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묻힌 이방인] ③ 명나라에서 온 이순신의 친구 ‘두사충’
[대구에 묻힌 이방인] ③ 명나라에서 온 이순신의 친구 ‘두사충’
  • 이배현 기자
  • 승인 2021.08.23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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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정유재란 참전 후 조선에 귀화
재실인 만촌동 모명재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아
모명재가 보이는 정원에서 이순신(왼쪽)과 두사충(오른쪽)이 차를 나누며 담소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모명재가 보이는 정원에서 이순신(왼쪽)과 두사충(오른쪽)이 차를 나누며 담소하고 있다. 이배현 기자

서울에 명동(明洞)이 있다면 대구에는 대명동(大明洞)이 있다는 우스개가 있다. 실제로 대구 남구 면적의 60%가 대명동이고 인구 비율은 그보다 더 높다. 왜 대명동인가. 거기에는 재미있는 지명유래가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했다. 이때 이여송 장군을 따라 풍수지리 전문가 두사충이라는 사람이 원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그는 이순신의 파트너였던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隣)의 처남이기도 하다.

두사충은 명군에서 지형을 살펴 진을 칠 곳을 정하는 수륙지획(水陸地劃) 주사(主事)로 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여송을 도와 제4차 평양성 전투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갔다가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두 아들을 데리고 다시 조선에 왔다. 전쟁이 끝난 후 매부 진린에게 "도독은 황제의 명을 받은 사람이니 돌아가야겠지만 나는 이곳에 남겠다"고 한 다음 압록강까지 배웅하고 되돌아와 대구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반월당 옆 계산동 일대에서 살다가 나중에 지금의 대명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고국인 명나라를 그리워하며 동네 이름을 대명(大明)이라 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명나라를 향해 예를 올렸다고 한다. 이처럼 대명동은 고향을 그리워하던 두사충의 충정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성구 만촌동 715-1 모명재 뒷산 형제봉 입구에 있는 두사충(杜師忠)의 묘. 이배현 기자
수성구 만촌동 715-1 모명재 뒷산 형제봉 입구에 있는 두사충(杜師忠)의 묘. 이배현 기자

두사충은 죽은 후 수성구 만촌동 형제봉 아래에 묻혔으며 지금도 무덤이 남아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무덤 입구에는 그의 후손들이 ‘명나라를 그리워한다’라는 뜻의 모명재(慕明齋)라는 사당을 세워 두사충을 기리고 있다. 모명(慕明)은 두사충의 호(號)이기도 하다.

모명은 전란 중 한산도에서 이순신을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초면이었지만 옛 친구를 만난 듯 시를 지으며 친분을 다졌다고 한다. 이순신은 두사충에게 봉정두복야(奉呈杜僕射)라는 시를 써주었는데 뜻을 풀이하면 ‘복야 벼슬의 두씨 성을 가진 분에게 이 글을 바친다’란 뜻이다.

北去同甘苦(북거동감고) 북으로 가면 고락을 같이하고

東來共死生(동래공사생) 동으로 오면 사생을 함께하네

城南他夜月(성남타야월) 성 남쪽 타향의 달빛 아래에서

今日一盃情(금일일배정) 오늘 한잔 술로 정을 나누네

이순신의 시(詩)는 모명재 앞에 이순신과 두사충이 마주 앉아 술잔을 나는 동상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모명은 노량해전에도 충무공과 함께 출전하였다. 이순신이 전사하자 장군의 묘터를 그가 잡아줄 정도로 두 사람의 우정은 각별했다고 한다.

모명은 이순신 외에도 조선의 많은 지도층과 교유했다. 1907년에 발간된 「모명선생실기」의 ‘동국동유록(東國同遊錄)’에는 정철·정탁·윤두수·이원익·이항복·류성룡·이덕형·이순신·정경세·김상헌·권율 등 25명의 이름이 직책과 함께 나온다.

2019년 11월 중국 관광객들이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방문해 다도체험을 하고 있다. 수성구청
2019년 11월 중국 관광객들이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방문해 다도체험을 하고 있다. 수성구청

모명의 후손들은 그의 본향(本鄕)인 두릉(杜陵)을 본관으로 하여 대(代)를 이었다. 2000년 통계청 성씨 통계에 의하면 두릉 두씨는 1,741가구 총 5,701명이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중 모명의 후손인 교림계는 100여 가구에 500여 명이고 나머지는 고려 목종 때 중국에서 들어온 두경령의 후손들이다.

그동안 모명재는 대구 수성구(구청장 김대권)에서 관리하여 나름대로 관광지로 명맥을 이어왔다. 그러다 2019년 9월, 주변을 소공원으로 새 단장하고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개관하면서 단연 대구의 명물로 부상하고 있다.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은 전통양식 건축물로 지상 2층 367㎡ 규모로 다례·명상실과 동의보감 음식실 및 테라스 등으로 구성됐다. 체험관 인근 소공원에서는 두사충과 이순신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전통 활쏘기(죽궁) 체험도 할 수 있다.

체험관에서는 다례 및 동의보감 음식체험도 할 수 있고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 블로그’를 참고하거나 전화 053-666-4930~1로 문의하면 된다.

2021. 3월 외국 관광객들이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방문해 동의보감음식체험을 하고 있다. 수성구청
2021. 3월 외국 관광객들이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을 방문해 동의보감음식체험을 하고 있다. 수성구청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춤하고 있지만 2019년에는 개관 후 석 달여 만에 방문객이 1천여 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중국, 대만 외에도 일본, 호주, 몽골 등지에서 다녀간 외국인 관광객들이 모명재에 깊은 인상을 안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좋아 청소년시설, 어린이집 등에서 수시로 찾고 있으며 한국 거주 외국인, 안동향우회 등 각종 문중과 단체에서도 다녀갔다. 특히 두사충이 명풍수로 이름을 날린 까닭에 그의 묘 터는 우리나라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 답사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김대권 수성구청장은 “모명재 한국전통문화체험관은 주민들의 힐링 공간이자 해외 관광객의 한국문화 체험공간으로 거듭날 것”이라며 “모명재를 글로벌 관광명소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2020.7월 차 제조와 행다례 교육 수강생들이 직접 차를 제조하고 다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수성구청
2020.7월 차 제조와 행다례 교육 수강생들이 직접 차를 제조하고 다기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수성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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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 2021-08-23 21:49:56
오늘 처음으로 대명동의 유래를 알게 되었고 풍수에 밝은 두사충의 묘도 발길을 이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