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장풀(달개비)꽃의 오묘한 삶
닭의 장풀(달개비)꽃의 오묘한 삶
  • 여관구 기자
  • 승인 2021.08.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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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쟁이 곤충이 찾아오지 않아 꽃가루받이를 못하게 되면 긴 수술 2개는 암술을 부둥켜 앉고서 빙글빙글 꼬며 자가수분을 한다. 때가 되면 꽃잎을 닫고서 은밀히 결혼을 하는 것이다.
닭의 장풀 꽃 모습. 여관구 기자.
닭의 장풀 꽃 활짝 핀 모습. 여관구 기자.

닭의장풀 꽃은 달개비라고도 하며 꽃말은 ‘짧은 즐거움’ ‘그리움 사이’라는 한이 서린 애달픈 꽃말들이 있다. 한해살이풀로 줄기는 지표면 가까이에서 가지가 갈라지면서 그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꽃의 이름은 꽃 모양이 닭의 벼슬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달개비 꽃 모습. 여관구 기자.
달개비 꽃 모습. 여관구 기자.

잎은 어긋나며(互生) 표면은 밝은 녹색이라면 뒷면은 엷은 녹색이다. 기부에는 막질로 된 잎이 줄기를 감싼다. 꽃은 6~8월(주로 늦여름)에 줄기 끝에서 푸른색으로 피고 2개로 갈라진 꽃싼잎(苞葉) 속에 꽃봉오리가 3, 4개가 싸여 있으며 차츰 하나씩 꽃자루가 길어지면서 순차적으로 핀다. 꽃울조각(花被片)은 6장으로 2장은 크고 청명한 푸른색이며 나머지 4장은 작고 백색이며 숨어 있다. 오전에 활짝 피고 오후에는 시든 다. 열매는 캡슐열매(蒴果)로 타원형이며 속에 종자가 4개 들어 있다. 염색체수: 2n=44, 48, 86, 88, 90

닭의 장풀 꽃. 여관구 기자.
닭의 장풀 꽃. 여관구 기자.

닭의장풀은 사람을 따라 다니는 터주식물이다. 그 명칭이 지방에 따라 다르다. 교과서에 나오는 자주닭개비(자주달개비)와 마찬가지로 닭의장풀과이지만 자주닭개비는 북아메리카 원산인 관상용 외국식물이고 닭의장풀은 우리나라 토착 자생종이다. 식물의 기공개폐를 배울 때에 재료식물로 자주닭개비가 등장하는데 토종인 닭의장풀로 공부하면 더욱 친근해 질 수 있다.

닭의장풀은 생활 속에 등장하는 들풀 가운데 하나로 선조들은 어린 줄기와 잎을 나물로 먹었으며 꽃잎은 남색 물감을 대신하는 염료로 이용했고 식물체를 민간 약재로도 사용했다. 식물체 전체에 약이 되는 항산화제 성분이 있고 당뇨병 치료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닭의장풀은 꽃 모양만으로도 ‘쪽빛나비풀’이란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꽃잎은 아래쪽에 작고 백색을 띠는 4장과 함께 쪽빛 나비처럼 생긴 크고 청명한 푸른색 꽃잎 2장과 합쳐서 총 6장이다. 진정 푸른 물감은 이 꽃잎 2장에서 얻을 수 있다. 수술 길이는 제각각으로 기능이 다르다. 짧은 것 3개 조금 긴 것 1개 암술의 길이와 비슷한 아주 긴 것 2개로 총 6개다.

닭장풀 꽃의 암술과 수술 모습. 여관구 기자.

중매쟁이 곤충이 찾아오지 않아 꽃가루받이를 못하게 되면 긴 수술 2개는 암술을 부둥켜 앉고서 빙글빙글 꼬며 자가수분을 한다. 때가 되면 꽃잎을 닫고서 은밀히 결혼하는 것이다. 꽃집을 펼쳐 보면 완벽한 하트모양에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는 촉촉한 궁전이 감춰져 있다. 아름답다.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은 그 꽃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어색하다. 오리를 많이 키우는 중국에서는 ‘압척초(鸭跖草, 鸭食草 등)’라 부른다. 한글명 닭의장풀은 오리보다 닭을 많이 키우는 우리나라이기에 누군가가 오리 대신에 닭을 빗댄 데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오리 발바닥 풀’이라고 해석되는 ‘압척초(鸭跖草)’와 일본명 쮸육사(露草, 노초)에 대응하는 한글명으로 ‘의십갑이’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달기밋시(닭의밑씻개)’, ‘달비(달개비)’, ‘닭의씨비(닭의십갑이)’ 등의 기록이 있다.

자가수분 하는 모습. 여관구 기자.

그런데 이런 한글 기재에 훨씬 앞서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는 ‘번루(蘩蔞)’를 향명으로 ‘계의십가비(鷄矣十加非, 닭의십가비)’로 기록하고 있으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도 ‘의십가비’로 기재하고 있다. 따라서 ‘닭의십갑이’란 명칭은 18세기까지는 ‘蘩蔞(번루)’로 지칭했고, 19세기 초에 들어서서 ‘蘩蔞(번루)’는 ‘잣나물’로 그리고 ‘압척초(鸭跖草)’는 ‘의십갑이’로 그 명칭이 나뉘어졌다.

한글명 닭의장풀은 ‘닭(鷄, 계)’, ‘장(腸, 장)’, ‘풀(草, 초)’의 합성어로서 한자명 압장초(鴨腸草, 오리장풀)에 잇닿아 있다. 19세기 초 기록에 어린 싹(苗葉)이 ‘아장색(鵞腸色)’ 즉 ‘거위의 창자(腸) 색깔’을 띤다는 기재로부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거위와 오리의 창자(腸) 색깔에서 비롯되는 한자 명칭으로부터 닭이 그 이름을 대신한 것이다.

닭개비 꽃의 집단 서식 모습. 여관구 기자.

그런데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이 ‘계장초(鷄腸草)’가 蘩蔞(번루)를 지칭하고 있다. “가늘고 속이 비어 있는 벼룩나물의 줄기가 닭의 창자를 닮았기 때문”이라고 그 유래까지 명시하고 있다. 결국 닭의장풀이란 명칭은 20세기에 들어서 기재된 최근의 식물명이란 것을 알게 해준다. 최초 기재의 한글명은 『물명고(物名考)』에 따라 ‘닭’과 ‘십갑이’가 합성된 ‘의십가비’이다. ‘십가비(십갑이)’라는 고어의 뜻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혓바닥을 지칭하는 우리말 고어일 수도 있다. 『물명고(物名考)』 속에 ‘계설초(鷄舌草)’라는 명칭이 함께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닭의장풀 잎 모양은 닭의 혓바닥을 닮았다. 한편으로 고어 ‘십가비(십갑이)’는 여성 또는 여성의 성기(性器)에 관련된 성징(性徵) 명사로 추정된다. 한방에서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약재 식물의 옛 이름으로 종종 등장하기 때문이다.

달개비 꽃 모습. 여관구 기자.

닭의장풀은 꽃잎이 6장이지만 푸른 색 꽃잎 2장만 눈에 띈다. 꽃을 감싸고 있는 꽃싼잎을 펼쳐보면 완전한 하트모양이고 그 속은 생명의 씨를 잉태하는 촉촉한 궁전이다. 닭의장풀은 정말로 촉촉한 곳 메마르지 않고 늘 물기가 잘 유지되는 땅에 잘 산다. 공기 중에 습도가 충만한 곳에서는 줄기 마디에서도 뿌리를 길게 내려 땅에 닿으며 뻗는다. 공기가 잘 통하는 새로운 흙이 쌓이는 농촌 들녘 길가라면 더욱 번식력이 강하다. 때로는 한 장소를 차지할 정도로 번성한다.

닭의장풀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담벼락이건 산비탈이건 분명히 물기가 비치는 장소라는 지표다. 그런 수분환경조건만 갖추어진다면 어지간한 서식처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닭의장풀은 염색체수가 아주 다양한 편이다. 서식처 조건에 따라 때로는 혼동하리만큼 다양한 외부 형태를 보여주는 이유다.

생활 주변에 서식하는 달개비 꽃. 여관구 기자.

닭의장풀은 아침 설거지가 끝날 무렵에 꽃잎을 열고, 서산에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에 시들기 시작한다. 서양에서 부르는 ‘dayflower’는 그런 의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오전 중에 밝은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기온이 오르고 공기 속에 습기가 마르면 마침내 중매쟁이 곤충들도 꽃을 찾아 외출한다. 이미 닭의장풀이 꽃잎을 열고 기다리고 있을 때다. 일본명 쭈육사(露草, 노초)는 ‘이슬이 맺힌 풀’이란 뜻이다. 늘 그렇게 이슬같이 영롱한 이른 아침 시간에 닭의장풀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메타포다.

닭장풀 꽃의 집단서식 모습. 여관구 기자.

속명 코멜리나(Commelina)는 17세기 네덜란드 식물학자의 이름(J. Commelijn)에서 유래하며 종소명 콤무니스(communis)는 일반적(common, general)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아마도 흔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시화, 산업화로 메마른 회색 콘크리트 공간에서 닭의장풀은 절대로 살지 않는다.

<<<달개비 꽃의 전설>>>

아주 옛날에 싸움이나 힘자랑을 좋아하는 남자 두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두 남자는 천하제일의 영웅을 가려내는 시합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시합은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힘자랑이었는데 둘은 똑같은 바위를 들어 올렸고 두 번째는 돌을 멀리 던지기 시합을 하였는데 둘 다 똑같은 거리만큼 돌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결론이 나지 않자 두 남정네는 다음날 돌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 누가 늦게 나 오나를 시합하기로 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아내들은 닭장 옆에서 닭이 울지 않기를 바라고 달의 목을 꼭 누르고 있었는데 닭은 어느새 아침을 알리는 신호를 했고 닭의 외침을 듣고 부인 둘은 깜짝 놀라서 죽고 말았답니다.

그 남편들은 그때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아내를 고이 장례 지내주었는데 그 자리에 달개비 꽃이 피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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