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정신교 기자
  • 승인 2021.08.24 10:00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려한 비상을 위해서도, 안전한 착륙을 위해서도 날개가 있어야 한다.

미군이 철수하고 이슬람 무장단체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 근처까지 침공하자, 대통령과 고위 관료들은 해외로 도망가고 카르자이 국제공항은 국외로 탈출하는 인파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안간힘으로 탑승대에 매달리거나, 이륙하는 항공기를 따라서 경주하듯 활주로를 달렸다. 항공기 날개에 매달렸다 추락하는 형제의 사진 한 장에 온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무엇이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이처럼 아비규환의 대소동 속으로 몰아넣는 것일까?

탈레반은 학생이라는 뜻으로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이슬람 근본주의자 무함마드 오마르(1960~2013)가 결성한 단체로서 파키스탄의 도움을 받아서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실질적으로 통치한다. 탈레반 정권은 종교법으로 모든 오락을 금지하고, 여성 교육과 취업 및 사회 활동을 제약했다. 또한 9·11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라덴(1957~2011)의 알카에다와 연계하여 국제적인 테러 활동을 공공연하게 지원했다.

이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새 정부(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를 세우고 탈레반을 몰아내기 위해 같이 싸워 왔다. 그러나 해발 수천m의 산악에 은거한 탈레반의 끈질긴 저항과 천문학적인 전비, 명분과 국익의 부재 등으로 트럼프 대통령 때부터 미국은 여러 차례 탈레반과 협상을 해왔으며, 바이든 정부는 올해 4월부터 군대를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작가 이문열(1948~)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열망하면서 과도한 집착과 애증으로 나락에 떨어지는 엘리트 남녀를 그리고 있다. 마로니에 교정에서의 풋사랑과 이별, 산타모니카의 재회, 뉴저지에서의 갈등과 파열은 결국 그들의 이상향 오스트리아 그라쯔에서의 비극적인 파멸로 이어진다.

‘알프스의 고성, 초원의 피크닉, 포도주와 흰빵, 모차르트 협주곡, 그리고 총소리, 새떼들이 날아오르고….’

김치녀와 된장남에게는 이율배반적 엔딩이었을까?

소설은 ‘불만스럽다’는 작가의 자평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화화되고, 7개 부문의 대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로스는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날개를 달고 크레타섬을 탈출하는데, 아버지의 당부를 무시하고 너무 높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서 추락하고 만다.

이상(1910~37)은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박제된 천재의 일상에 비유한 소설 ‘날개’를 1936년 잡지 ‘조광’에 발표한다. 일제강점기의 와중에서 그는 절규하고 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한국전쟁을 통해 우리는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패닉 상태를 직접 체험하고 베트남 패망과 ‘사이공 최후의 날’을 유의하게 지켜본 바 있다. 정전 협정으로 한시적인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우리는 스스로 지키고 위기를 헤쳐나가는 날개를 갖고 길러야 한다.

닭들은 닭장 속에서도 부지런하게 날아서 횃대를 오르내린다.

평상시의 땀 한 방울이 유사시에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현재 카불에서는 많은 시민과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 국기를 들고 반 탈레반 시위에 앞장서고 있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정부군들이 집결하여 탈레반에 대항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