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풍광의 천연림 안에 숨어있는, 성주 독용산성
수려한 풍광의 천연림 안에 숨어있는, 성주 독용산성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9.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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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성벽 둘레를 걷는 1500년 역사길
독용산성 동문. 장희자 기자

독용산성은 경북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산42-1번지에 있다. 소백산맥의 주봉인 수도산 줄기인 독용산(955m) 정상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 16만9천493, 둘레 7.7, 높이 2.5m, 너비 1.5m이다. 영남지방에 구축한 산성중 가장 큰 규모이다.

독용산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산성의 위치가 시여골 위쪽에 있어서 웃시골라 불리었다. 그 후 경계를 위해 나무를 베어 벌거벗은 산이 된 후 벗시골이라 불렸다. 다시 대머리 독(禿)으로 쓰여 지금의 독용산(禿用山)으로 이름 지어졌다.

동서남북 7개 포루와 아치형의 동문, 수구문, 남소문 등이 있었다. 동서군량고가 있어 성주, 합천, 거창의 군량미도 보관하였다. 별장1, 승장1, 호병44호로서 산성을 방어하였다. 일제강점기 유물 발굴시 군기고(軍器庫)에서 쇠도끼, 쇠창, 쇠화살, 삼지창, 말안장, 갑옷 등이 출토되었다.

대가천옆 금수문화공원 모습. 장희자 기자

축조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00년 전 성산가야(星山伽倻)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한다. 임진왜란을 피하던 중 발견되었다. 조선 1675년(숙종1) 경상도 순찰사 정중휘(鄭重徽)가 4개월에 걸쳐 개축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경상도 병마절도사에 딸린 병영이었다. 조선 말기에는 방치되었었다. 해방 전후부터 40여호의 민가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1960년대에 모두 철거되었다. 1995년  경상북도 기념물 105호로 지정되었다.

성주군에서는 1997년부터 성곽을 복원할 계획을 세웠다. 훼손된 성곽의 일부와 아치만이 남아 있던 동문을 보수하여 원형으로 복원하였다. 성내에 관아터, 사지가 산재하고 있다. 독용산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이원정(李元楨)이 1677년에 편찬한 경산지(京山誌)를 통해 나타난다.

동문과 성곽 둘레길 모습. 장희자 기자

기록에 따르면 합천과 거창의 군사가 배속되었다. 성 안에는 3개의 계곡, 객사, 군기고 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동문지(東門址), 서문지, 남문지, 북문지, 동암문지(東暗門址), 서문암지, 남문암지, 수구문지(水溝門址), 동치성(東雉城), 서치성, 객사지, 군기고지, 안국사지와 건립연대를 알 수 없는 비석 5기가 있다.

암문(暗門)은 일반적인 성문보다 규모가 작다. 개구부를 내어 출입한 성문의 일종이다. 치(雉)는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직사각형 모양으로 쌓은 구조물을 말한다.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조기에 관찰한다. 전투시 성벽에 접근한 적을 격퇴시킬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성주시에서 자연환경 보전 이용시설 설치사업의 일환으로  2018년 성주호 둘레길(독용산성길+성주호길)을 조성하였다. 독용산성길은 아라월드→(0.5㎞)독용산성휴양림→(0.5㎞)성주호전망대→(2.7㎞)독용산성동문→(2.5㎞)금수문화공원 코스로 총 거리 6.2km이다.

성주호와 아라월드, 계곡아래 독용산성 자연휴양림 모습. 장희자 기자

임도를 이용해 가는 방법도 있다. 성주군 가천면 금봉리 시엇골 마을에서 금봉리 숲과 오왕사를 지나 좁은 도로를 따라간다. 독용산성 안내판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간다. 임도는 차 한대 겨우 지날만큼 좁지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상쾌하게 걸을 수 있다.

금봉리 숲에서 3.5오르면 성주호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는 성주호가 그림처럼 보인다. 가야산의 웅장한 모습이 다가온다. 이곳에서 데크로드를 따라 0.5계곡을 내려가면 독용산 자연휴양림이 있다.

전망대에서 2.7올라가면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10분정도 걸어가면 동문에 도착한다. 독용산성은 천연림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등산로에서도 넝쿨이 얽혀 있는 천연림으로 유명하다. 돌로 쌓은 성곽과 수려한 풍경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역사길이다.

독용산성 동문. 장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