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어날 추억] ㉔ 집념과 열정의 억척 농업인 이대재 씨(3)
[꽃 피어날 추억] ㉔ 집념과 열정의 억척 농업인 이대재 씨(3)
  • 유병길 기자
  • 승인 2021.09.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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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재 씨(70)는 영농후계자 자금을 받아 한우를 사육하였으나 소값 하락으로 어려움 겪고, 비닐하우스 재배 4년에 폭설로 하우스가 무너져 철거하기도 했다. 5,000여 평에 배를 심어 18여년 재배하였으나 배 가격 하락으로 어려웠다. 배나무를 캐고 비닐 하우스를 지어 샤인머스켓 재배를 시작하였데 알 솎기, 지베레린처리, 새순 정리 등 일이 많았다. 집념과 열정 없이는 해낼 수 없는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딸아들 대학교육시키고 결혼하여 오손도손 손주들과 사는 모습 보니 그것이 바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며 크게 웃는다
포도송이에 햇볕이 잘 들도록 새로나온 줄기를 자른다. 유병길 기자
포도송이에 햇볕이 잘 들도록 새로나온 줄기를 자르는 이대재 씨. 유병길 기자

1952년 봉강리(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다섯 형제 중 넷째로 태어난 이대재(70)씨. 어려운 농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렵게 살아왔다. 육군 만기제대를 하고 결혼을 하였다.

상속받은 논 몇 마지기 농사를 지으며 1984년 영농후계자 자금을 받아 한우를 사서 사육을 시작하였으나 사료 가격 상승과 한우 가격 하락으로 한우 사육을 중단하였다.

85년 잘사는 농촌을 만들기 위하여 봉강리 청년들이 전국 여러 곳의 선진농가를 견학하였다. 비닐 농사가 소득이 높다는 결론이 났다. 오이를 재배 수출하는 상주 원예 조합 회원으로 등록하여 86년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첫해 봄배추를 심었고 수확하여 두 포기를 단으로 묶어 경운기에 싣고 상주 시장에 갔었다. 상인들이 몰려와서 돈도 안 주고 한 단, 두 단 들고 갔다. 돈을 달라고 하니 가게로 찾아오란다. 처음이라 가게를 모른다고 하니 돈을 가져다 주어서 받았는데, 절반은 못 받은 것 같았단다. 지인의 소개로 점촌시장에 한 경운기 싣고 갔다. 여기서 상인들이 들고 갔는데 돈을 반값을 주겠단다. 가져오라고 소리를 쳐서 다시 받아 싣고 오다가 함창읍 소재지 식당에서 팔고 왔단다.

가을에 오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은 고온으로 무척 힘이 들었다. 첫 오이 재배하다 보니 고품질 오이를 생산할 수가 없는 등 시행착오도 많았다. 그래도 벼농사 재배보다는 소득이 높아 밭을 몇 마지기 샀다. 몇 년 오이 재배를 하였다. 90년 겨울에 내린 폭설로 하우스가 내려앉아 복구하려면 자재를 사서 새로 하우스를 지어야 했기에 오이 재배를 그만하였다.

상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특수 사업으로 배나무 재배 예산을 확보하였다. 1,500평 이상 식재 희망하는 농가 신청을 받고 있다는 정보를 알았다. 오이를 재배하는 회원들과 회의를 하였다. 오이 농사가 힘이 들다 보니 광식, 용균, 재명이 배나무 식재를 희망하였다.

배나무 수형을 y자로 재배하고 있다. 유병길 기자
배나무 수형을 y자로 재배하고 있다. 유병길 기자

92년도에 5,000여 평에 배나무를 심었다. y자 수형 재배를 배우기 위하여 나주 배 단지를 견학하여 교육을 받았다. 쉬운 농사가 없었다. 배나무도 수형을 잡아야 하고 제때 약제를 살포하여야 하였다. 배꽃이 지고 나면 적과 2~3차하고 봉지를 씌웠다. 배가 익어 갈 때 까치의 피해를 막는데, 화약 총을 쏘기도 하고 까치 박제를 달아 놓아도 피해를 막기는 힘이 들었다. 처음에는 대구 공판장에 판매하였으나 서울 청과시장에 판매하였다. 아이들 대학교육을 시키며 여유돈과 융자를 받아 땅도 사들이는 기쁨도 맛보았다. 외서 농협장이 배 수출길을 열어 매년 수출하였다. 배를 심을 당시에는 사과보다 비쌌으나 재배 면적이 확대되다 보니 사과보다 값이 떨어져 어려움이 많았다. 다른 작목에 고심하게 되었다.

샤인머스켓 비닐하우스 전경. 유병길 기자
샤인머스켓 비닐하우스 전경. 유병길 기자

상주시 모서 모동지역에서 샤인머스켓을 재배하여 소득이 높았다. 대재 씨는 샤인머스켓을 재배하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농장을 방문하며 배웠고, 농업기술센터 영농교육도 받았다. 2017년 일부 배나무를 캐내고 융자를 받아 자재를 구입하여 18년 하우스를 지어 3동에 묘목을 심었다. 19년에 4동에 샤인머스켓 묘목을 심었고, 20년에 3동에 더 샤인머스켓을 심었다. 먼저 심은 하우스에서 11월에 몇 송이를 수확하여 맛을 보았는데 많이 달았단다.

21년 남은 배나무를 전부 캐내고 남은 밭에는 고추 들깨 등을 심었다.

샤인머스켓 어린 포도송이 적과를 하는 이대재씨 부부.  유병길 기자
샤인머스켓 어린 송이 알 솎기(적과)를 하는 이대재씨 부부. 유병길 기자
어린송이 알 솎기 작업. 유병길 기자
어린송이 알 솎기 작업. 유병길 기자

대재 씨는 무 가운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다. 꽃이 지고 나면 작은 포도송이에서 좁쌀같이 작은 알 솎기(적과)를 하는데, 노동력도 많이 들고 힘이 든단다. 적과가 끝나면 봉지를 씌웠다.

봉지를 씌운 샤인머스켓 포도 송이와  봉지를 벗긴 포도 송이. 유병길 기자
 샤인머스켓 봉지를 벗긴 탐스러운 송이. 유병길 기자

일반 포도보다 샤인머스켓이 어려운 점은 알 솎기, 지배레린처리, 새순 정리란다. 알 솎기로 알을 조절하여야 지배레처리때 알이 커도 터지지 않고 일정 크기의 송이(500~700g)를 만들어야 한다. 당도가 18브릭스 이상 되어야 샤인머스켓으로 인정을 받는단다. 당도를 높이는 방법은 송이당 적정 알이 달려야 하고, 비배관리를 잘하고, 관수조절을 잘해야 한다. 요즘 새로 나오는 줄기가 포도송이 햇볕을 가려 새순 줄기를 잘라주는 작업을 해야 한다. 배 농사보다는 일이 너무 많단다.

샤인머스켓 농사를 계속하려면 생산비와 인건비가 비싸기 때문에 농장을 운영할 수 있는 적정 가격이 유지가 되어야 하고, 체력의 한계를 극복해야 부부가 농장 운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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