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덕유산 향적봉을 걷다
여름 덕유산 향적봉을 걷다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1.09.03 17: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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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설천봉, 향적봉, 중봉을 돌아보다

2021년 8월 26일(목),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 총회를 마치고 덕유산 설천봉, 향적봉과 중봉을 돌아보다.

오전 11시경에 곤돌라 승강장까지 승용차로 이동해서 왕복으로 표를 끊다. 여름철 평일이라 비교적 관람객이 적다. 곤돌라가 한산해서 혼자서 6인용 곤돌라에 탑승해서 여유있게 경치를 즐기다.

오를수록 넓어지는 시야, 오랜만에 높이 솟아오르니 그저 황홀해서 연신 셔터를 누른다. 잠시 마스크를 벗으니 산바람에 폐까지 서늘하다.

조선실록의 사고가 있는 적상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거창과 김천 일대의 산들이 발아래 펼쳐진다. 

덕유산 북쪽의 산들(곤돌라에서). 정신교 기자

해발 1520여 미터의 설천봉(雪天峰)에서 하차하여 잠시 주위를 조망하고 향적봉으로 향하다. 나무 계단으로 6백 미터 정도를 올라가면서 발아래 펼쳐진 무주의 넓은 들판을 구경하다.

드디어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香積峰, 1614m)이다. 구름 속에 크고 작은 산들이 동서남북으로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가야산, 황매산, 지리산, 마이산, 남덕유산이 제각기 위용을 자랑하며 솟아 있다.

덕유산 향적봉(1614m). 정신교 기자
덕유산 향적봉에서 조망하는 남쪽의 산들. 정신교 기자

정상에서 왼쪽의 백련사 방향으로 5분 정도 나무 계단을 내려가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빠져서 나와 향적봉대피소에서 잠시 휴식하다. 펑펑 솟아오르는 샘물에 손과 얼굴을 적셔주니 활력이 솟는다.

북만주 우수리 강가에서 자라는 물양지꽃과 구깃대가 이 샘물 덕분에 이처럼 높은 곳에도 자란다. ‘음용수로 부적합하다’는 팻말 때문에 목을 축이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오른쪽으로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지를 거쳐 비교적 평탄한 숲길을 이십여 분 걸어서 중봉(中峰, 1594m)에 닿다. 향적봉에서 중봉까지 거리는 1.3km, 길이 평탄해서 가벼운 차림으로 걷기에 알맞은 코스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중봉가는 길. 정신교 기자

덕유산은 편마암의 암석 지반으로 남덕유산까지 연결되어 있는 해발 고도가 1천 미터 이상의 아고산대(亞高山帶) 지형으로 비와 바람이 많고 기온이 낮다.

주목, 구상나무 등의 상록활엽수와 철쭉, 신갈나무 등의 낙엽활엽수, 원추리와 산오이풀, 물양지 등이 하부식생대로 이루어진 능선길이 일품이다.

이와 유사한 아고산대 지형으로는 국내에 지리산 반야봉과 천황봉, 소백산 비로봉, 설악산 대청봉 등이 있다.

육포 한 조각, 물 한 모금으로 시장기를 다스리며 다시 향적봉으로 돌아오다. 대피소에서 쉬면서 물양지꽃에 눈을 주고 돌아 나서는데 흰 구름이 구상나무 줄기에 잇닿아 하늘로 뻗어있다.

덕유산 물양지꽃(향적봉 대피소). 정신교 기자
덕유산 물양지꽃(향적봉 대피소). 정신교 기자

 

덕유산 향적봉 구상나무. 정신교 기자
덕유산 향적봉 구상나무. 정신교 기자

덕유산(德裕山)의 지명은 덕과 여유가 있는 장자(長子)라는 뜻으로 정상인 향적봉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그 의미가 쉽게 와 닿는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설악산(1708m) 다음으로 높으며, 지리산부터 가야산까지 남도의 크고 작은 산들을 신하처럼 거느리고 있다.

조선 명종 때 임훈(林薰)이 덕유산을 오르고 쓴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 ‘향림(香林)이 즐비해서 산봉우리를 향적봉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향림은 바로 주목나무 숲을 말한다.

흰 구름이 바람결에 파란 하늘에 그려 놓은 동양화와 경계를 짓는 듯이 장승처럼 버티고 있는 천년 고사목들 풍경은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덕유산 향적봉 천년 고사목. 정신교 기자

설천봉 레스토랑에서 장터국밥으로 늦은 점심을 하다. 시래기 사이로 씹히는 건더기가 육포와는 또 다른 맛이다.

하강하는 곤돌라 창으로 다가오는 산들이 이제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설천봉에서 하강하는 곤돌라. 정신교 기자
설천봉에서 하강하는 곤돌라. 정신교 기자

그사이에 산정(山情)으로 포화된 마음이 좀스럽지만, 몸이 지치니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닌가?

절반쯤 내려오니 곤돌라 아래쪽이 왁자지껄, 떠들썩하다.

아! 여기가 그 유명한 무주의 구천동(九天洞)이다.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서 발원해서 북쪽의 무주로 흘러내려서 금강에 합류되는 무주구천동 계곡(36km)이다.

이골 저골 미끄러져 내려와서 만나고 합수한 물줄기들이 서로 반가워서 와글와글 모여서 아우성을 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같은 심성이다.

‘언젠가 우리도 저와 같이 반갑게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올까?’

곤돌라 승강장을 나오니 화창한 가을꽃들이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다.

 

무주덕유산리조트 곤돌라 승강장. 정신교 기자

땀에 젖은 몸을 더운 물에 씻고 잠시 누워서 더듬어 보다.

덕유산 설천봉에 올라서 향적봉, 중봉을 돌아오는데 15,000보를 걸었다.

오랜만에 개인 여름 끝물에 문명의 힘으로, 덕유장자의 어깨에 올라서 남도의 고산준령을 구경하고, 희귀식물을 완상한 ‘운수 좋은 날’이다.

덕유산 구경 가자 일만오천보

볼수록 너그럽고 신기하구나!

이름도 덕이 많아 덕유∼, 덕유∼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