도 아주 특별했다.

딱 삼일장에 관일랑 비싼 육송이니 홍송이니 또 옻칠이니 뭐니 떠벌리지 말고 하시라도 빨리 자연의 품에 안길 수 있도록 생선궤짝 같은 얇은 송판으로 짜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낡은 거적때기에 둘둘 말아 묻으라고 하고 싶지만 보는 눈도 있고 집안 체면도 있고 해서 이쯤에서 양보하는 것이라며 이설을 못 달게 못을 박았다. 노잣돈은 구석에 처박혀 몸값도 못하는 낡은 동전 한 닢에 쌀 한 숟갈이면 충분하고, 거추장스럽게 사시사철을 한꺼번에 덕지덕지 껴입는 수의 대신으로 네거리용 무명한복을 깨끗이 빨아 입혀 묻어달라고 했다. 또 칠띠로 운신도 못하게 꽁꽁 싸서 묶는 것이 싫다고 했다. 청산가는 나비처럼 훌훌 날아 저승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아울러 산소자리가 그늘진다고 필요 없이 많은 나무를 쳐내지도 말 것이며 남들 눈을 의식해서 거창한 석물 따위도 세우지도 말고 쓸데없이 계좌(癸坐)를 넓히지도 말라며 당부를 했다.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져 흙으로 진토 될 몸뚱이에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사상에는 매와 갱을 가지런히 한 잔 술을 치고, 육류로는 돼지고기, 해물은 고등어 한 마리, 실과는 제철 과일 서너 가지에 포는 비싼 오징어보다는 명태로 하고 나물종류는 맏며느리 소관으로 하되 조율이시, 홍동백서 등의 옛 법을 굳이 따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음식 일체는 식구들이 단란하게 모여 앉아 한 번에 먹을 수 있을 만치 간소하고 조촐하게 차리라고 했다. 이는 죽은 후의 내 뜻인 만큼 모든 것은 산 사람들의 몫이라, 적당하게 가족들과 의논,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렇게 당부하는 뜻은 쓸데없는 낭비를 삼가하고 귀신이 무슨 대식가도 아니고 그것만 해도 욕심껏 먹었다간 배가 터질 거라면 희미하게 웃다가 아낀 돈으로 상여만큼은 백련 꽃으로 치장해 달라고 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꽃상여로 꾸며 이승의 마지막 길을 겉으로 우는 척, 속으로는 축복해 달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골안댁의 죽음은 흔히 말하는 호상(好喪)이라 할 수 있었다. 죽음 앞에 호상이 어디 있을까 만은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3일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벽에 몸을 기대 2겹으로 접은 종이 문서를 내어주며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내 임의대로 나눴다. 다소 기대에 못 미쳐 기분이 언짢더라도 종이에 쓰인 대로 사이좋게 나누고, 동서 간에 반목하지 말고, 큰일 작은 일을 내일 같이 여겨서 정을 내며 화목하게 살 거라!”며 언제 사경을 헤맨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생시같이 또렷한 말로 조곤조곤 타이르듯 말했다. 이어 딸과 며느리들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조용히 누웠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던 해가 서산을 넘어가고 어둠이 소리 없이 대지를 덮어 올적에 골안댁은 크게 한번 숨을 몰아 쉰 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동안 몸을 지탱해 오던 근육과 신경이 닥나무껍질을 짓이겨 끓인 물에 황촉규 달인 물이 녹아들듯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언제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기약 없는 길을 홀연히 나선 것이다. 깰 수 없는 긴 잠속으로 빠져 들기 전 마지막을 또렷이 기억하려는 듯 좌우를 휘둘러 천장을 향해 동그랗게 뜬 눈을 스르르 내리 감았다. 이승으로 소풍을 나왔다가 점 몇 개를 살포시 찍고는 본래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간 것이다. 마침내 한 사람의 인생이 생의 끝자락에서 긴 항해를 끝마친 배가 항구에 들어 돛을 내리듯 쉼에 든 것이다. 파르르 떨던 눈가로 아쉬움인지 미련인지를 모를 이슬이 촉촉하게 베어난다. 이내 소천(召天)을 직감한 가족들이 ‘흑~흑’하는 울음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때 맏아들은 손을 들어 울음을 저지하고는 저승길에 든 어머니가 이승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자신을 부른다고 착각하여 뒤돌아볼까 싶다며 울고 싶은 울음이랑 참았다가 입관 뒤에나 마음껏 울라고 했다. 이어 골안댁의 코끝에서 파르르 떨던 뱁새의 새하얀 깃털이 움직임을 조용히 멈추자 골안댁의 막내시동생이 가만히 방문을 열고는 연기처럼 문밖으로 나갔다.

한 팔로 감싸 안은 가슴팍에는 초혼(招魂)에 쓸 형수의 백의적삼이 들여 있다. 형수의 임종을 맞아 고복(皐復)절차를 행하려는 것이다. 잠시 마당을 기웃거려 시신이 든 방을 가늠하여 방위를 살피더니 사다리를 초가지붕에 걸쳐 지붕에 올라서는 신중하게 자세를 바로하고 섰다. 그리고 커다란 목소리로 어둠이 삼켜가는 밤하늘을 향해

“대한민국 경상북도 00군 00면 00리 000부인 김해김씨 복! 복! 보옥!”하더니 손에 든 하얀색 적삼을 허공에 날렸다.

손을 떠난 하얀 적삼이 어둠 속에서 달이 되었다가, 별이 되었다가, 때로는 태양으로 변해 네 활개를 펼쳐 바람을 타는가 싶더니 지붕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즈음 골안댁의 저승길을 환하게 밝히는 그믐달이 동산위로 둥실 떠오른다. 달빛에 의해 어느 정도 어둠이 가시자 부엌으로부터 맏며느리가 소반을 받쳐 앞마당 가장자리에 있는 장독대로 향한다. 상위에는 하얀 쌀밥 3그릇이 고봉으로 담겨져 있다. 시어머니의 혼을 데리려온 저승사자에게 올릴 사잣밥이다.

“살아생전도 그렇고 하여튼 복 받은 노인네야! 슬하의 권속들을 있는 데로 주렁주렁 거느려 앉히고는 미주알고주알, 속에 든 할 말일랑 원도 한도 없이 빠짐없이 다하고 자는 듯 펴안하게 갔으니 말이야! 죽는 복도 타고나야 한다더니 죽는 복 중에 그런 복이 또 어디 있을 라고, 시간은 또 어떻고 저승길 나서기 딱 좋은 시간대가 아닌가? 게다가 축복이라도 하듯 그믐달도 기다렸다는 듯 뜨고 말이야!”

“말해 뭣할까? 연세는 또 어떻고 이태만 지나면 망구(望九)가가 아닌가? 요즘 시절에 고희(古稀)만 넘겨도 수를 했다고 자식들은 관을 앞에 놓고 겉으로는 우는 체, 돌아서서는 싱글벙글 웃는다고 하잖여! 거기에 비하면 골안댁은 도대체 얼마나 수를 한 거여!”

“게다가 병치레도 별로 없었다며?”

“병치레! 그것도 병치레라면 몇 년을 민주를 끌어 자슥들 진을 뺀 노친네들은 다 머~여! 그 할매는 달장간이나 제대로 아팠나? 그마져도 자리보전은 닷새 남직하지, 사실 아프다고 해야 당신 손으로 식사를 하고 대소변 다 가리는 병치레는 병치레라 할 수 없잖아요! 그러니까 딱 닷새 지! 그것도 삼일 간은 호수상태!”

“동서지간에도 더없이 화목하다며! 하긴 언제 동서지간에 시어머니 병구완을 두고 니미락-내미락 의견을 나눌 시간이나 있어야지 말다툼을 하던 원수를 지든 해도 할 것이 아닌 갑에! 참 복 받은 집안이여...!”

“맞아 이런 말은 좀 뭣하지만 초상집에 겸사겸사 잔치를 벌려도 암말 못하지! 암~”

“그 할매가 동네를 위해 좋은 일은 좀 많이 했나? 싸움이란 쌈은 다 화해시키고...! 베넷머리를 깎은 아들만 해도 수두룩할 걸! 우리 아들도 죄다 그 할매가 깎아 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