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배려
진정한 배려
  • 박미정 기자
  • 승인 2021.09.1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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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낙동강
자전거길에 자라가 나타났다

 

코스모스가 장관을 이루는 낙동강 자전거길에 자라가 나타났다. 럭비공만큼이나 큰 놈이다. 잘못하면 달려오는 자전거에 치일 수도 있겠다. 산책을 하던 사람들이 신기한듯 우르르 몰려든다. 갑자기 자라는 어디에서 왔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낙동강 습지가 한눈에 보인다. 

어느 봄날, 경산 반곡지에 간 적이 있었다. 햇살을 받은 복사꽃이 아름다웠다. 둔치를 거닐다가 반곡지 나뭇등걸에 나란히 앉은 자라 가족을 보았다. 엄마 자라, 아빠 자라, 사이에 아기 자라도 평화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정겨운 그 모습에 길 가던 아이가 "엄마, 자라 우리 집에 데리고 가면 안 돼요?" 아이의 눈에도 자라 가족이 보기 좋았나 보다. "안돼 자라는 이곳이 자기 집이야." 엄마는 보채는 아이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산 반곡지 자라가족. 박미정 기자
경산 반곡지 자라가족. 박미정 기자

 

 

자라가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다. 꽃향기에 취해 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대로 두기에는 위험하다고 판단한 일행이 자라를 습지로 보내려고 애를 쓴다.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자전거에 달린 밧줄을 풀어 자라를 묶는다. 자라는 생명의 위협을 느꼈는지 그것에 묶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잠시 생각에 잠긴다. 자라를 위한 진정한 배려는 무엇일까. 자전거가 늘 달리는 곳도 아닌데 그대로 두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자라의 일탈에 훼방을 놓은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꽃놀이를 어디 사람들만 즐기라는 법이 있던가. 

언제였던가. TV에서 연못을 떠난 오리들이 인도를 지나 차도로 돌진하는 장면을 보았다. 달리던 자동차가 하나, 둘 서더니 오리들이 제 갈 길을 갈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오리들은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다. 뒤뚱뒤뚱 주위를 빙글빙글 돌더니 이내 차도를 벗어나 숲속으로 사라졌다. 이 광경을 지켜본 운전자들이 안도의 눈빛을 보내며 일제히 자동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 분간의 순간포착으로 이루어진 방영이었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남아 있다. 

밧줄에 묶인 자라를 풀어준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는 자전거길에 자라와 마주 앉았다. 멀리 자전거가 달려온다. 나는 벌떡 일어나 그곳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브레이크가 걸린 자전거가 길가에 섰다. 평온을 찾은 자라가 꽃향기에 취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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