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거수 이야기] 대구 범어동 은행나무
[노거수 이야기] 대구 범어동 은행나무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8.2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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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취재 팀 기획 특집 나무 이야기

[노거수 이야기]

문화예술취재팀은 기획취재로 노거수를 찾아서 소개합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주목나무 등은 1000년을 산다고 합니다. 노거수는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주어 쉼터를 제공합니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곁을 내주기도 해 품이 넉넉합니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액을 막아주는 수호 목이 되기도 합니다. 문화예술 취재팀은 우리 마을의 노거수를 찾아 숨은 이야기를 알리기로 했습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문화예술 취재팀 팀장 방종현 기자.

범어로타리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심은 은행나무 방종현 기자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로타리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심은 은행나무. 방종현 기자

[노거수 이야기] 조선 세조 때 심은 노거수(老巨樹) 은행나무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로터리 그랜드호텔 쪽에 있는 은행나무는 노구(老軀)에도 싱싱한 초록색 잎을 가득 달고 서 있다. 1468년 조선 세조 때 수성 들판 상동에서 태어나 513년을 주민의 쉼터로 사랑을 받았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守護木)으로 인정을 받아, 1972년 8월 31자로 대구 직활시 보호수 18호로 지정받았다. 1981년 상동지역 도로 확장으로 베어질 운명에 처했다. 노거수를 살리자는 지역민의 안타까운 염원으로 9월 30일 200여m 떨어진 정화여고 교정에 옮겨 심었다. 노거수는 여고생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을 지켜보며 10년을 행복했는데, 또다시 시련이 닥쳤다. 학교가 이전을 하고 그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학교 이전으로 갈 곳이 없어지자 500살이 넘은 노거수를 없애서는 안 된다며, 지역 유지들이 보존위원회를 만들고 대구시의 도움으로 2001년 4월 1일 지금의 범어로터리로 옮겨오게 되었다. 노쇠한 몸이라 옮기게 되면 살기 힘들 거라는 우려를 말끔히 걷어내고, 노거수는 지금도 푸른 잎을 달고 노익장을 과시하고 서 있다. 노거수는 임진왜란도 겪었고 6.25도 지켜봤고 대구의 2.28도 보았고 5.16도 겪으며 만고풍상을 다 맛보았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는 수십만의 인파가 범어로터리에 모여 떼창으로 대~한민국 이기라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함성을 들을 때는 노거수도 우쭐했을 것이다.

 

노거수 은행나무 사진 방종현 기자
노거수 은행나무. 방종현 기자

나무는 한자리에 심어지면 그 자리에서 일생을 마치는데 범어 로터리 노거수 은행나무는 여자로 치면 시집을 세 번이나 간 셈이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있다. 뒤웅박이란 자르지 않고 꼭지만 딴 박이다. 부잣집에서는 뒤웅박에 쌀을 담아두고, 가난한 집에서는 여물을 담아둔다는 말이 있다.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뒤웅박의 품위가 달라진다. 범어로터리 노거수 은행나무도 대구의 번화가인 범어로터리에 떡 버티고 역사를 지켜본 산 증인으로 서 있다. 553년 세월의 더께를 간직한 노거수는 머잖아 황금빛 잎을 달고 건재함을 의연히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