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읽고 꽹과리 치고 화장실 청소하는 이해열 씨
논어 읽고 꽹과리 치고 화장실 청소하는 이해열 씨
  • 우남희 기자
  • 승인 2021.08.23 1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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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산 중턱에서

길이 있는 곳이라면 자전거는 달린다. 길은 모든 길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이 산중턱이든 강변이든 개의치 않는다. 금계산 중턱으로도 길이 있음을 알고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지나간다. 이들이 물을 준비했다고는 하나 먼 길을 달리다보면 더 필요할 때가 있다. 민가가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곳을 달릴 때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이해열(62. 옥포읍 본리리)씨는 이 산 중턱에 비닐하우스 한 동을 지어놓고 라이딩인들에게 물뿐만 아니라 화장실을 제공하고 있다.

꽹과리 하나로 노래를 부르는 이해열씨  우남희 기자
꽹과리 하나로 노래를 부르는 이해열씨 우남희 기자

그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어를 읽고 꽹과리를 치고 화장실 청소를 하며 즐겁게 살고 있다.

- 성장 환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가난해 오늘날 초등학교로 불리는 국민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섬유공장에 취직했습니다. 친구들은 진학하는데 저는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악착같이 돈을 모아 20세 때부터 땅을 사기 시작했고, 29세에 섬유공장을 차렸습니다. 공장을 하면서 간이 주유소까지 차려 요즘 말로 잘 나갔지요. 그 주유소를 지인에게 맡겼는데 관리를 못하는 바람에 쫄딱 망하면서 결국 섬유공장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배신감에 참 많이 방황했습니다.

공장을 그만두니 마땅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하수도 준설에 화물을 했습니다. 늘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고 열등감을 쉽게 떨치질 못했습니다. 그 열등감에서 벗어나려고 뜻을 알든 모르든 무작정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명심보감, 논어, 문학 전집, 자서전, 맹자 등을 읽었는데 논어는 아마 서른 번 쯤은 읽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이해는 다 못하지만 ‘불교사십이장경’이었습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은 불교의 중요한 교훈들을 가려 뽑아 42단락으로 분류하여 적절한 비유로 설한 경(經)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금연과 금주를 하게 되었지요.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읽은 책들   우남희기자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읽은 책들 우남희기자

- 악기는 언제부터 하게 되었습니까?

▶공장을 그만두고 방황하다 그전에 조금씩 배웠던 장구를 다시 배우게 되었으니 25년 정도 됩니다. 장구만 배워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꽹과리 색소폰, 북뿐만 아니라 춤까지 배웠습니다. 무대에 설 일이 없어 큰 형님이 노인 회장으로 있을 때 경로잔치에 무료공연을 했습니다. 반응이 엄청 좋아 그때 이벤트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직업이 되면서 CD를 내고 영양, 안동하회마을을 비롯해 산악회, 칠· 팔순 잔치, 동창회, 경로잔치 등등 전 지역으로 일 년에 100곳 이상을 다녔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주춤하고 있어 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우남희기자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무료로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우남희기자

저는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꽹과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꽹과리를 치며 부르는 대중가요가 거의 없는데 가수 김태곤이 ‘망부석’을 부르며 꽹과리를 칩니다. 잘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치는 것이 아니라 쉼표나 간주 때만 꽹과리 치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꽹과리를 치려면 저는 악보 속에서 북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음악에는 북소리가 있습니다. 그 북소리를 찾아 제 몸에 맞는 북소리로 승화시켜야 하지요. 그래야 어떤 대중가요도 꽹과리를 치며 부를 수 있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북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색소폰도 연주합니다. 여러 가지 악기를 다루기 위해 저도 노력을 많이 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색소폰 연주하는 걸 본 적 있지요? 대부분의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고 연주합니다. 저는 연주자는 악보를 보고 연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악보를 보다 보면 감정이입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연주자가 감정이입이 안 되는데 어떻게 관중들이 할 수 있을까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악보를 안 보고 연주하기 위해 죽으라고 연습했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 어떻게 해서 화장실을 청소하게 되었습니까?

▶이곳은 젊었을 때 공장하면서 사놓은 땅입니다. 십여 년 전에 이곳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주변에 꽃나무를 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 산길로 한참을 내려가면 노이리가 나오는데 자전거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갑니다. 물을 찾고 화장실을 찾기에 물은 500ml 생수를 사놓고 하나씩 드리는데 화장실이 문제였습니다. 제 살림집이나 마찬가지인 비닐하우스 안쪽으로 급하다며 들어오는데 안 되겠다 싶어 군청에 가서 지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짓긴 지었는데 관리가 문제였습니다.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해주고 갈 리 없고 그렇다고 공공근로 하는 분들이 이 산중턱까지 올 수도 없습니다. 지어달라고 요구했으니 제가 청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에는 물을 데워 청소하는 게 조금 힘들지만 10여 년을 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 해, 군수님이 오셔서 둘러보시고는 고맙다며 표창장까지 주셨습니다.

그가 비닐하우스 주변에 심은 꽃들   우남희기자
비오는 날 운치를 더 하는 그가 가꾼 비닐하우스 주변의 풍경 우남희기자

두 시간동안 그는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서 장구, 북, 꽹과리, 색소폰을 연주해 주었고, 간간히 물을 요구하는 라이더에게 물병을 건네주기도 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은 결국 자기를 위하는 일이라고 이씨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