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자의 photo 에세이] 여름 진객 배롱나무
[방기자의 photo 에세이] 여름 진객 배롱나무
  • 방종현 기자
  • 승인 2021.08.02 10:0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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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동안 피는 꽃(백일홍)

 

표충사 백일홍   사진 현산 황영목
표충사 백일홍 사진 현산 황영목

 

배롱나무 꽃말은 '헤어진 벗에게 보내는 마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녹색 일색인 여름날 빨간 꽃을 입고 있는 배롱나무는 뭇 사람들 시선을 끈다. 매끈한 몸매가 독특하며 나무를 간지르면 잔가지가 파르르 떨리기에 ‘간지럼 나무’라는 별명도 있다. 붉은 꽃이 100일 동안 핀다고 해서 백일홍(百日紅)으로도 불린다. 나무가 아닌 일년생 식물로 피는 백일홍도 있어 구분하자면 草 백일홍이 있고 木 백일홍이 있다. 배롱나무는 木 백일홍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지만, 배롱나무꽃은 100일을 피고 지니 그 말이 무색하다. 스님들이 수양하는 산사와 서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100일 동안 마음을 정화하고 학문을 갈고닦으라는 뜻으로 배롱나무를 심기도 했다. 붉은 꽃을 오랫동안 피워내니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 충신이나 열사, 선비의 무덤에도 심었다.

배롱나무에 가슴 아픈 전설이 있다. 옛날 어느 어촌에 머리가 셋 달린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이무기는 해마다 마을에 내려와 처녀를 한 사람씩 잡아갔다. 한 번은 제물로 바쳐질 처녀를 연모하던 이웃 마을 청년이 처녀를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청년은 처녀의 옷을 입고 제단에 앉아 이무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려 이무기의 목을 베었는데, 두 개만 벤 상태에서 이무기가 도망을 하여 버렸다. 처녀는 이 청년을 평생 반려자로 모시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무기의 나머지 목 하나를 베어야 한다며 배를 타고 이무기를 찾아 나섰다. 청년은 떠나기 전 내가 이무기 목을 베면 배에 “하얀 기를 내걸 것이요”, 실패하면 “붉은 깃발을 걸 것이오"라고 말하고 떠났다. 처녀는 매일 기도하며 청년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1백 일이 되던 날 청년의 배가 돌아오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하지만 깃발이 붉은색임을 확인하고 처녀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깃발은 이무기가 죽으면서 피를 내뿜어 붉게 물든 것이었다. 청년은 한탄하며 처녀를 묻어 주었는데, 그후 무덤가 나무에서 붉은 꽃이 1백 일 동안 피어났다.

여름은 배롱나무의 붉은 꽃이 있어 좋아라

세분 시인이 여름 진객 배롱나무를 기립니다.

하목정에 핀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하목정에 핀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배롱나무/ 정재숙 

꽃은 오랜 기도처럼 간절하고 붉다.

꽃이 추는 한바탕 춤

태양도 날마다 몸이 달아올라

빙글빙글 돌고 돈다

시간을 안고 돌고

바람을 안고 돌고

그의 끝간데 없는 몸짓은

하늘을 열고 몰아치는 휘몰이

돌아 설 곳 없이 나부끼는 허튼 가락이다

활 활 타오르는 배롱나무 뜨겁다

목마르다

이제 그 간절한 붉은 기도는

하늘을 찢고 쏟아져 내린다.

표충사에 핀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표충사에 핀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배롱나무 북소리/정 숙 

칠월이 오면

목백일홍 눈빛은 왜, 왜

설렘으로 그득 차오르는가

하얀 빛깔은 더 애절해 보이기도 한다

하루하루 달아오르는

햇살 한 줄기, 마음 심연에 몰래 심었는가

여름바람이 사랑의 가교 되어주겠다는

약속이라도 언제 했는가

매끈한 등허리 위 가까이 귀 기울이면

둥, 둥 북소리가

내 가슴 안까지 떨리게 한다

그 전율이

친정집 뒤뜰, 붉은 배롱나무 그늘 아래서

네 자매 깔깔깔 핑퐁 공 굴리는

맑은 소리 아스라하게 한다

가슴 깊이 묻어둔 그 시절 햇살은

이제 별빛이 되어

하목정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하목정 배롱나무 현산 황영목

 

붉은 투피스/안윤하

계절마다 어김없이

자리를 옮기게 되지만

언제나 장롱 속에 갇힌 붉은 날개,

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일까

다른 옷가지들 사이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어깨가 바랜다

기억할 순간이 많을수록

더욱 씁쓸하게 바랜다

붉을수록 바래지는 속도가 빠르다

팔월, 갈채 속에 웃음소리 만발할 때

배롱나무처럼 피어오르리라

여름 지나고 떨어진 꽃잎으로

땅을 발갛게 덮던 시절이 다시 오면

장롱을 훌훌 벗고 날아오르리라

붉은 빛을 뿜어내리라

다시 그 계절이 오기를

바래지는 어깨를 감싸며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지 못한다

버릴 수 없으므로

붉게 쌓인 먼지를 닦아

옷장에 가둬두는 것이다

맞지 않는 허리와 지나버린 유행,

그렇다 하더라도

언젠가 언젠가는 날아오를 수

있을는지 모를 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