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로 피어난 인현왕후의 눈물, 김천 청암사
이끼로 피어난 인현왕후의 눈물, 김천 청암사
  • 장희자 기자
  • 승인 2021.08.03 1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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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의 이끼 덮힌 푸른빛 바위와 폭포에서 절 이름 유래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폐비되어 극락전에 머무르며 복위 기원
청암사 입구 심산유곡에 숨어 있는 이끼폭포. 장희자 기자

그 물들
그냥 흘러간 게 아니었구나
닳아지는 살 대신
그가 입혀주고 떠나간
푸른 옷 한 벌
내 단단한 얼굴 위로
내리치며 때때로 어루만지며 지나간
분노와 사랑의 흔적
물속에서만 자라나는
물속에서만 아프지 않은
푸른 옷 한 벌

( 이끼,    나희덕 )

 

청암사는(靑巖寺) 경북 김천시 증산면 평촌2길 335-48번지에 있다. 불령산(佛靈山) 해발 500m 지점에 있는 사찰이다. 불령산은 수도산(1317m)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수도산에 부처님의 영험과 가호가 끊이지 않는다는 뜻에서 불가에서는 불령산으로 불리고 있다.

청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절 입구에 있는 계곡물과 어우러진 이끼 덮힌 푸른빛 바위에서 청암(靑巖)이란 이름이 나왔다. 신라 헌안왕 3년(859년) 도선국사의 비보사찰(裨補寺刹)로 건립되었다. 창건 이래 여러 차례 화재로 소실되고 중창되기를 반복하였다.

청암사 절 이름의 유래가 된 이끼 덮힌 바위와 계곡물. 장희자 기자

1647년(인조 25년)에 불이 나 전소되었다. 성총화상(性聰和尙)이 소식을 듣고 허장대사로 하여금 청암사를 재건토록 했다. 1736년(영조 12년) 산사태로 문루가 유실되자 회암정혜(晦庵定慧) 조사가 2차 중창을 하였다. 1782년(정조 6년) 4월에 다시 큰 화재가 발생해 육화료 등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신궁보전과 누각을 중건하여 3차로 중창하였다.

1905년(고종 9년) 주지 용각화상(龍覺和尙)이 보광전을 건립하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입적하였다. 대운화상이 이를 완성하고 가야산 용기사로부터 청동42수관음보살상을 옮겨 봉안했다. 청동관음상은 1975년 도난당해 1992년 6월 목조42수관음보살을 조성하여 다시 모셨다.

청암사는 1911년 또다시 큰 화재로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대운대사(大雲大師)가 이듬해부터 대웅전, 육화료, 진영각 등을 신축하였다. 1921년 중국 항주의 영은사에서 목조석가모니불상을 조성해 대웅전에 봉안하니 이를 4차 중창이라 한다.

청암사 전경, 불령동천 너머 파란 지붕이 대웅전이다. 장희자 기자

 

청암사 극락전은 조선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3년 동안 머무른 곳이다. 장희빈의 간계로 서인으로 강등되어 지금의 극락전 자리에 축각(祝閣)을 짓고 복위를 기원하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인현왕후를 예우하기 위해 별도의 사대부가 한옥을 지어 모셨는데 지금의 극락전이다.

인현왕후는 훗날 복위돼 환궁한 후에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백련암에 전해 내려오던 것을 노스님이 발견하여 직지사 성보박물관으로 보내 보관하고 있다. 서찰에는 향, 비녀 등 신물 3가지를 같이 보낸다는 내용이 있다.

인현왕후는 3년 동안 극락전에 머무르면서 주변을 산책하고 시문을 지었다. 장희자 기자

인현왕후는 환궁 후 청암사 주변 수도산을 국가보호림으로 지정함과 동시에 사찰에 전답을 내렸다고 한다. 극락전을 중창할 때 나온 시주록에는 궁중 상궁들의 이름이 26명이 올라 있다. 인현왕후로부터 비롯된 청암사와 왕실과의 인연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말까지 상궁들이 수시로 청암사에 내려와 신앙생활을 했다. 극락전 뒤편 보광전은 인현왕후의 복위를 기원하는 원당으로 건립되었다. 폐전된 것을 1911년 대운대사가 궁궐의 많은 상궁의 시주를 받아 42수관음상과 후불탱화 등을 조성해 모셨다.

청암사 강원의 효시는 조선 중기 때 회암정혜 조사가 선원과 강원을 설립하면서 비롯됐다. 당시 청암사에 운집한 학인이 300여 명에 달했다. 일제강점기 때 박한영(朴漢永) 강백(講伯)이 강론할 때는 학승 수가 200여 명에 이르렀다. 강고봉(姜高峰) 강백이 가르치던 1975년까지도 매년 40여 명에 달했다.

극락교 좌측으로는 대웅전, 강원 등이 배치되어 있고, 우측에는 극락전, 보광전이 있다. 장희자 기자

현재 강주인 의정지형(義淨志炯) 스님이 1987년 비구니승가대학을 설립하였다14년에 걸쳐 전 도량을 보수하고 부속 건물을 신축하였다. 목조로 된 사십이수관음보살상을 새로 조성하였다. 범종각을 신축하는 등 후학양성의 원대한 발원을 불사에 펼쳤다.

현재 100여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도량으로서 옛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에 청암사 율원을 개원하여 계(戒)와 율(律)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의 공간을 마련했다.

대웅전 앞에는 4층 석탑이 자리한다. 대운대사가 성주의 논밭에 버려져 있는 것을 옮겨와 세웠다. 1층 4면의 몸돌에 암실을 만들고 불상을 조각했다. 탑 높이가 4.2m에 이르나 지붕돌에 비해 몸돌이 가냘프다. 경북도 문화재 자료 제 121호로 지정되었다.