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7)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정월 대보름, 내년에는 꼭 찾고 싶다(27)
  • 이원선 기자
  • 승인 2021.08.30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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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인간의 눈에도 마누라인 김천댁이 성녀로 보였다.
“딸도 아니고 며느리가 송구스럽게 어떻게...!”하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애기똥풀 노랗게 자지러진 오솔길을 따라 하얀 목란꽃상여가 간다.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3월 27일 보름을 만 하루 지난 달이, 경주 첨성대 위로 떠오르고 있다(2장 다중 촬영). 이원선 기자

성질머리 고약한 그 늙은이가 늦게나마 선한 마음을 먹은 덕에 말년에는 못났다고, 꼬락서니도 보기 싫다. 발걸음조차 소름이 끼친다며 구박만 일삼던 며느리의 덕을 톡톡히 본다. 삼년이나 늘어진 병치레에 시도 때도 없이 싸질어 놓는 대소변을 일일이 받아내는 김천댁은 시어머니의 입안 혀처럼 병수발이다. 아무리 친 딸이라 해도 그리는 못할 것이라고 다들 입을 모았다. 그래선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제 서방까지 깨끗이 정신을 차린다. 이제까지는 어머니의 등쌀에 못이기는 척 비위를 맞추느라 얼마간의 가식을 포장했다면 속까지 싹 바뀐다. 술주정뱅이에 손찌검을 일삼던 그 빌어먹을 인간이 씻은 듯 정신을 차려버린다. 그도 그럴 것이 늘 태산같이 말아내는 똥기저귀, 오줌기저귀와 덤으로 이불빨래를 두고 시어머니에게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은 김천댁이다. 빌어먹을 인간의 눈에도 마누라인 김천댁이 성녀로 보였던 것이다.

그때 김천양반은 마누라인 김천댁을 두고 천상에 살던 마음씨 고운 선녀가 내려왔다 여겼다. 그간 못생겼다고 입버릇처럼 몰아 붙였던 인물이 한 순간 달덩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코 밑에 박힌 점을 두고 못생긴 게 가지가지 한다고 타박을 주던 것이 이제는 매력의 포인트란다. 창고지기 점이란다. 곳간에 쌀을 몰아오는 점이라며 애지중지다. 마누라가 예뻐 보이자 처갓집 소 말뚝에 절을 하라면 얼씨구나 엎어질 수 있단다. 어머니의 온갖 궂은 뒤치다꺼리를 맨손으로 아무렇지 않게 해치우는 모습에서 그 정도는 당연하다 여겼다. 본인조차 코를 감싸 쥐는데 물수건으로 깨끗하고 닦아내고, 미지근한 물로 목욕을 시켜 새 옷으로 갈아입히는 모습에서 여자가 아닌 어머니란 위대함을 본 것이다.

장례(葬禮)를 치른 이후 그 인간망나니가 김천댁의 말이라면 법으로 알고 따랐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게다가 엄벙덤벙하던 아들마저 시키는 심부름마다 똑 부러진다. 아침에 시킨 심부름을 노는데 정신이 팔려 저녁때까지 잊어 먹는 통에 낭패를 당하던 때와는 180% 달라졌다.

“우리 엄마가요”하는데 차돌 같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옛말이 그르질 않아 길을 잃고 방황하던 복덩이가 넝쿨째 김천댁의 치마폭으로 굴러든 격이다.

“예사 사람들은 어림없지! 그게 보통 사람들이 흉내라도 내 볼만한 일인가?”하는 할머니는

“나도 김천댁같은 며느리를 보았으며 소원이 없겠다. 하다못해 반만이라도, 아니 아니지 반에 반...! 발뒤꿈치만 닮아도 원이 없겠다”하고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흔든다. 지금의 처지에 언감생심, 가당치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할머니가 김천댁에게 흠뻑 빠진 데는 사실 다른 곳에 이유가 있었다. 후일 할머니가 어머니를 며느리로 맞은 뒤 동네 사람들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도 며느리 품에 안겨서 가고 싶네! 그렇게 이승을 짐을 부려놓고 쉬고 싶네!”하고 김천댁이 시어머니를 아기처럼 안아 저승길을 배웅 했다는 말을 듣고는 더 없이 부러워했다. 그런 할머니의 말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딸도 아니고 며느리가 송구스럽게 어떻게...!”하며 손으로 입을 가려 수줍게 웃었다.

할머니가 부러워하는 죽음, 김천댁은 시어머니를 아기처럼 안아서 눈을 감겨드렸다. 그 모습이 젖먹이 같고, 잠을 칭얼거리는 아기 같았다고 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시어머니는 사방을 둘러 김천댁을 보고는

“아가! 저기 저 낯선 사람들은 누구 건데 우리 집에 와있니? 왜 우리 방에 있니? 누추한 집에 손님이라도 청 했니!”하며 손자와 아들을 손가락으로 가르쳐 물었다.

“어머님 진정 모르세요! 어머님 아들과 손잔데요!”하고 상기 시켜도 도통 모른단다. 기억에 없는 사람들이라며 추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당장 내 보내란다. 반면 김천댁인 며느리를 보고

“아가야! 나는...!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나는 새아가 네가 있어서 지난날이 행복했다”며 중얼거렸다. 그때 시어머니의 기억은 과거의 어느 한 토막, 아니 두세 토막에 머물러 있는 듯 보였다. 온갖 구실을 갖다 붙여 며느리를 구박하던 때와 배추 전을 양념간장에 찍어 억지를 부리는 등 며느리 등쌀에 마지못해 먹던 때에 머물러 있어보였다.

“아가! 새~ 아가! 나는 말이다. 이 담에 다시 태어난다면 아가! 새~ 아가 네 딸로 태어나고 싶다. 진정 그러고 싶다. 예쁘고 착한 딸로 태어나...! 말도 잘 듣고, 일도 야무지게 잘하는 딸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이 죄 많은 업보를 몽땅 갚고 싶다.”하며 말라비틀어져 삭정이 같은 손가락으로 김천댁의 볼을 어루만져 쓰다듬는다.

“아니에요 그러지 마세요! 어머님이 계셔서 저도 행복했어요! 약한 말씀하지 마시고 많이 잡수시고 훨씬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아직은 정정 하시잖아요 어머님!”

“정정은 무슨...! 나도 이제 쉬고 싶다. 하지만 너랑은 더 살고 싶은데 네 시아버지가 어서 빨리 오라고 저기 저기서 손짓을 한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안 한 양반이 이제 사...! 성질도 급한 양반 같으니!”하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김천댁을 빤히 쳐다본다. 그 아련한 모습이 언제까지나 잊지 말라고, 결코 잊지 말라며 먼 길 떠나는 지아비의 손목에 생으로 생채기를 내고 싶은 새댁의 순정 같아 보였다. 그제야 김천댁도 시어머니를 보내드릴 때가 되었음을 알아 시어머니를 놓아드린다. 이승의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 몽땅 내려놓고는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예~ 어머님! 어머님께서 먼저가 계시면 저도 후일 찾아 가겠습니다. 그때 저를 만나면 봄꽃을 보듯이 어여삐 반겨주셔야만 해요! 꼭 그렇게 해 주세야만 해요! 이제 집안 걱정일랑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쉬세요! 저도 어머님이 계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하는데 김천댁의 볼에 머물던 손이 아래로 ‘툭’ 힘을 잃어 떨어진다. 애잔한 눈길로 찬찬하게 며느리를 바라보던 눈이 스르르 감긴다. 눈가로는 이승의 미련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때를 같이하여 굵고 깊은 주름으로 엉클어진 볼 위로 뜨거운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번져나간다. 손으로 시어머니의 볼과 눈가를 다정스럽게 쓰다듬어가던 김천댁이

“어머님! 어머님이 계셔서 이 며느리는 행복했답니다. 진정 행복 했었답니다.”하고 중얼거리는 김천댁은

“미운 정도 정이요! 고운 정도 정이, 비정도 정이고 애정도 정이라! 세상의 정이란 모든 정을 가슴에다, 머리에다, 마음속에다 듬뿍 안겨주고 이렇게 가시면 어떡해요!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면 저는 어떡하란 말이 예요! 늘 덜떨어져서 근심에 걱정거리라 나무라시던 이 며느리는 어떡하라고요! 내년에도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부용은 연분홍으로 환하게 꽃을 피울 건데 누구랑 다정히 앉자 오순도손 볼 까요! 정든 임을 보듯 얼굴을 어루만져 보나요? 애호박 듬성듬성 썰어 넣어 보글보글 끓어 넘치는 된장찌개는 또 누구랑 같이 호호 불어 맛을 보나요! 삶이 허망해요! 인생이 부질없어요! 어머님! 어머님 저는 이제 외로워서 어떻게 살라 구요! 쓸쓸해서 어떻게 살라 구요! 마음 붙일 곳 없어서 어떻게 살라 구요! 이렇게 가시는 어머님이 미워요! 어머님 야속해요! 저만 홀로 남겨두고 가시다니 너무 야속하네요! 저도 따라가고 싶어요! 저도...!”하며 품 안서 잠든 아기를 보듬듯 언제까지나 그렇게 고이 잠든 시어머니를 안고 있었다.

봄볕 가득한 길에 만장이 줄지어 늘어선다. 그 뒤를 먼 산기슭에 가슴 아린 상여가를 흘리며 꽃으로 치장한 상여가 졸랑졸랑 따라간다. 애기똥풀 노랗게 자지러진 오솔길을 따라 하얀 목란꽃상여가 아래권속들을 줄줄이 거느리고 산모퉁이를 돌아간다. 작년에 피던 자리로 꼬부랑 할미꽃이 오종종 핀 할아버지 무덤가로 우쭐우쭐 상여가 오른다.

“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 은중경은 어머니요/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 봄 파경은 아버님인데/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 아버님 전에 뼈를 빌어/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 아머님 전에 살을 빌며/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 열 달 만에 탄생을 할 때/어어 허~ 어어 허~ 어허~능 차~ 어어 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