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묻힌 이방인] ④ 항왜 출신의 조선 충신 ‘김충선’
[대구에 묻힌 이방인] ④ 항왜 출신의 조선 충신 ‘김충선’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1.09.09 10:0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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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귀화한 사야가 장군, 우록리에 정착
한일 우호 교류의 장으로 발전한 김충선의 유적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녹동서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장수 김충선(金忠善, 1571~1642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녹동서원. 조선으로 귀화한 일본 장수 김충선(金忠善, 1571~1642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사슴과 벗하며 사는 마을 우록리(友鹿里). 수성구 파동에서 청도 팔조령 쪽으로 10km쯤 가다 보면 오른쪽에 ‘우록리 입구’라는 안내판이 나온다. 사슴과 놀기 위해서는 안내판을 따라 안으로 2.5km 더 들어가야 한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는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 장군이 세거지로 삼은 곳이다. 왜란이 끝난 후 김충선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슴과 벗하며 살았다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일본 이름이 사야가(沙也可)인 김충선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우선봉장으로 참전하였다. 부산포에 상륙하여 부하들과 함께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을 찾아 귀순했다.

1592년 4월 20일 절도사에게 보낸 강화서(講和書)에 따르면 임진왜란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나 조선에 오기 위해 선봉이 되었고 조선에 와서 그 풍속과 문물에 감화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후 항왜(조선에 투항한 일본인)로서 동래와 양산 등지에서 공을 세워 가선대부에 올랐다. 1593년 권율과 한준겸의 청으로 김해 김씨와 충선이라는 성명을 하사받았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동안 조총·화약 제조법을 가르쳐 조선의 무기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우록리 녹동서원 뒷산에 자리잡은 김충선의 묘. 부인 인동장씨와 모하당의 유품을 묻은 묘도 함께 있다. 이배현 기자
우록리 녹동서원 뒷산에 자리잡은 김충선의 묘. 부인 인동 장씨의 묘와 모하당의 유품을 묻은 봉분이 함께 있다. 이배현 기자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에 참전하여 이괄의 부장(副將)인 서아지(徐牙之)를 참수하였는데, 서아지도 항왜(降倭) 출신이었다. 이후 정묘호란, 병자호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1600년(선조 33) 우록동에 정착하고 진주목사(牧使)를 지낸 장춘점(張春點)의 딸 인동 장씨와 혼인하였다. 1601년 우록동에 모하당을 세웠으며 1602년에는 가훈과 향약 15개 조를 지어 자손들과 향리 주민들의 교화에 힘썼다.

22세 때 조선에 귀화한 이후 66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전장에서 공적을 쌓은 김충선은 이후 우록동으로 돌아와 1642년 7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묘소는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녹동서원 뒷산에 있다.

일본에서 김충선에 대해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이다. 내용은 김충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역자로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1971년 일본의 문호 시바 료타로가 쓴 ‘가도를 가다. 한국기행(街道を行く·韓のくに紀行)’에 사야가와 우록리가 소개되면서 일본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이 글을 계기로 일본에서 김충선이란 인물이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2012. 5월 녹동서원 옆에 개관한 달성한일우호관. 영상관, 전시관, 3D상영관, 와카야마현 자료실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배현 기자
2012. 5월 녹동서원 옆에 개관한 달성한일우호관. 영상관, 전시관, 3D상영관, 와카야마현 자료실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이배현 기자

그 후 NHK에서 1992년 3월 ‘출병에 대의 없다. 히데요시를 등진 사나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아사히신문에서 ‘양식 있는 무사의 의로운 결단’ 등의 기사로 소개되었다.

사야가에 대한 재평가를 계기로 2010년 11월, 한국에 우호적인 일본 와카야마현에 사야가 기념비가 건립되었다. 대구시에서도 2012년 5월, 우록리에 달성한일우호관을 개관하여 일본 관광객 방문지로 육성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시관, 3D상영관, 다도실, 유물전시, 한일 양국 전통놀이 시현장, 와카야마현 자료실, 국궁 체험장 등 다양한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김충선이 평화주의자로 재평가되면서, 녹동서원과 달성한일우호관을 방문하는 일본정부 관계자 및 관광객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따라서 우록리는 김충선과 녹동서원을 테마로 하여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우호의 정을 쌓는 역사적 공간으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근래들어 코로나19로 방문이 뜸해졌지만, 최근 몇 년간 해마다 1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한일우호관을 찾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구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학생들과 역사에 관심 있는 학부모 중심으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단체관람 등 자세한 내용은 전화 053-659-4490 또는 홈페이지 http://www.dskjfriend.kr/ 를 참고하면 된다.

일본인 관광 블로거들이 달성한일우호관을 방문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달성한일우호관
일본인 관광 블로거들이 달성한일우호관을 방문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달성한일우호관

김충선은 김해 김씨 성을 하사받았는데 가야 수로왕계인 김해 김씨와 구별하기 위해 '사성(賜性 : 하사받은 성) 김해 김씨'라 칭한다. 김충선의 후손은 현재 18세손까지 이르렀으며 우록리와 전국에 약 8,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제4공화국 때 내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치열(金致烈)이 김충선의 후손으로 달성군 우록리 출신이다.

현재 사성김해김씨 종친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은 김충선의 12세손이자 우록리 출신인 김상보(74세) 회장이다. 2012년부터 사성김해김씨 종친회장을 맡아 우록리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9년 달성한일우호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아 우호관 개관에 크게 기여하였고 일본과의 우호적 교류를 위해 민간 외교사절로서도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다. 김회장은  2016년 10월 한일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한 공을 인정받아 일본 외무대신 표창과 감사패를 받았다.

김상보 회장은 “달성한일우호관 개관을 계기로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운을 뗀 후, “우록리는 단순한 관광자원이 아니라 한일 우호증진의 상징이다. 앞으로 역사도서관 건립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확충하여 한일 우호교류 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2017년 8월, 주 부산총영사가 한일우호관을 방문하여 김상보 종친회장과 좌담하고 있다(가운데 김상보 회장, 오른쪽 미치가미 히사시 총영사). 달성한일우호관
2017년 8월, 주 부산총영사가 한일우호관을 방문하여 김상보 종친회장과 좌담하고 있다(가운데 김상보 회장, 오른쪽 미치가미 히사시 총영사). 달성한일우호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