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야기] 남산동 헌책방골목
[골목이야기] 남산동 헌책방골목
  • 권오훈 기자
  • 승인 2021.08.02 13: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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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70년대 문전성시이던 곳, 지금은 세 군데로 명맥만 남아
도심 개발과 출판문화, 서적 구매패턴 변화에 따라 급격히 몰락
100만여 권의 소장 장서를 진열 판매할 Book Road(책 산책로) 조성 노력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곳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남산동 헌책방골목’을 찾은 심정을 야은 길재의 시조가 대변하는 듯하다. 시절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그 많던 헌책방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기자가 학창 시절 즐겨 찾을 때는 시청 인근, 대구역 지하도 일대 등과 함께 남산동의 대로변은 물론 이어진 안 골목까지 50여 개 책방에다 좌판까지 성업이던 '헌책방 골목'이었다. 애써 살펴보지 않으면 스쳐 지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지금은 특정 골목이라 칭하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 많던 서점은 도심개발과 출판 인쇄술의 발달, 도서 구매패턴의 변화에 따라 역사의 뒤안길로 급속히 사라져 갔다. 지금은 온 오프라인을 통해 중고서적만을 전문으로 매매하는 알라딘이 있다. 교보서적, 예스24 등도 중고서적 쇼핑몰을 운영한다. G마켓, 옥션, 11번가 등의 쇼핑몰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하는 젊은이들은 헌책방골목이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할까.

남산동 자투리 부지 뒷골목에 명맥만 남아 영업중인 헌책방 전경. 권오훈기자
남산동 자투리 부지 뒷골목에 명맥만 남아 영업중인 헌책방 전경. 권오훈기자

 

남문시장 건너편 자투리 삼각형 부지 상가에 세 개의 헌책방이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옛 영화의 흔적만 남았다. 대도서점과 해바라기서점은 규모가 너무 작다. 좁은 면적 매장 안에 낡은 책을 두서없이 쌓아놓고 바깥으로 향한 서가에 빽빽이 꽂아놓았다. 푹푹 찌는 날씨에 소형 선풍기와 부채로 더위를 식힌다. 말을 붙이기 무색하게 책을 안 살 거면 가라고 손사래다. 손님 구경 못 한 지 오래지만 수십 년간 해오던 장사이니 습관처럼 나와 앉아 있다고 짜증 묻혀 말한다. 

남문시장 네거리 코너에 위치한 코스모스 북 서점의 전면모습. 권오훈기자
남문시장 네거리 코너에 위치한 코스모스 북 서점의 전면모습. 권오훈기자

 

네거리 코너에 위치한 코스모스 북은 그나마 외형이 번듯하다. 내부도 넓은 데다 쌓인 책도 분야별로 가지런하고 서적의 양도 엄청나다. 시류에 맞게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판매 체재도 갖추었다. 천장 부착형 에어컨도 있어 쾌적하다. 배삼용 대표(59세)는 1950년대부터 외가 친척이 운영하던 이곳에 18세 나이인 1980년 8월에 점원으로 시작했다.

코스모스 북은 2020년에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100년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권오훈기자
코스모스 북은 2020년에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100년기업으로 선정되었다. 권오훈기자

 

서점을 인수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창업 후 70년 세월이 되었다. 그간 모은 서적을 별도로 400평 규모 창고에 100만여 권을 따로 보관중이라 한다. 그 중에는 희귀본 고서도 많다고 한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백년가게'로도 선정되었다.

코스모스 북을 찾은 단골고객 윤태호 매일신문 칼럼니스트(좌 77세)와 배삼용 대표(59세)가 매장내 쌓인 책더미 속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오훈기자
코스모스 북을 찾은 단골고객 윤태호 매일신문 칼럼니스트(좌 77세)와 배삼용 대표(59세)가 매장내 쌓인 책더미 속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오훈기자

 

그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그가 헌책방골목을 사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심 외곽의 적지를 물색하여 서적들을 진열하여 방문객이 즐겨 찾는 명소로 만들고 판매도 할 수 있는 공간, 이른바 Book Road (책 산책길)을 조성하는 것이다. 삼대가 함께 와서 6m 높이 서가로 조성된 1km 거리를 산책하며 책에서 풍기는 세월의 향기를 맡고 세대별로 출판된 도서 내용을 비교 공유하며 통섭의 장을 만들어 갈 것이라 기대한다. 그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