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꽃 이야기] 맥문동, 보랏빛 사랑
[시골 꽃 이야기] 맥문동, 보랏빛 사랑
  • 장성희 기자
  • 승인 2021.08.12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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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 예쁘고 약재로도 쓰이는 맥문동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기운이 돌만도 한데, 아직 한낮에는 사우나를 방불케 하여 밭일을 하는 것이 힘들다. 그래도 집 뒤편 음지쪽에 심어둔 맥문동이 보랏빛으로 향기를 내어 기분을 청량하게 만든다. 맥문동은 처음 포항에 왔을 때 포항공대 화단의 나무 밑에 심어져 있던 것을 본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난초처럼 길쭉한 잎이 모여 나고 그 위로 쭉 뻗은 꽃대에 연보랏빛 꽃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꽃이 많지 않은 여름에 마치 보라색 주단을 깔아 놓은 듯이 아름다웠다. 그때는 웬 난초를 나무 밑에 이렇게 많이 심어 놓았는지 의아해하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맥문동은 뿌리의 굵은 부분이 보리와 비슷하기 때문에 ‘맥문’(麥門) 이라 하고, 겨울을 이겨낸다고 하여 ‘동’(冬) 을 붙였다고 한다. 사진을 찍어서 이름을 찾고 알게 된 사실이다. 예부터 맥문동은 꽃을 보기 위해서보다 약초의 용도로 많이 쓰여 왔다. 뿌리가 기침, 가래를 멎게 하고 체력을 기르는 데 좋다고 하여 약재로 많이 달여 먹었다고 한다. 몸에도 좋고 꽃까지 이렇게 예쁜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화초였다. 어느 해 까만 열매가 조롱조롱 달려 있을 때 훑어 와서 조몰락거리며 과육을 씻어내었다. 그리고 땅에 묻어두고 다음 봄을 기다렸다. 하나둘 움을 틔우고 가느다란 모종이 수없이 올라왔다. 그것을 옮겨 심어 지금의 맥문동꽃을 보게 된 것이다.

맥문동이 보랏빛 향기를 내뿜고 있다. 장성희 기자
맥문동이 보랏빛 향기를 내뿜고 있다. 장성희 기자

 

그동안 수없이 보고 스쳐 지나쳤던 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참 귀엽고 예쁜 모습을 하고 있다. 요즘은 무심코 지나치던 꽃들을 보며 예쁘다고 하고 고생했다고 말해준다. 심어놓고도 보아주지 않으면 열심히 뿌리를 뻗고 꽃을 피운 보람이 있겠는가. 공들여 키워서인지 더없이 사랑스럽다. 이것이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여유 있는 농촌생활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여름의 끝자락에 보랏빛 꽃의 요정들이 눈을 반짝이며 손짓을 한다. 그 옆에 남편과 쪼그리고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위도 잊은 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오후를 보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보잘 것 없는 모습도 아닌 맥문동 같은 삶은 어떨까. 더우나 추우나 사시사철 변함없이, 아무 곳에서나 강인한 생명력으로 보랏빛 향기를 전해주는 맥문동 같은, 그런 사람이고 싶다.

줄지어 선 맥문동꽃. 장성희 기자
줄지어 선 맥문동꽃. 장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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